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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사무실과 큰 책상의 해독 1

운영자 2010.09.07 16:50:51
조회 406 추천 0 댓글 0


    지난해 연말 군 시절 상관으로 모셨던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급장교로 힘든 시절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상관이었다.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법무장교 출신인 그 장군도 역시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하고 있었다. 세월은 이제 우리들을 변호사 동료로 만들어 주었다.


    “옆방에 근무하는 김 변호사도 같이 가는 게 어떨까?” 
    그가 내게 물었다. 검사장을 지낸 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검사장 출신인 김 변호사는 이십대 말 내가 가장 되고 싶던 모델이었다.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해서 엘리트검사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는 청와대와 국회에 파견 나가 굵직굵직한 일들을 수행하고 지방검찰청장을 역임했다. 잠시 후 우리들 세 명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사무실 부근의 중국음식점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뭘 드시겠습니까, 선배님?”
 
    나는 메뉴판의 세트메뉴를 보면서 물었다. 이제는 장군이란 호칭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건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멀게 하는 용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달라도 인생 선배라고 나는 여겼다. 힘든 시절 따뜻했던 선배에게 일 년에 한번쯤이라도 함께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애정과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이라면 더 이상 만날 필요도 없었다. 웨이터가 다가왔다. 

    “나는 짬뽕 한 그릇.” 
    장군출신 선배가 주문했다. 

    “그래도 모처럼 마음먹고 점심대접을 하러 왔는데 짬뽕 한 그릇이라뇨? 요리를 한 접시라도 시키시죠.” 
    내가 권했다. 

    “아니야, 난 짬뽕만 한 그릇 먹을래, 우리의 만남이 의미 있는 거지, 음식이 뭐가 중요해?” 
    그가 단호하게 사양했다. 검사장을 지낸 선배가 옆에 있다가 자기도 주문했다. 

    “나도 짬뽕 한 그릇.” 
    모처럼 점심을 잘 사려고 왔는데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 깊은 정신적 수련이 없다면 하기 힘든 자기절제의 태도였다. 

    “예전에 특식이었던 탕수육이라도 한 그릇 합시다.” 
    내가 다시 권했다. 

    “뭐 정 그렇다면----”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짜장면 하나.”
 
    내가 마지막으로 주문했다. 지혜로운 선배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려했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태도였다. 그 얼마 전 과거 참모총장과 장관을 지낸 사람과 바로 그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같이 온 사람은 다른 자리에 앉아 먹게 하고 종업원에게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별로 보기에 좋지 않았었다.  내가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이십대 법무장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저는 참 우둔하고 지혜가 없는 놈이었어요. 부대 안에서 조금만 겸손하고 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한 자세를 취했으면 다른 군인들하고 얼마나 인간적인 좋은 관계를 맺었겠습니까? 그걸 모르고 법을 공부했다는 어쭙잖은 교만 하나로 건방만 떠니까 남들이 다 싫어했죠. 따지고 보면 저는 참 나쁜 놈이었던 것 같아요.” 
    장군출신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았다. 

    “그 말이 맞아, 고시에 합격한다든가 명문 고등학교에 다닌 거,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들 그걸 앞에 내세우니까 고립되는 거야.” 

    “지금에야 깨달은 겸손이나 지혜를 그때 알았더라면 이렇게 실패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건데요----” 
    내가 얘기했다. 손녀를 본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모든 게 후회가 됐다. 좀 더 주위 사람들을 사랑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오해를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했다. 내 잘못이 크면서 남을 용서할 줄을 몰랐다. 

    성격이 모가 난 나는 이제야 온유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건 하나님이 준 최고의 축복이었다.   

    “너무 일찍 그런 걸 알아도 애늙은이가 되서 못써---” 
    장군출신 선배가 조용히 말한다. 옆에서 짬뽕국물을 마시던 검사장출신 선배가 그릇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난 검사생활을 평생 한 셈인데  지금 생각하니까 고쳐야 할 제도가 있어.” 

    “뭔데요?” 
    내가 물었다. 

    “젊은 시절은 넓은 독방에서 혼자 커다란 책상을 차지하고 일한다는 게 자랑스러웠었지.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영감님, 영감님 하고 대접을 해 줄 때면 기분이 좋았지. 내 눈길 한 번에 사람들이 주눅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작은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간에서 동료들과 어깨를 비비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출세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야, 좁은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세상을 배울 기회가 있는 거야. 어려움도 알고 말이지. 모두들 최고라고 추켜세우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 혼자 동떨어진 그런 인생을 살았어. 법조문 조금 더 아는 게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말이야. 출세했다고 주는 넓은 독방과 큰 책상은 결국은 독(毒)이었어. 겸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든.” 
    깨달음들은 그렇게 늦게 찾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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