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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허수아비 46. 남은 멍에

운영자 2013.07.31 18:37:42
조회 430 추천 1 댓글 0

  여강구와 이동팔은 모두 자유인이 됐다. 둘 다 다시 바쁘게 사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상처뿐인 투쟁에서 내게 남은 것은 피고라는 이름과 거액의 손해배상금과 죄인의 지위였다. 해가 바뀌고 서울중앙지법 오백오십팔호 법정에서 나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법정 벽 꼭대기에 달라붙은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 두 명이 앉아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이동팔 회장의 부하들이었다. 변호사석에서 추태만 변호사가 술이 덜 깬 듯한 얼굴로 기록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법정으로 나왔다. 나는 일어서서 피고석 앞에 가서 섰다. 추태만 변호사가 이동팔을 대신해서 앞으로 나와 섰다.


 “이동팔씨는 안 나왔네요?”


   재판장이 텅 빈 방청석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회장님은 바쁘셔서 다음에 나오시겠답니다.”


  석방된 여강구가 어느 틈에 들어와 내 옆에 와서 섰다. 이제는 입장이 달라졌다. 여강구가 내가 쓴 글들이 진실이라고 변호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 됐다. 재판장이 여강구를 보면서 말했다.


  “이동팔에게 왜 그렇게 비싼 이자를 놨어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겼죠.”


  그동안 서류들을 읽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동팔 같은 사기꾼을 어떻게 믿습니까? 또 그놈이 담보로 주는 어음들도 적색입니다. 언제 부도가 날지 믿을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니까 저로서도 이자를 많이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떼이니까요”


  재판장이 질문을 계속했다.


  “여강구씨는 그동안 삼년전 대법원에서 자신에게 선고된 판결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었죠? 변호사가 그걸 써서 문제가 된 거죠? 맞습니까?”


  재판장이 눈을 부릅뜨고 엄한 어조로 물었다.


  “저 그게 아니라-----”


  재판장의 기세에 여강구가 주춤했다. 그게 여태 싸워온 핵심인데 그는 권력 앞에서 주저하고 있었다. 내가 소리쳤다.


  “ 그게 아니라가 아닙니다. 대법원판결이 분명히 틀렸습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진실은 대법원판결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 재판부에서 쓰는 민사판결문으로 확정된 대법원판결을 뒤집으라는 소린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듣고 있던 재판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재판장의 얼굴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습니다. 전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글로 썼습니다. 대법원판결이 이동팔의 거짓말에 속아 잘못 확정됐다는 겁니다. 저는 대법원판결보다 진실이 더 위에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께서는 진실을 위해 판결을 하시는지 아니면 대법원을 쪽으로만 시선을 돌리고 거기에 부딪치지 않도록 비위를 맞추는 판결을 하나 꼭 지켜 볼 겁니다. 그리고 그걸 또 글로 쓸 겁니다.”


  순간 재판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하던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대법원판결은 확정된 게 아닙니까? 진태오변호사가 요구하는 그런 식으로 재판을 한다면 재판을 네 번 다섯 번 백번이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그게 법원의 사고방식이었다. 판결문의 권위가 중요했다.


  “그러면 재판을 농락한 이동팔의 허위가 눈앞에 보이는 데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잘못을 끝까지 덮을 겁니까?”


  내가 되물었다.


  “그 말씀은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우리 재판부에서 다시 판단 하라고 하는 건데 솔직히 그건 곤란하네요.”


  재판장이 자기입장을 털어놓았다. 그는 차라리 담백한 사람이었다.


  “저는 어차피 작가의 사회적의무로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려면 감옥에 갈 각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인생을 거는 무모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작가에게 문학은 또 하나의 구원일 수 있습니다. 실정법과는 차원을 약간 달리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제가 겪은 이 재판과정도 꼭 소설로 써서 남길 겁니다.”


  내가 진심을 말했다.


  “그러면 우리 재판부도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겠네.”


  재판장이 옆의 배석판사들을 둘러보면서 대답했다. 잠시 침묵하던 재판장이 나를 보고 다시 말했다.


  “진태오 변호사께서는 혹시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 이런 법적절차를 이용하는 건 아닙니까?”


  나는 화가 났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재판장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다른 변호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법정을 이용하고 판사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재판을 이용합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고 말았다.


  “이 소송은 이동팔이가 저를 노리고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피고가 됐습니다. 저 역시 지금 괴로움 속에서 허덕입니다. 형사고소로 철의자에 앉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법적절차를 이용하다니요?”


  “아 참 그랬었죠? 그러면 이동팔이가 이 소송을 취하해 주면 좋겠네요? 대법원은 어쨌든 강 변호사의 주장사실이 허위라고 판정했으니까 강 변호사님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니까.”


  재판장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여강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사건은 이동팔씨와 여강구씨가 우리 사법부를 완전히 농락했다는 소리가 되네요? 그렇죠?”


  재판장은 사법부의 권위가 침해당한데 분노하는 것 같았다. 재판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형사고소도 당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를 지켜본 후에 이 재판을 다시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조을제 증인의 진술도 듣겠습니다.”


  재판이 미루어진다는 얘기였다. 법정을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였다. 여강구가 앞에 있는 이동팔의 대리인 추대만변호사의 뒤통수를 보면서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 이동팔 그 좆같은 새끼, 돈에 팔린 좆같은 변호사 새끼를 샀네.”


  그의 숨겨진 꼬리가 살짝 보이는 것 같았다.


  재판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고 재판하겠다는 법원의 입장이었다. 검찰 역시 나에 대한 고소사건을 그냥 잡아두고 있었다. 나는 목에 올개미가 걸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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