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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허수아비 50. 괘씸죄

운영자 2013.08.01 18:31:07
조회 792 추천 1 댓글 3

  민사판결이 선고되는 날이었다. 오전 열시 경 법정에 갔던 사무장이 전화로 내게 연락했다.


  “우리가 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역시 판사는 나를 봐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동팔이 요구한 오억원의 배상과 공개사과에 비하면 많이 봐 준 셈이기도 했다. 법원은 이동팔에게 공개사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며칠 후 판결문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판결내용은 이랬다.


  <재판부가 이 사건을 직접 심리하면서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이동팔 회장은 검찰총장의 동생을 자신의 회사 직원으로 고용했다. 이동팔은 검찰총장의 동생에게 거액을 주었다. 이동팔은 그 후 수십 회에 걸친 주가조작 및 횡령을 한 사실이 있고 그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른바‘이동팔 게이트’라고 여러 차례 기사화되어 사회문제가 됐다. 검찰총장과 고등검사장 그리고 차장검사 등 검찰의 고위직들은 이동팔에게 수사정보를 누설했다.

  그 무렵 이동팔을 수사하려던 서울지검 특수부장은 오히려 사표를 내게 되고 이동팔의 모략으로 직권남용죄로 몰려 기소되기도 했다. 피고 진태오는 변호사 겸 소설가로서‘진태오 변호사의 사건 실록’이라는 제목 하에 월간고려 이천사년 이월호에 이런 내용들을 발표하였다.

  재판부에서 판단할 때 진태오 변호사의 글들은 이동팔 게이트의 성격에 비추어 공익을 위한 진실한 것들로서 위법성이 없는 정당한 행위로 판단한다. 따라서 이동팔에게 손해배상은 물론 그를 위한 사과문도 게재할 필요가 없다.>


  글 자체는 진실하다고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판결이유는 계속되고 있었다.


  <다만 피고 진태오는 대법원유죄확정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알고도 그에 반대되는 사실을 써서 이동팔을 위증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그게 무고로 기소가 되자 그 나아가 여강구의 변호까지 맡았다. 이런 점들을 참작할 때 진태오에게 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정함이 상당하다>


  결국 대법원에 저항했다는 괘씸죄였다. 작가로서 진실을 위해서는 어떤 권위에도 도전할 수 있어야 했다. 여강구가 권력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그 내막을 안 내가 변호를 맡는 건 변호사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했다. 틀린 걸 틀리다고 했다. 모략으로 감옥에 가는 사람을 변호했다. 그걸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바로 항소했다. 법원과 검찰에서 끝까지 은폐하려는 허위를 들추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보다가 이동팔 회장의 사진과 함께 조그만 사건기사가 난 걸 봤다. 이동팔 회장이 괴한들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제목이었다. 구체적인 기사내용은 이랬다.


  ‘이동팔 회장이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서에 따르면 이동팔씨는 이날 오후 여덟시 경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괴한 세 명에게 망치로 얻어맞고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괴한 세명 중 한명을 붙잡아 이동팔씨를 폭행한 동기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한편 나머지 두 명을 쫓고 있다.’


  다음날도 역시 이동팔에 대한 기사가 연속해서 나고 있었다.


  ‘경찰은 이동팔씨를 둔기로 폭행한 혐의로 조모씨(43.무직)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폭력전과 4범인 조씨는 교도소 동료 2명과 함께 오후 7시30분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일행 2명과 함께 식사를 하던 이동팔 회장에게 둔기와 주먹을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는 경찰에서 “아는 선배가 이동팔 때문에 전 재산을 사기당해 혼내주려고 찾아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열한시경 검찰출입을 하는 한국일보 사회부기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회부 팀장으로 의욕적인 취재를 하는 후배였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경찰에서 이동팔 회장이 피해자 진술을 했는데 뒤에서 테러를 시킨 게 분명히 조폭보스출신인 여강구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여강구가 아니면 자신을 그렇게 공격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조씨라는 범인은 자기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담당형사도 그렇게 혐의를 잡고 여강구를 오라고 소환했답니다. 그런데 여강구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대요. 계속 수사할 예정이랍니다.”


  사회부 기자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이동팔 회장은 지금도 계속 기업사냥과 주가조작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자금난에 쫓기는 기업을 찾아가 주식 일부만 외상으로 인수하고 경영권을 탈취하는 거죠, 저쪽에서 반대자가 있으면 자기 고용변호사들을 사용해서 업무상배임이나 횡령으로 모략해서 구속시켜 버리는 거죠. 회사 경리장부 몇 개만 조작하면 다들 파리 목숨 아닙니까? 

   이동팔 회장을 뒤에서 봐주는 법무법인이 생겼는데 그 구성원을 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이동팔의 뒷배를 봐주던 예전의 검찰간부들이 아예 이제는 변호사가 되어 드러내놓고 상대방들을 구속시키는 일을 대행해 주고 있는 거죠, 진태오 변호사님을 앞장서서 고소했던 추태만변호사는 그 소속입니다. 추태만변호사는 이동팔 회장 앞잡이로 나서면서 여기저기 기업에 가서 공갈을 하는 게 우리 사회부기자들 안테나에 잡혀 있어요.”


  이동팔과 그 그룹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기자가 덧붙였다.


  “대법원은 말이죠, 검찰총장의 수사기밀누설사건을 몇 년이 되도 판결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언론에서 압력을 가했더니 이제야 선고를 하더라구요,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세요.”


  기자가 돌아간 후 난 인터넷에서 검찰총장의 수사기밀누설에 관한 기사를 찾았다. 그 내용은 이랬다.


  ‘재직 중 수사정보를 흘린 검찰총장과 고검장에게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검찰총장이 부하 수사팀의 내부 상황을 확인해 전달한 행위는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검장 역시 이동팔에게 내사정보를 알려준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며칠 후 난 다시 옥상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이제부터 모든 정력을 바쳐 좋은 문학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다. 그리고 항소심에서는 끝까지 권력의 배후를 알아내기로 결심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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