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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속의 밀과 가라지 - 1 소복 입은 여자

운영자 2010.08.26 15:05:29
조회 445 추천 0 댓글 0

  나는 매일 마다 대법원 앞길을 지나 산책을 간다. 그 뒤쪽 야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에서 항상 증오를 만난다. 일 년 내내 그치지 않는 시위자들이다. 한이 서린 그들은 독기로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벌써 몇 달째 상복두건에 새끼줄을 동인 여자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가 몸에 두른 플래카드의 문구가 기이했다. 자기가 죽으면 뼈가루를 법원 뜰에 뿌려달라고 써 있었다. 그런데 억울한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형수술을 받았던 의사를 상대로 소송에서 패소한 것 같았다. 벌써 여러 달 째 한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의사를 증오하던 여자는 지금은 대법관으로 공격의 대상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제도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반인의 생각처럼 법관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법원에 제출된 주장과 증거를 그냥 판단하는 보통의 인간이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과 진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었다. 법조인 30년의 결론이었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여러 날 시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사연을 물어봅디까?”

  누군가 한번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그녀를 설득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사람들은 죄의식 자체가 없어요.”

  무슨 소린지 모를 그녀의 대답이었다. 지난해 가을 무렵 대법원 앞은 수많은 플래카드가 혁명같이 휘날렸다. 아무개판사를 처단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북소리와 꽹과리 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쪽은 저쪽을 부패한 판관으로 보고 저쪽은 이쪽을 무식한 정신병자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간 같은 땅에서 사는 한국인인데도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실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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