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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섭 소아과 의원

운영자 2010.08.20 10:13:57
조회 650 추천 0 댓글 3

    변두리 동네의원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들거리는 시멘트 바닥과 벽을 반으로 나누어 아래쪽은 청색 위는 흰색페인트칠이 여전했다. 진료실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우윳빛 유리창 아래의 벽부분에 커다란 나무책상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처방전들과 의료기구가 보였다. 꾸깃꾸깃한 바지에 때 묻은 런닝셔츠 바람의 의사선생님은 청진기를 꼬마였던 내 배 여기저기 대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었다.

     그 당시 동대문 밖 낙산은 가난한 달동네였다. 하루살이 노동자들이 한밤중에 병이라도 나면 젊은 의사선생님은 산꼭대기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곤 했다. 그의 차트엔 외상진료비 명세만 빼곡했다. 산 아래 동네 살던 우리 집도 그 동네의원의 단골 환자였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 의사의 신세를 지곤 했다. 허름한 건물의 구석을 빌려 일하던 그는 동네에 자그마한 건물을 지어 의원을 이전했다. 위는 살림집이고 아래층은 진찰실이었다. 약제실은 아이들의 공부방이기도 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약제실 구석에 마련된 임시 책상 앞에서 책을 읽었다. 의사선생님은 자식들의 과외선생이었다. 60년대 중반이던 그 시절 중학교 입시가 치열했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경기중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공부했다. 동네에 퍼진 소문으로 그 의사선생님은 경기중학교를 나왔다는 걸 알았다. 의사선생님의 형도 경기고등학교를 나온 훌륭한 법관이라고 했다. 그 의원에 갈 때 마다 벽에 걸린 누렇게 변색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앞에서 의사선생님이 사각모를 쓰고 찍은 사진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경기중학교를 나와야 그렇게 되나보다 생각했었다. 그 의사선생님은 가난한 동네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시절 동네 친구는 그 의사선생님의 약제실에 가서 한문을 배웠다고 했다. 대학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허리가 계속 쑤시고 몸살기운도 있었다. 나는 그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통증을 말했다. 진료실의 무쇠난로 위에 놓인 양동이에서 은은하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료비를 아끼느라고 난방이 안 된 의원은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여기 이 약을 한번 사서 먹어봐라.”

    의사선생님이 처방을 해 주었다. 내가 일어설 때였다.


    “이왕 온 길에 링겔 한 병 맞고 가거라.”

    의사선생님은 투명한 액체가 든 커다란 병을 들고 나왔다. 나는 진료실 구석의 진찰대 위에 누웠다. 링겔병을 손으로 만져보던 의사선생님이 혼잣말 같이 중얼거렸다.


    “이거 약이 너무 차구나”

    의사선생님은 난로 위의 양동이 물속에 링겔병을 담그고 약이 따뜻해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 지금 돈 없는데요.”

    내가 말끝을 흐렸다.


    “나중에 생기면 그 때 가져 오거라. 요새 공부는 잘되니?”

    의사선생님의 대답이었다. 그 인정에 어느새 나의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나도 인생의 초겨울쯤 되는 지점에 와서 손녀의 재롱을 보는 할아버지가 됐다. 바람결에 그 의사선생님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계속 진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으니까 90을 향해 가는 노년이었다. 1월의 어느 일요일 점심 무렵 나는 아끼던 와인을 한 병 들고 신설동 골목의 그 의원을 찾았다. 자잘한 낡은 타일벽 위로 담쟁이덩굴이 말라붙어 있었다. 문 옆에 ‘이웅섭 소아과 의원’이라고 쓴 나무간판이 아직도 그대로였다. 잠시 후 나는 뒤쪽의 낡은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 안에는 늙은 의사선생님 내외가 살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은 아픈 것 같았다. 거동이 불가능하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젊던 의사선생님은 구부정한 어깨에 눈썹이 희끗한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는 무척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자네가 경기 69회지? 나는 39회야. 내 30년 후배가 되는구만. 경기중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참 좋았지.”

    의사선생님은 내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진료를 계속하신다면서요?”

    내가 물었다.


    “그럼 아직도 하루 40명 정도는 보고 있어. 젊었을 때 환자가 늙었는데도 계속 나를 찾아와 주는 거야. 그러니까 진료를 그만 둘 수 없지. 왜 자네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동네 반장을 했던 아주머니는 지금도 나한테 와서 주사를 맞고 가. 동네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그 댁 따님은 아직까지 시집가지 않고 엄마와 같이 살고 있지.”

    말이 그 댁 따님이지 대충 칠십은 되는 할머니 얘기였다. 의사선생님은 동네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그가 계속했다.


    “요즈음은 환자 한 사람 보면 천오백원 받아. 옛날 왕진 다닐 때 비하면 정말 의료비가 싸 진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게 오는 노인들을 보면 그 천오백원도 눈치 보면서 자식한테 겨우 타낸 돈이더라구. 노인들한테는 그 돈도 쉽지 않아.”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했었다.


    “선생님은 아들들을 다 잘 키워서 푼돈을 벌 입장은 아니시잖아요? 연세도 있으신데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말했다. 아들들이 모두 성공해 잘살고 있었다.


    “아니야. 저기 우리 집사람 뒷바라지만 해도 한 달에 삼백만원이 들어. 아직 건강하니까 그 돈은 내가 벌어서 대야지.”

    그 말에 문득 흔히 듣던 결혼 주례사가 떠올랐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보살피라는 말이었다. 나는 의사선생님의 삶이 궁금했다.


    “해외여행은 좀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우리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한번 갔지, 그 외 다른 데 간 적은 없어.”


   
“답답하지 않으세요?”

    “아침부터 환자들하고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면서 사는데 뭐가 답답해? 남들은 친구 만나러 가지만 나는 모두들 그렇게 찾아와줘.”


    “평생 이 작은 의원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으시죠?”

    내가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지 뭐. 아침에 일어나면 보건체조 하고 환자를 보기 시작했어. 의원 밖으로 나간 적도 거의 없어.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50년 세월이 훌쩍 넘어버렸네.”


   
“그렇게 살면 특별히 기쁠 때는 언제예요?”

    “환자들이 종합병원에 가지 않고 내가 용하다고 하면서 찾아와 줄 때야. 전번에도 열심히 치료했더니 손이 들리지 않던 노인네가 갑자기 손을 뻔쩍 드는 거야. 참 좋더라구. 사람들 고통을 덜어주는 게 좋은 취미고 놀이가 아닐까?”


    의사선생님은 노동이 놀이가 된지 오래였다. 그는 그런 의사였다. 의사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비슷한 나이의 또 다른 의사를 본 적도 있다. 그는 큰 대학 병원장이었다. 수많은 의사들 위에 군림하는 백색궁전의 왕이었다. 그는 심장학계에서 거두라고 했다. 수많은 기사가 그를 칭찬하고 그가 집도하는 병원마다 그를 선전하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그는 사교계에서도 주인공 같았다. 수많은 권력가와 명사들이 파티와 골프모임에서 그를 대접했다. 환자들로부터 받는 촌지만으로도 연구소를 차릴 정도의 재력이라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병원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가리키면서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저것들은 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의사가 아니라는 좋은 뉘앙스가 아니었다. 자기만이 최고이고 그만이 의사라는 자만감을 여과 없이 내뱉는 소리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가 의사로 보이지 않았다.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는 기본 진리도 모르는 아이에 불과했다.


    나는 동네 작은 의원의 선생님한테서 전문직의 자세를 배웠다. 한밤중 왕진을 갔다가 돌아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눕고 싶을 때 또다시 산동네 판잣집 환자 가족이 의원 문을 두드렸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네의사선생님은 또다시 진창길 골목을 걸어 올라간다. 그게 내가 배운 전문직의 자세였다. 변호사가 된 나는 그런 마음으로 교도소의 죄수들을 찾아다닌다. 나는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란 무엇인가 때때로 떠올려 본다. 많은 재산이나 직위보다는 순결한 생애가 아닐까? 나는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박한 일상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 내가 모시겠다는 점심식사를 그 의사선생님은 사양했다. 음식도 항상 작게 먹는 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당부했다.


    “항상 소식(小食)을 하고 살아. 그래야 건강해. 많이 먹는 건 독(毒)이야.”

    살아서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선후배의 훈훈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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