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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공자의 추락, 이혼 그리고 자살 (16)

운영자 2014.01.29 16:08:09
조회 791 추천 1 댓글 0


  그날밤 10시경, 양화대교. 깜깜한밤하늘 밑으로 한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 위로는 미친 듯 달리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현란했다. 다리 중간쯤의 난간 위에 중년의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쓸쓸한뒷모습이었다. 마치 미친 듯 달리는 현실과 피안의 강물 중간쯤 서 있는 것 같았다. 고일심이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담뱃불을 던졌다. 담뱃불은 빨간 포물선을 그리며 강물 아래로 한없이 떨어졌다. 이윽고그가 결심한 듯 난간 위로 올라섰다. 순간, 새가 날개를활짝 펴듯 그가 팔을 옆으로 뻗치더니 검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무렵 강변파출소의 박 경장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강물 위는 흐느적거리는 불기둥으로가득 찼다. 다리 난간을 보트가 ‘차르르륵’ 모터 소리를 내며 물살을 만들며 지나가고 있었다그때 물 위로 공 같은 물체 하나가 보였다. 물체는 아주조금씩 강가로 다가왔다. 사람이었다. 그 시각, 옷을 입은 사람이 수영을 하며 강둑으로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박경장이둑 아래로 내려가 그에게 다가갔다. 물에서 나온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박경장은 그를 강변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주민등록증좀 봅시다.


  박경장이말했다. 그는 젖은 웃옷 주머니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고일심이었다. 평소에 헬스클럽에서 규칙적으로 수영을 즐기던 그를 한강은 죽일 수 없었다.


  물에젖은 공일심이 파출소 나무의자에 앉았다. 당직 경찰관은 고일심의 수첩에 적힌 형의 전화번호로 전화를걸었다. 12시가 되자 강변의 취객들이 서로 싸우다가파출소로 끌려오는 통에 파출소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그 순간 고일심은 왁자지껄한 소란을 뒤로하고 소리없이파출소 문을 열고 어둠속으로 걸어나갔다.


  다음날해질 무렵. 영동대교 앞의 D호텔 로비로 후줄그레한 옷을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그가 접수대 앞으로 갔다.


  “방하나 주쇼.


  그가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방값을 치렀다. 호텔 직원이 내민 등록카드에 그는 아무렇게나 휘갈겼다. 흔한 일이었다. 남자가 혼자 와서 키를 받아 가면 나중에 누군가그 방에 들어가는 수가 많았다. 그렇지만 옷이나 표정이 이상했다. 하지만그것까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방 안에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온수꼭지를 틀자 따듯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욕조 바닥에 앉아서 정성들여 몸을 닦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피어올랐다. 샤워를 끝낸 그는 룸서비스에 맥주를 시켰다. 노란액체가 갈증을 일으키는 육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창문을 통해 도심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한판의 승부고 도박이었다. 그는 흠한 점 없는 완벽한 승리에 자신을 걸었다. 그러나 성공을 거의 눈앞에 두고 마지막에 졌다. 이 오점을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다.


  ‘그래, 남자답게 죽는 거야.


  그의얼굴에서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벽으로 다가가 옷걸이에 걸어 둔 점퍼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낮에 남대문 시장에서 산 칼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불빛에 반사되어차갑게 빛났다. 할복을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바로절명하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에게는 할복할 때 옆에서 목을 쳐주는협조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그는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을 아름답게 생각해 왔다. 가히 죽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미련없이 가는 것이다. 그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웃옷을 벗었다. 평소 단련했던 근육들이꿈틀거렸다. 카르이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자 묵지한 중량감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그는 칼날을 왼쪽 아랫배 끝에 댓다. 배가 그걸 느낀 듯 꿈틀했다. 순간 칼자루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칼날을 뱃속에 깊이 박아 넣었다. 뜨끔했다. 그는 손에 잡은 칼자루를 놓치지 않고 더욱 단단히 잘았다. 정신을잃기 전에 배를 갈라야 했다. 그는 힘껏 칼자루를 오른쪽으로 잡아 끌었다. 뱃가죽이 갈라지는 감각이 칼끝을 통해 손에 전해졌다. 비릿한 피냄새가풍겨왔다. 다시 한 번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칼날을 옆으로 밀었다.물컹하고 뜨거운 게 배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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