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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허수아비 44. 민경식 변호사

운영자 2013.07.31 18:29:46
조회 731 추천 0 댓글 0

  여강구를 만났다. 다시 중형이 선고된 그는 볼이 잔뜩 부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혹을 떼 보려다가 큰 거 두 개를 양쪽에 붙인 것이다. 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황변호사는 재판장과 잘 안다고 해서 선임했어요, 같이 유학도 하고 동료판사로 잘 지냈다구요, 판사는 변호사에게 예우를 해 주는 게 최고의 대접이죠, 그런데 재판장은 황변호사를 무시하고 대접을 해주지 않았어요, 저는 피고인석에서 벌써 변호사가 느끼는 모멸감을 알아챘어요, 그러면 결과는 뻔 한 거죠. 황 변호사님도 재판장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모든 원망이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무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항소해서 두 번째 라운드를 뜁시다. 앞으로는 내가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이 되어 그동안 직접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진술할게요. 그러면 증거가 없어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법원이 더 이상 못하겠죠 검찰에서는 바로 나를 위증죄로 구속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증언할게요. 변호사에서 증인으로 그리고 그 다음은 피의자가 되고 감옥에 갈 수 있겠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단 항소심에서는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세요.”


  내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변호사님께서 정말 그런 각오까지 하신다는 말입니까?”


  여강구가 믿지 않는 눈길로 나를 보았다.


  “그렇습니다.”


  내가 다시 확인시켰다.


  “그렇다면 저로서는 정말 감사하죠, 여러 번 선임해 본 경험으로 변호사들은 극도의 이기주의자인 걸 저는 압니다. 모두들 자기는 솜털도 다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저에게 항소심에서 변호사님과 호흡이 맞을 변호사 그리고 항소심 재판장과 잘 아는 분을 소개시켜 주세요.”


  여강구가 힘이 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소심 담당 재판장이 결정됐다. 재판장과 마음을 열고 얘기할 변호사가 필요했다. 동시에 변호사는 그동안 일을 했던 나와도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했다. 여강구도 나름대로 항소심에서 일할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는 딱 부러지게 믿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재판장과 친한 변호사를 선택해도 그건 그거고 자기에게 여지없이 조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친구인 민경식변호사를 떠올렸다. 법원장을 한 그는 한 달 전 법원을 그만 두었다. 무난한 성격으로 판사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나는 민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두꺼운 안경에 유난히 머리통이 큰 그는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었다.


  “어이 진태오 대감 오셨군, 무슨 일이야?”


  그가 걸직한 어조로 느릿하게 말했다.


  “민 변호사 말이야, 김용구 고등법원 부장판사 잘 알아?”


  내가 물었다.


  “잘 알다마다, 초임시절 배석판사를 같이 한 적도 있지, 어제도 법원에 갔다가 만났는데 자기도 한 건 도와줘야 할 텐데라고 먼저 말하면서 나를 걱정해 주더라구.”


  “무슨 말도 서로 할 수 있는 사이야?”


  “그럼”


  민변호사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내가하던 여강구 사건 항소심변호를 맡아봐”


  내가 그에게 권했다.


  “왜 당신이 하지 않고 나보고 하라고 하지?”


  민 변호사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살폈다.


  “내가 이번에는 변호사가 아니라 증인을 해야 해, 그래서 나를 신문해 줄 호흡이 맞는 변호사가 필요한 거지”


  “변호사가 증인까지 서 준다? 대단하네, 뭔데?”


  그가 물었다.


  “조폭출신 로비스트 여강구가 이십억 원을 뇌물로 줬다는 건 검찰이 연출하고 이동팔이 연기한 허구였다는 거지. 거기에 대법원까지 속았고.”


  나는 그간의 사정을 대충 얘기했다.


  “여강구 그 사람 조폭이야? 난 그런 사건은 안 해.”


  민 변호사가 거절했다. 더 이상 말로 설명하기 싫었다.


  “조폭인지 아닌지 그건 일단 자네가 만나보고 직접 판단해”


  “조폭은 일 죽도록 시켜놓고 돈 안주는 게 생리잖아?”


  그게 조폭들의 버릇이었다.


  “그렇지는 않아, 그를 상대해 본 사람들이 정확히 일만 해 준다면. 괜찮다고 그래”


  “권력에 맞장 뜨는 건데 그게 될까?”


  민 변호사는 계속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삼십년 가까이 판사를 해 온 그였다.


  “승패를 떠나서 한번 끝까지 붙어보자는 깡다구지”


  나는 여강구의 투지도 설명해 주었다.


  “그럼 깡으로 고소를 했다가 무고죄로 되잡혔겠네?”


  민 변호사가 뭔가 대충 알겠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에서 뭔가 새로 죄를 만들어 여강구를 죽이는 작업이었구만, 감히 깡패주제에 공권력에 도전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웃으로 나란히 있는 법원은 검찰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고 말이야”


  “맞아 지금 공갈죄부터 경매방해죄까지 열개 죄명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 황변호사가 무죄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데도 모두 유죄가 선고됐어.”


  “알만해, 때가 됐으니까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


  민 변호사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잠시 후 교대역 부근의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굵어진 빗방울들이 길바닥 웅덩이에 떨어졌다. 우리는 허름한 생선 구이 집으로 들어갔다.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매운탕을 앞에 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구석의 빈 탁자에 민 변호사와 마주앉았다.


  “높으신 판사님이 변호사를 해보니까 감상이 어때?”


  내가 물었다.


  “못해먹겠어, 다 늙어서 다시 사건기록들을 하나하나 봐야 하니까 말이야. 더구나 사건의뢰인들이 찾아와서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고 떼를 쓰는 경우도 많아. 내 더러워서 돈을 다 돌려주고 내쫓은 적도 많아”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우리는 이면수와 삼치구이 그리고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시켰다. 잠시 후 여자 종업원이 밑반찬과 소주 한 병을 놓고 갔다. 김치와 미역무침, 멸치볶음이 보였다. 그가 소주병을 따서 잔에 따라 단번에 입속에 털어 넣은 후 말했다.


  “재판장을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하고 첫 사건이 있었어, 그런데 바로 내가 데리고 있던 배석판사에게 부탁할 일이 생긴 거야, 자네는 모르지만 부장과 배석판사는 교수와 조교이상으로 도제관계인 셈이야, 그런데 이 배석이 나에게 물을 먹이더라구, 안 된다는 거야, 돌아와서 몇 날 며칠 밤 고민을 해 봤어, 내가 얼마나 현직에 있을 때 부하판사에게 처신을 잘못하고 신뢰를 받지 못했으면 그런 일을 당할까 말이지.”


  그의 얼굴에 회의가 피어올랐다.


  “그건 배석판사가 자네를 물 먹인 게 아니라 형식적인 기준에만 충실한 걸 수도 있었겠지”


  내가 그를 위로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요즈음 공부선수인 아이들은 모두 판검사감이라고 하잖아? 일등인 아이를 둔 부모들을 보면 자식들에게 가난한 집 아이나 실력 없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고 하더라. 아픈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들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 판사가 되기 위해 집안에 초상이 나도 안가는 거 알잖아? 그런 아이들이 커서 판사가 됐는데 어떻게 인간적인 면을 기대한 거야? 모순이잖아? 이제는 별 볼일 없게 된 왕년의 부장판사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하겠어?”


  “아니야 그러지 마 젊은 판사들 중에는 지혜 있고 실력 있고 타고난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어려서부터 피해의식을 가진 아이들이 공부만 해가지고 판사를 하면 더 튀는 이상한 행동을 해, 잔인하기도 하고 말이야”


  민 변호사가 법관의 세계를 두둔했다.


  다음날 난 그동안 내가 봤던 모든 기록과 자료들을 민변호사에게 보냈다. 이틀 후 민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록을 읽으니까 여강구가 뭣 하러 현찰 이십억 원을 주고 사십억 원짜리 어음을 받았겠어? 그 자체만으로 뇌물인 로비자금이 아니라 사채자금이라는 사실이 뻔한 거지, 강변호사가 벌써 여러 번 그 사실을 주장해서 내가 더 변론할 게 없는 것 같아”


  민변호사는 이미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가 계속했다.


  “기록한권을 읽는데 하루 종일 걸렸어, 강 변호사 너 읽고 쓴 걸 보니까 투지가 아직도 대단 하더라, 내가 기록을 보면서 읽고 느낀 건데 사실 대법원에 오판이 엄청나게 많아 그렇지만 그 잘못들을 끝까지 추궁한다면 재판이 끝이 없을 거 아니냐?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법원이 틀렸더라도 재판이 더 이상 거론되지 말게 해야지, 그래서 삼심제가 있는 거야, 세 번 재판해주면 법원이 틀렸어도 절대로 다른 말 하지 않도록 입을 막아 버리는 거지.

  어떤 재판장도 속으로는 여강구가 억울한 걸 알걸?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로 그 말을 듣지 않을 거야. 판사들의 생각으로는 기껏해야 여강구가 징역 얼마 더 사는 건데 그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민변호사가 내게 타이르는 어조로 계속 얘기를 했다.


  “그리고 자네가 쓴 글들과 변론기록을 다 읽었어, 먼저 훌륭한 재판장님이라고 한참 올려줬어야지? 그래야 봐 줄 기분도 나는 거야, 그런데 그게 부족해, 아마 재판장으로서는 속으로 강변호사를 보고 너만 잘난 척 하냐? 하고 기분이 나빴을 거야”


  “나름대로 아부를 많이 했는데?”


  내가 되받아 말했다.


  “아니야 평생 재판장으로 아부를 받아온 내 경험에 의하면 아직 많이 부족했어, 다른 변호사들이 워낙 더 많이 하거든”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김정일 앞에 그렇게 많은 수식어가 달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민변호사에게 물었다.


  “재판부의 논리와 시각이 그런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억울한 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마음은 어떻겠어? 그냥 당하고도 참고 살아야 하나? 판사는 억울한 걸 봐주는 그런 직업이어야 하잖아? 우리 법공부할 때는 전부 정의를 실현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자고 그랬지? 그런데 이게 뭐야?”


  “법대에서 공부할 때는 우리 모두 그렇게 말했지, 그렇지만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현실이 달라지는걸 알잖아? 수사나 재판은 그것들과는 다른 또 다른 게임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지. 그게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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