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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농부

운영자 2010.08.24 12:54:55
조회 284 추천 1 댓글 0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고교 선배를 만났다. 오래전에 아내를 잃고 빈 집에서 하루 종일 소주를 마시고 유선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과라고 했다. 그렇게 무위의 일과를 보낸 지 벌써 십년이 된다고 했다. 똑똑하다고 소문났던 그의 안타까운 인생 후반전이었다.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나의 아버지도 그랬었다. 시계추 같이 3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아버지는 인생 후반부 삶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청춘을 함께 한 회사의 낡은 철책상과 의자가 아버지의 전부였던 것 같았다. 퇴직한 다음날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야 출근해야 되는데 갈 데가 없으니까 이상하다”


   공허한 마음을 아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 아버지는 텅 빈 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흑백텔레비전 앞에서 멍하게 세월을 죽였었다. 퇴직금 몇 푼과 함께 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아버지는 노년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보통사람들이 불행하게 늙어가는 공식같이 어느 날 혈압으로 쓰러지고 몸이 마비됐다. 부모의 그런 생활은 자식인 내게도 겨울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그런 단절이 없는 직업,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하고 일찍부터 빈 방안에서도 돈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문학이란 부업을 준비했었다. 

   얼마 전 진공 같이 답답한 인생후반부를 멋지게 반전시킨 늙은 농부를 발견했다. 경북 의성에서도 계곡을 끼고 한참 들어간 마을에 칠십대의 그가 살고 있었다. 그는 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대학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유명제약회사의 영업본부장으로 이십년을 지냈다. 사십대 말의 어느 날 그는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심한 당뇨였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파트 대출금도 많이 남았다. 남의 일 같던 불행이 그에게 닥친 것이다. 

   그는 혼자 조상들이 묻혀있는 고향의 선산으로 향했다. 그도 죽으면 묻힐 장소였다. 가족들에게 그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짐일 뿐이었다. 죽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낡은 고향집은 폐가가 되어 있었다. 기왓장이 부스러지고 낡은 판자대문은 검게 썩은 채 바람이 불면 끼익하고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그는 거미줄이 끼고 구들이 내려앉은 방에 둥지를 틀었다. 

   모든 게 절망이었다. 매일같이 소주에 취해 있었다. 이빨이 흔들리고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 그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언제 내려놓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나를 안달하는 초라한 삼등 여행객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부터 변화가 생겼다. 조상들이 잠든 산자락에 몇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골방에서 사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병든 그가 혼자 힘으로 감당할 만큼만 몇 그루 사과나무를 심은 밭은 그의 작품을 만드는 아뜰리에로 간주했다. 그는 사과를 화폭에 그리는 게 아니라 그의 작업장에서 창조해 보기로 했다. 은박지를 사과나무 밑에 깔아서 햇빛이 골고루 반사되게 됐다. 사과의 색깔을 골고루 붉은 빛으로 만들기 위한 채색작업이었다. 사과의 크기도 조정했다. 꽃이 몇 개당 사과가 열려야 알맞은 크기가 되나를 계산했다. 자를 대고 계산해서 불필요한 꽃들은 없애버렸다. 그가 소망한 크기의 사과가 그렇게 탄생했다. 맛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그는 장날이면 리어커를 끌고 가서 버려진 생선내장들을 통에 담아 가지고 왔다. 사과나무가 먹을 요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생선내장에 흙 설탕을 넣어 발효시켰다. 한 종류만 먹이면 나무들이 싫증을 느낄 것 같았다. 사과나무가 좋아할 무공해 자연식품을 또 만들기로 했다. 

   그는 퇴비를 연구했다. 소똥, 닭똥, 돼지 똥을 풀에 섞어 썩혀 보았다. 마지막에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서 오래된 똥을 퍼다가 배합해 보기도 했다. 회사원이었던 그가 하루에도 세 번씩 똥지게를 메고 다녔다. 이상했다. 일이 생기니까 고목에 새잎이 돋듯이 육십대가 되면서 그의 몸도 생기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사과나무들이 그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애정만 주지 않았다. 나무들에게 강한 훈련도 시켰다. 비료와 물을 사과나무 밑에 바로 주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띄워서 줬다. 뿌리들은 물과 영양분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해 그곳까지 뻗어 나왔다. 뿌리가 길게 퍼지면서 땅위에 있는 가지들도 대칭되게 그만큼 옆으로 퍼져 나왔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었다. 그는 비록 소량이지만 빛깔과 모양 그리고 단맛이 최고인 예술품 사과를 만들어 냈다. 아무리 사과를 키워도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전국의 약국들을 다니면서 영업을 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친하던 고객들에게 사과 한 상자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못생긴 실패한 사과들은 농도 백퍼센트의 사과 쥬스를 만들었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가 만든 사과를 꼭 다시 찾았다. 모든 걸 잃고 죽음을 기다리던 그는 칠십의 나이에 싱싱한 농부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처의 사촌오빠였다. 

   지난 봄 어느 날 저녁 그를 찾아갔었다. 총총이 떠있는 별이 내려다보는 그의 집은 아늑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마당에는 채마밭이 있고 오래된 투박한 항아리들이 아직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재래식 화장실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퇴비를 만드는 소중한 재료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형님 왜 사과 하나에만 전념했죠?”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을 관찰해 봤지. 별다른 생각 없이 습관대로 살고 있었어. 벼농사도 하고 보리도 심고 배추도 키우고 고구마 감자도 거두고 돈이 된다면 그냥 닥치는 대로 다하는 거야. 그렇게 하다보면 단 하나도 제대로 못해.”

   일 년 배운 걸 삼십년 무심히 반복하는 것과 한 가지만 골라 철저히 연구를 하는 건 분명 다를 것 같았다.


   “선산도 넓은데 사과나무를 좀 많이 심지 그랬어요?”

   “그건 아니야. 내 노동으로 할 수 있을 만큼만 사과나무를 심었어. 품삯을 받고 하는 일꾼들은 사랑으로 나무를 대하지 않아.”


   이제는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만한 나이가 됐다. 정성과 사랑 없이 되는 일은 없었다. 자식도 직업도 다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키운 사과를 매년 몇 박스씩 사서 선물하고 있다.


  
인생 산맥을 걸어오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 좋았던 사람에게 뜻밖의 선물을 하는 것이다. 되갚을 능력이 없는 것도 기준중의 하나였다. 십 오년 전 유럽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분에게 사과를 보냈다. 열흘정도 그와 함께 버스를 탔었다. 그에게서는 과일향보다도 진한 사람냄새가 났었다. 수첩에 그의 주소가 남아 있었다. 얼마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사과를 보냈죠? 아무리 생각해도 받을 일이 없는데--”

   그는 의아해 하는 목소리였다.


   “그냥 보내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 예-----”

   말하지 않는 그의 가슴에서 다시 진한감동이 전해져 왔다. 몇 년 전 내가 피의자가 되어 조사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내 글이 시비가 걸려 경찰서 철 의자에서 한동안 고생을 했었다. 담당 형사는 세상을 보는 반듯한 눈이 있었다. 상대방을 파괴하고 싶은 본능을 숨긴 그런 완장이 아니었다. 그에게도 사과를 보냈다. 얼마 후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사과를 보내셨죠? 제가 봐드린 것도 없고 그것도 몇 년이 지난 일인데-----”


  
“그냥요, 훌륭한 경찰관인 것 같아서 보내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그 사과를 먹고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돈을 내고 차라리 몇 박스 더 살 수 없을까요?”

   “사과를 키우는 분은 냉동 창고에 사과를 넣으면 사과 맛이 없어진다면서 조금만 생산하니까 다음해 사과를 딸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꼭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형사를 하면서 공격만 받았지 나중에 이런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나는 혼자 사는 칠십대 중반의 가난한 소설가에게도 구십이 다가오는 아는 노인에게도 그렇게 사과를 보내 봤다. 돈이 남아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한테서 받아 보관하는 돈으로 세상친구를 얻는 일이었다. 활기찬 늙은 농부를 보면서 나는 할 일이 없는 적막한 인생 후반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후반기다.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또 다른 세상이 활짝 펼쳐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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