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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공자의 추락, 이혼 그리고 자살 (7)

운영자 2014.01.15 17:57:53
조회 777 추천 0 댓글 0

  이혼법정은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줄줄이 붙어 앉은 남자와 여자들의 표정에는 미움과 증오가 가득했다. 이혼을 기다리는 이 장소에서 가장 미운 얼굴들이었다. 그들 모두가결혼식에서는 행복의 미소를 듬뿍 담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법정은 그들이 살아 온 지난 날의 잘잘못을재는 심판대였다.


  746호 피고 고일심!


  재판장이호명했다. 나는 재판장 앞의 피고석에 나가 섰다. 원고측박변호사가 나와 내 평의 원고석에 나란히 섰다. 그는 대단한 명성을 가진 일류변호사로, 법원장 시절 법률이론의 대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재판장 역시그에게서 실무와 이론을 배운 판사였다. 명성에 어울리게 그는 시중의 재벌, 고급관료 등의 변론을 독점하고 있었다.


“피고측 변호사님!


  각진턱에 하얀 얼굴의 재판장이 걸걸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예!


  내가대답했다. 재판장이 말을 이었다.


  “원고측변호사님께서 고일심의 정신감정을 신청한 지 벌써 여러날이 됩니다. 법원이 고일심에게 서울대 병원에서정신감정을 받으라고 명령 했는데 아직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빨리 감정에 응하도록 해주세요.


  재판장이재촉했다.


  “알겠습니다. 정신감정을 받게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사건을 맡은지 얼마 안되었으니기록을 검토할 시간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부탁했다. 그때 원고측 박변호사가 끼여들었다.


  “재판장님, 이거 너무 소송이 지연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원고측은 빨리 이혼소송을종결시켜 달라고 성화가 득달같습니다.


  회장은박변호사라는 일류변호사를 통해서 딸의 이혼문제를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었다. 사건을 많이 맡는 박변호사역시 사건의 종결이 급할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개입한 것이다.


  나는법원에 가서 고일심의 이호사건 기록 전체를 복사해왔다. 기록에는 그동안의 소송진행에 따른 결과가 문서로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먼저 눈에 뛴게 두 군데 대학병원 신경정신과의 치료확인서와 입원확인서 그리고개인의원 진단서였다. 병명은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었다. 의사의의견 난에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예민하며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고 적개심에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서류를 계속 검토해 나갔다. 고일심의 장모가 되는 회장부인이증인으로 나와 말한 내용들이 증인신문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사위고일심은 결혼 후 바로 회사에서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세는 장인인 회장을 미워하는마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일심은 장인에 대한 보복으로 집에서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40대 가수를 보고 ‘중후한 멋이 있다’고 하면고일심은 주위에다 마치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고일심은 특히 아내의다른 남자와의 관계에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망상에 사로잡혀, 아내가 결혼 전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처녀성을 잃었다고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에게‘외할아버지는 원수니 가까이 하지 마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고일심은 아내의 사생활에도 간섭이 지나쳤습니다. 예를 들어 ‘말대답하는 것은 버릇없는 짓이다’, ‘남자들 앞에서교양 없이 눈 똑바로 뜨지 마라’는 등의 잔소를 했습니다. 회사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괴로워하기도했고, 사진첩에서 처가 가족사진만 나오면 모두 꺼내 찢어버렸습니다.


 

  고일심의말고 장모의 증언은 보는 시각만 다를 뿐 결국 일치했다. 고일심은 회장 때문에 자신이 미쳐간다고 했고, 장모는 고일심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신경쇠약의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재판다음날 고일심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주 밝고 명랑한 표정이었다.


  “야, 엄변호사! 정말 고맙다. 역시동창이 좋기 좋구나.


  그가기분 좋게 떠들며 나의 등을 툭툭 쳤다.


  “그래, 재판 진행은 어떻게 됐어?


  그가본론을 꺼냈다. 진단서상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그러나나는 그의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정신과 교수에게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임상의학상 정신병의 판단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었다. ‘종교에 심취해 생긴 환상과 환청 증세도 정신의학상으로는 비정상이다. 그러나그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정신병이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현대에서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있으면 정신병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일심은 아주 정연된 논리를 가졌다. 일상생활도 거의 정상인들과 다름없이 해 나가고 있었다.


  “원고측에서 자네의 정신과 진단서를 증거로 제출했는데 병명이 좀 그렇거든..


  내가조심하며 말했다.


  “아, 그거! 예전에 내가 한 달간 입원한 적이 있지. 그때의 진단서야.


  고일심이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거기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써 있던데?"


  내가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신과의사들이란 게 말이야, 환자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교과서에서 배운 그럴듯한 병명 하나를 붙이지. 상투적인 수법이야. 내가 의도적으로 말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져.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처럼 하면 조울증이라고 하고, 건강진단을 자주받아야 안심하겠다고 하면 건강염려증이라는 신종 정신병 딱지까지 붙여주는 세상이거든.


  그가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그런데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마음대로 진단서를 떼 줘도 되는거야?


  “왜?


  “정신증세는정말 보호해 줘야 할 프라이버시인데,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자료로 의사가 작성해도 되느냐 말이지.


  일리있는 말이었다


  "아마 자네 처가 보호자의 자격으로 발급받은 거겠지.


  내가웃으며 대답했다. 구가 나에게 다시 못 박듯 설명했다.


  “어쨋든말이야, 저쪽에서 나를 정신병자라고 뒤집어 씌우는 건 완벽한 거짓말이야. 그렇게 몰아야 나라는 물건을 용도폐기할 수 있는거겠지. 옛날에 부잣집에서며느리 내몰 때 뭔가 구실을 만들잖아? 바람이 났다느니, 미쳤다느니하고 말이야. 내가 그 꼴이 된 셈이야. 저쪽 말은 일절믿지 말고 이기기만 해줘. 그러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그가부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그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다음에사무실에 올 때 내가 정신의학 교과서를 가지고 올게. 그거 공부 좀 하면 소송하기가 수월할 거야.


  그가안심한 듯 한마디 던지고 유유히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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