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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사는 방

운영자 2010.08.24 12:43:11
조회 232 추천 1 댓글 0

   후덥지근한 법정이었다. 이마와 뺨에 끈끈한 땀이 프라이팬 바닥의 기름같이 붙어 있었다. 죄인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앞에서 있는 남자가 비굴한 표정으로 재판장 눈치를 살피면서 변명했다.


  
“제가 나이도 있고 혈압도 높습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잘 봐달라는 판에 박힌 얘기였다. 듣고 있던 재판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잔머리와 교활한 혀로만 재판을 받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한마디 할 수는 없는 겁니까?”   

   그 판사는 괜찮은 사람 같았다. 죄인의 마음을 느끼려고 하는 판사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형식적인 변명에는 기계적인 판결 선고가 보통이었다. 현실의 법정에서 많은 죄인들이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이 보일 때가 많았다.  진정한 참회 없이 봐달라는 소리는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었다. 교도관에 이끌려 그가 나가고 60대 초의 작달막한 남자가 다음 재판을 받기 위해 피고인석에 나와 앉았다. 작고 동그란 눈을 가진 선량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소매치기 전과 18범이었다. 나이도 60대였다. 잡힌 소매치기들의 모습들을 보고 놀랄 때가 많았다. 상상과는 정반대였다. 선량한 학생이나 점잖은 직장인 모습일 때가 많았다. 그런 보호색으로 사람들의 경계를 늦추나 보다. 재판장이 법대위에 놓인 기록을 들춰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딸이 법과대학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죠?”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상습소매치기인 게 싫어서 딸이 성과 이름까지 갈았다는데 맞습니까?”

   “------”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는 뜻이다.


   “판사가 되겠다고 공부하는 딸을 보면서도 이렇게 소매치기를 계속하고 싶습니까?”

   판사가 다시 물었다.


   “저도 사실 힘듭니다.”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되지, 뭐가 그렇게 힘이 듭니까?”

   판사가 다그쳤다. 선량한 보통사람은 죄를 짓기가 어렵다. 그러나 악마의 발톱에 걸린 죄인들은 죄를 안 짓기가 쉽지 않다.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마약을 끊기보다 어려운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이렇게 재판에 오지 않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증거를 없애기 때문에 재판에 회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는 한탕을 하고 다시 그 자리에 갔다가 얼굴을 기억하던 가게 주인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속칭 신삥도 아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


   “그냥 가버렸으면 될 텐데 왜 다시 왔다가 걸렸죠?”

   “이건 판사에게 말하면 안 되고 변호사님에게만 솔직히 말씀 드리는 건데요, 그날 소매치기를 하기로 계획한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다시 갔다가 붙잡힌 거죠.”


   기가 막혔다. 도둑들도 목표액을 설정해 놓고들 뛴다. 이미 그들에게 남의 물건에 대한 도덕적 양심은 증발한지 오래다.


   “소매치기 기술로는 랭킹 안에 드는 기술자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혔어요?”

   내가 물었다. 여러 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소매치기 세계였다. 그런데 그는 혼자 한 것 같았다.


   “사실은 바람잡이를 고용해서 협업을 했어야 하죠. 그런데 요새는 그렇게 하면 정보가 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때그때 임시로 바람잡이를 고용해서 일당을 주고 한 번 같이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그나마 바람잡이를 고용하는 돈도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하다가 잡혔죠.”
 

   “잡힌 후에 조사과정에서 오리발을 내밀었어요? 아니면 자백했어요?”

   내가 물었다.


   “당연히 오리발을 내밀었죠. 우리 세계에서 그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현행범도 아니고 증거도 없었습니다. 형사나 검사가 아무리 들고쳐도 우리는 절대로 자백이라는 게 없죠.”


   “자백을 했던데?”

   내가 기록을 보면서 물었다.


   “그게 나도 이상합니다. 제가 신세를 진 목사님이 오더니 차라리 자백을 하고 형을 가볍게 받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뭔가에 홀린 것 같아요.”

   그는 자백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게 범죄의 세계다. 20여년의 변호사 생활에 수많은 도둑들을 만났다. 한 도둑이 내게 오히려 물었다. 자기는 그렇게 수 백  번 남의 집 담을 타넘고 들어가서 도둑질을 했는데도 왜 양심이 아프지를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양심이 한번 아파 봤으면 좋겠다고 비웃듯 말했다. 왜 그는 양심이 아프지를 않을까? 나도 오랫동안 그게 궁금했다. 도둑질을 자꾸 하다보면 양심이란 놈이 그 집을 나가버린 게 분명했다. 일년 전 어느 날 아내가 양품점에서 가방을 사 온 일이 있었다. 아내는 우연히 그 안에 고급 스카프가 두 장 있는 걸 발견하고 그 중 하나는 단골 슈퍼의 아줌마에게 선물로 주고 한 장은 집으로 가져왔다. 횡재를 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방 안의 주머니 마다 고급 외제 스카프들이 여러 장씩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다. 나의 직감으로 종업원이 속칭 삥땅을 하기 위해 가방 주머니에 스카프들을 숨겨놓은 것 같았다. 법률고문을 하다보면 여성용 매장에서 그런 일이 흔한 걸 알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좀도둑이 많다.  


   “여보 이걸 어떻게 하지?”

   아내가 겁먹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두 장까지는 괜찮았는데 너무 많으니까 아내는 그제야 겁이 덜컥 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긴? 가서 돌려줘야지.”

   내가 말했다. 번거롭긴 해도 마음속에 귀한 무엇이 가출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는 판사 한 사람은 사과 한 박스를 뇌물로 받았는데 한밤중에 그걸 돌려주러 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고 하소연했었다.  밤 12시가 넘어 빗방울이 떨어지는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사과박스를 어깨에 메고 있자니 뇌물 받기보다 돌려주기가 훨씬 힘들다는 얘기였다. 아내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슈퍼아줌마한테 준 걸 도로 달라고 해야 할텐데..”


   “그래야겠지.”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지?”

   아내가 다시 물었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되겠느냐는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았다.


   “양심이 아프면 돌려주고 아프지 않으면 그냥 놔둬.”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다음날 아내는 다른 새 스카프를 사서 슈퍼아줌마에게 주고 어제 준 걸 되찾았다. 그리고 양품점으로 가서 스카프를 모두 돌려주고는 불쾌한 얼굴로 돌아왔다. 


   “갔더니 내가 어제 가방을 사간 손님인지 조차도 모르더라구. 내가 스카프를 돌려주니까 오히려 더 많았을 텐데 하면서 나를 의심하는 얼굴이야. 고맙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이야.”

   아내는 내심 칭찬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행동은 선행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따금씩 어떤 상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일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그 순간은 아마도 아무런 의식 없이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듯 마음이 편한 상태일 것 같다. 마음이 편하려면 ‘내안의 나’가 사는 내면이 깨끗해야 한다. 매일같이 내 속에 있는 공간을 쓸고 닦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변호사로 상담을 하면서도 속으로 나 자신을 체크한다. 돈을 목표로 번드르르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친구들 모임에서도 이제 말조심을 한다. 침묵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입을 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아와 반성해 보면 지저분한 자랑만 하거나 공허한 수다만 늘어놓은 것 같아 속이 편치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양심도 난초같이 조심조심 키워야 하는 것 같다. 물을 주고 햇볕을 보게 해 주고 더러 사랑도 하고 말이다. 인생 산맥을 걸어오면서 값싼 이기주의로 친구의 우정을 소홀히 한 적이 많았다. 앞서가는 친구를 보면서 시기와 질투에 가득 찼었다. 쓸데없는 쓰레기 같은 욕망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것 대신 좋은 마음으로 채우고 살았었으면 순간순간 행복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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