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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료

운영자 2010.09.07 16:47:48
조회 718 추천 0 댓글 4

    사무실로 70대쯤 되는 남자가 들어왔다. 대머리에 퉁방울 같은 눈을 가진 심술궂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항고이유서를 써달라고 했다. 건설업자인 그는 거액의 대출금을 은행에서 끌어내기 위해 비용을 썼는데 안됐다는 것이다. 그는 중간에 있던 사람들을 고소했는데 무혐의처분이 났다. 나는 항고이유서를 써 줄 것을 거절했다. 자기 욕심이 달성되지 않으면 또다시 변호사를 욕할 사람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의뢰인의 상당수가 그런 부류였다. 법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한 시간이 넘게 음료수까지 제공하면서 열심히 듣고 정직한 의견을 얘기해 주었다.

 

    “어이구 아주 훌륭한 변호사시구만.”

 

    그가 헛 공치사를 했다. 상담이 끝나고 그가 그냥 돌아 나가려고 할 때였다. 내가 그를 불러 세우고 말했다.

 

    “상담료를 주시죠. 한 시간이 넘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정식으로 요구했다.

 

    “무슨 상담료를 받습니까? 그냥 무료인줄 알고 왔는데요.”

 

    그가 눈알을 부라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법원가를 돌면 다 무료상담변호사 천진데 왜 그러냐는 눈빛이었다.

 

    “저는 시간과 경험을 열심히 제공했습니다. 대가를 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왜 그냥 상담을 해드려야 합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나는 조금의 시간도 에너지도 나누어주기가 아까웠다. 그 시간동안 나는 소중한 책을 읽을 기회를 빼앗겼고 사랑하는 손녀를 귀여워할 순간도 포기했다.

 

    “지금 현찰이 없어서..”

 

    그가 궁색한 변명을 했다. 안주겠다는 얘기다. 나는 그에게 은행계좌가 적힌 메모지를 주면서 말했다.

 

    “그러면 가셔서 이 구좌번호로 상담료를 보내주세요.”

 

    그는 마지못해 구좌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으면서 나갔다. 나는 그가 상담료를 보내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며칠 후 재판을 위해 법원으로 가는 골목길에서였다. 그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길은 외길이었다. 그 남자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모르는 체 하면서 지나갔다. 흔히 변호사를 도둑놈이라고 하지만 의뢰인 중 상당부분이 값 없이 변호사의 지식과 시간과 에너지를 도둑질 해 간다. 그건 눈이나 비같이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져 얻은 게 아니다. 당당하게 상담료를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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