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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4

운영자 2010.08.03 11:26:10
조회 382 추천 0 댓글 0

  구치소의 변호사접견실은 동물원의 침팬지 우리 같은 투명한 유리박스였다. 거기서 정을병씨와 마주 앉았다. 깡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노인이었다. 추워 보이는 하늘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죄인의 태도가 아니었다. 쑥스럽거나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내가 의아할 정도였다. 변호사인 나는 ‘내가 왜 왔나?’ 하고 속으로 물을 정도였다. 그는 사건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화를 풀기 위한 형식적으로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벌써 다섯 달 째 감옥 안에서 살고 있었다.


 “밖에 있을 때나 비슷해요. 책을 읽고 명상도 하죠.”

  칠십대 중반의 노인답지 않게 카랑카랑한 힘 있는 목소리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난 횡령한 적이 없어요. 받을 돈을 받은 거지.”

  너무 강하고 역설적인 대답에 나는 놀랐다. 잘못했다고 해도 용서받을까 말까였다. 그런 뻔뻔스런 태도는 재판장을 분노하게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협회 회장을 하면 주로 기부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죠. 가난한 문인들에게 원고료로 명목으로 얼마씩이라도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서였죠. 그렇지만 단번에 턱 기부금을 내 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자존심을 꺾고 여러 번 찾아가 사정 해야죠. 그 과정에서 더러 밥값도 내고 기름 값도 들었죠. 막말로 다른 어느 단체의 회장도 순수하게 자기 개인 돈을 털어서 뛰는 걸 못 봤어요. 협회에서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거기다 매달 활동비를 보내줬죠. 그걸 쓴 거요. 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학지에 광고도 유치했어요. 또 협회로 내 저작권료나 원고료도 섞여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받을 돈 받은 거지. 그 돈 이외에는 검사가 아무리 뒤져도 단 한 푼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는 전혀  죄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법은 상황에 따라서는 형식논리고 치사했다. 자기회사의 돈을 자기가 빼서 써도 횡령이다. 국가보조금의 항목을 변경해서 합리적으로 써도 법에 걸렸다. 법망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법관 마음이었다. 자기 양심에만 거리끼지 않으면 무죄라고 덤비는 사람들은 위험했다. 


 “그래도 세상은 지금 엄청난 오해를 하는데 해명하셔야죠.”

  내가 말했다. 알리고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모른다.


 “설득이나 변명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아니면 아닌 거지, 뭘. 모략하는 놈들한테는 대꾸할 필요조차 없어요.”

  그가 한마디로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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