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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地獄圖) 2

운영자 2010.08.17 10:21:15
조회 408 추천 0 댓글 0
    그러던 어느 날 화공이 성주를 찾아가 호소했다.


   
“소인은 본 것이 아니면 그릴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옥병풍을 그리려면 지옥을 봐야한단 말인가?”


    성주가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장면으로 맹렬한 불길로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귀족의 수레를 그리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부인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주위로는 살을 뜯어먹는 괴조가 깍깍대며 날아다니는 광경입니다. 모쪼록 수레를 한 냥 소인의 눈 앞에서 불을 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시다면------”


    화공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실제로 여자 한 사람을 그렇게 죽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성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마. 수레를 하나 내어 불을 붙이겠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여쁜 계집 하나도 옷을 입혀서 앉혀 놓으마. 화염 속에서 계집이 고통을 받는 걸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니 과연 천하제일의 화공은 다르구나.”


    성주의 말에는 원인모를 비웃음이 섞인 듯 했다. 며칠 후 깜깜한 밤 성 밖 외진 곳에 수레가 하나 놓여 있었다. 주위에 서 있는 인부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수레의 윤곽을 어렴풋이 비쳤다. 수레의 안은 발이 무겁게 쳐져 있었다. 화공이 불려와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보는 앞에서 인부들은 수레주변에 쌓은 장작에 불을 붙였다. 불길이 올라가면서 수레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발이 타서 없어지는 순간 그 안에서 시녀로 들어간 화공의 딸이 보였다. 맹렬한 화염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후 수레는 한줄기 불기둥이 됐다가 사그러졌다. 성주는 사람까지 죽이면서 그림을 그리려고 한 화공을 혼내주고 싶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도덕을 분별하지 못하면 벌을 받아야 했다. 한 달이 흘렀다. 화공은 완성된 지옥도 병풍을 사람을 시켜 성주에게 보냈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딸이 죽는 걸 보고 그림을 그린 화공을 인간모습을 한 짐승이라고 욕했다. 그가 그린 그림이 펼쳐졌다. 천지에 불어대는 무서운 불폭풍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화공을 욕하던 모든 사람들이 묘한 엄숙함에 감동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 시각 화공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지옥도가 완성된 다음날 자기 방 들보에 밧줄을 매달고 목매어 죽은 후였기 때문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은 내게 깊은 감동과 변화를 주었다. 20여 년 동안 법정주변에서 본 광경들을 발표해 왔다. 사각지대의 인권을 고발한다는 뜻에서였다. 일본작가의 ‘지옥도’을 읽은 후 태도가 달라졌다. 어깨너머 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체험을 해야 진짜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건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상황에 따라 누명을 쓰고 수사기관에서 철의자에 앉아 장시간 모멸감을 느끼면서 조사를 받아 보기도 했다. 재산이 다 날아갈지도 모르는 민사소송의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보기도 했다. 글도 피를 먹고서야 한 줄 한 줄 진짜가 되어 나온다는 걸 알았다. 유명가수 전인권씨가 히로뽕흡입으로 감옥에 있을 때 내가 그의 변호사였다. 나는 책에서 본 이 화공 얘기를 전해 주면서 재판장 앞에서 당당히 외치라고 했다. 진정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법을 넘어야 했다고. 변론도 글도 그 무엇도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 명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 명품 만드는 방법을 일본작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에서 알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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