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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재, 중재, 하재

운영자 2010.08.24 12:37:40
조회 456 추천 0 댓글 3

    더러 천사가 사람이 되어 우리들 사이에 끼어서 살기도 하는 것 같다. 60대 중반의 가구점 주인 E장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외모로 그는 보통의 할아버지일 뿐이다. 자랑할 만한 학력도 경력도 없다. 

    요즈음은 중풍을 앓아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항상 얼굴에서는 신비한 하얀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그에게서 감사와 기쁨의 표정이 떠난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가구점을 해서 번 돈을 전과자들에게 쏟아 부었다. 20년 전이었다. 그는 중랑천 저지대 낡은 집 한 채를 샀다. 그리고 그 안에 닭장 같은 쪽방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는 그곳에 살인, 절도, 폭력범으로 감옥에 살다가 나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범죄인들의 정신세계는 다른 면이 많았다. 감사하는 사람이 실제로 거의 없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나서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도 흔했다. 대부분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는 가구를 팔아 남은 이익을 전과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심지어 집까지 담보로 잡혀 돈을 댔다. 잠시 그저 소액이면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대기업이라도 억대 이상 기부하면 회장 얼굴이 한 번 쯤 화면에 비쳤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20억 이상을 그렇게 썼다. 소년, 소녀 가장이나 가난한 노인을 돕는 모임에 그랬으면 그는 영웅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과자들에게 대해서는 언론은 파충류 대하듯 피했다. 그의 행동은 지난 20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며칠 전 그가 사무실로 놀러왔었다. 기름기 없는 백발이 잡으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아직도 마비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몇 년 전 갑자기 수은주가 급강하한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갔다. 그는 입원실에서 나를 보면서 씩 웃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 실제 그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이미 마비가 되어 있었다. 일 년 후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된 그가 다시 가게에 나와 있었다. 그는 조금도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가 비밀을 털어놓듯 입을 열었다.


    “중풍에 걸리고 나서 손발을 제대로 못쓰지만 나보고 아프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래? 하고 물으면 절대 안돌아가. 왜냐? 지금 내 영혼은 그전보다 너무나 맑아진 느낌이 들어. 이 기쁨은 무엇 하고도 바꾸지 않을 거야.”

    그는 이미 다른 정신적 경지에 이른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쓰러지기 전에 교회에 가면 이상하게 제일 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대걸레를 들고 교회바닥 청소를 했었지. 그럴 때면 장로님이 직접 청소를 한다고 모두들 뒤에서 수군댔어. 심지어 목사님도 불편해 하면서 방에서 나오지 못했지. 내 행동을 위선으로 보는 거 같았어. 그런데 중풍이 걸린 후에 다시 교회에 가서 감사를 하면서 청소를 하니까 이제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어. 교인들이 다 나를 따라서 청소를 하는 거야.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놈이 무슨 위선이 있고 허식이 있겠어? 다들 진심이 통하니까 아주 좋았어.”

    나는 그를 친형같이 좋아한다. 나는 그의 그런 마음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학력이 약해 보이는 그는 콤플렉스 투성이어야 맞다. 가구점을 해서 돈을 좀 벌면 과시할 만도 했다. 전혀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래서 한번은 솔직히 물었었다.


    “그거? 사실은 나만의 비밀이 있지.”

    그가 씩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고백을 했다.


    “젊었던 어느 날 우연히 강남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이었어. 멍청한 눈길로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계시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거야. 앞도 뒤도 없이 ‘네가 배운 게 부족해도 내가 너를 선택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야. 남들이 들으면 착각이라고 하면서 다 웃겠지. 그렇지만 내게는 신비하고 귀한 체험이야. 그 순간부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인 것 같더라구. 주님이 나를 선택했는데 그까짓 경기 서울대 그게 무슨 소용 있어. 판검사도 아무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대통령 모두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 했어.”

    그는 정말 그런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직을 파는 옹고집 장사꾼이었다. 가구를 수입하는 독일의 거래처와도 말 한마디로 모든 거래를 끝냈다. 고급가구도 정교한 중국산 짝퉁이 돌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걸 모두 이태리제나 독일제로 알지 전문가도 구별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의 가게에는 그런 가짜가 전혀 발을 못 붙였다. 그는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최고의 비즈니스 기술은 정직임을 확인했다. 그는 일생일업(一生一業)의 직업철학이었다. 보통은 돈을 벌면 회사를 차리고 좀 더 멋있어 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비슷한 성품의 장인들이 몰렸다. 그의 가게에 작품을 내놓는 박쥐장 명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고분의 벽화 중 박쥐만 본을 떠서 자기가 만드는 장의 디자인으로 삼았다. 좋은 재목을 몇 달씩 그늘에 말렸다. 하나하나 자기의 손으로 장을 만들었다. 일 년이 지나야 작은 장 하나가 완성 됐다. 그건 차라리 구도자의 생활이었다. 외길 인생의 가구점 주인은 장인들과 호흡이 맞았다. 좋을 때뿐만 아니라 위기에 닥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었다. 외환위기로 모든 사업에 찬바람이 불 때였다. 그의 가구점만은 거친 풍파에 끄떡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확실히 그의 뒤에는 행운을 주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위기가 엉뚱한 다른 곳에서 닥쳤다. 그는 파산을 한 이웃 가구점 사장을 자기 가게의 사장으로 들어 앉혔다. 동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은 그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가게의 장부들을 다 뒤져 탈세 자료를 찾아낸 후 협박을 한 것이다. 남의 흠을 뜯어먹고 사는 악인도 많았다. 세무자료가 노출되자 그걸 본 현직 세무서원으로부터도 공갈이 들어 왔다. 그의 사업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나는 자신감 있고 천사 같던 그가 탈세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예상 외였다.


    “이 가구라는 게 사치품이라 세금이 엄청나게 비싸요. 내라는 대로 다 냈다가는 절대 가게를 꾸려나갈 수가 없어. 그래서 난 탈세를 했어.”

    그가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체면이나 명분에 좌우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세무서에 가서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이제야 걸렸다고 담담하게 내뱉었다.


    “추징금을 부과 하세요. 그리고 탈세로 처벌하세요. 이제 모든 걸 접을 때가 된 거 같습니다. 흥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는 거지. 뭐.”

    마음을 비운 그의 대담한 태도였다. 그의 솔직한 답변에 세무 관리나 형사가 오히려 난감한 표정이었다. 신기했다. 그의 사업은 망하지 않았다. 협박범도 그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에게는 법도 공갈도 통하지 않았다. 살려고 하니까 힘들지 죽으려고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어려울 게 없다는 걸 옆에서 봤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천사 아니면 도사같이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더러 우스개 소리 같은 형식으로 내게 삶의 진리를 가르친다. 한번은 그와 밥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우리 가구점이 세든 건물의 주인 말이야. 돈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대.”

    그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왜요?”

    내가 되물었다.


    “자기 분수 정도로는 조그만 빌딩하나 정도 관리할 능력인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재산이 2조나 넘었다는 거야. 돈도 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능력범위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재산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지.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나 주식을 사야 하나 회사를 만들어서 관리를 해야 하나 국회의원을 나가야 하나 고민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거야. 자식들도 돈에 눈독을 들이고 서로 싸우고 말이지.”

    돈이 없어도 고통이지만 많아도 지키느라고 더 노심초사하는 게 세상이다. 그가 이번에는 이런 얘기를 했다.


    “돈이 몇 백억, 몇 천억 있어도 절대 못 쓰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은 쓰라고 돈을 거저 줘도 절대로 쓰지 못해. 기껏해야 그 돈을 자기 통장에 넣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야.”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 수백억대의 재산을 가진 노인이 동네잔치 집에 가서 시루떡을 공짜로 얻고는 좋아하는 걸 봤다. 수십만 평의 과수원에 혼자 사는 노인이 몇 천 원짜리 김치찌개도 돈이 아까워서 못 먹다가 혼자 죽어있는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런 걸 구두쇠의 철저한 검약정도로 생각했다. E장로가 나의 그런 관념을 이렇게 깨버렸다.


    “그런 사람들은 검소한 게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거야. 그렇게 한 번 잡혀 버리면 절대로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어.”

    불교경전에서 읽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거기서는 부자의 종류를 상, 중, 하로 구분했다. 돈을 아끼느라고 가족에게조차 못 쓰는 경우를 하재(下財)라고 했다. 자기식구들만을 위해 돈을 쓰고 남에게는 인색한 사람을 중재(中財)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사람을 상재(上財)로 구분했다. 그렇다면 그는 상재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논현동 가구거리에서 가장 큰 점포의 주인이었다. 그는 가구점의 이익을 종업원들과 함께 나눈다. 일정부분은 전과자들에게 주고 있다. 직원들은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면서 우리회장님이라고 부른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말 한마디는 이거였다.


    “경기 나오고 서울대 나온 사람들 하나도 안 부러워.”

    정말 부러워해야 할 것은 학력이나 경력이 아니라 얼마나 마음이 가난한지, 겸손한지, 남을 위해 베풀었는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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