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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 1

운영자 2010.08.20 10:07:46
조회 369 추천 0 댓글 0

    나는 요즈음 매듭풀기 작업을 하고 있다. 6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자존심이란 약한 것이어서 조그만 긁혀도 상하고 피가 흘렀다. 

    30년 전 어느 겨울에 있었던 고교선배 A와의 일이었다. 그 무렵은 관악산을 넘어 내가 근무하는 군 바라크 막사를 들이치는 바람만 찬 게 아니었다. 군대에 끌려가 정처를 잃은 나의 몸과 마음도 얼어붙어 있었다. 암자의 뒷방을 전전하면서 고시공부로 청춘을 보냈지만 마지막까지 실패였다. 불규칙한 게으른 생활과 영양부족은 간염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초청했다. 아침부터 몸이 나른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병역기피자의 딱지가 붙기 직전이었다. 

    그해 마침 5년마다 시행하는 법무장교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을 통해 간신히 군에 입대했다. 생각지도 않은 직업장교가 되어 버린 셈이다. 기본복무기간이 10년이고 평생 군인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이었다. 제복이나 속박은 혐오하던 성격이었다. 굶고 살아도 자유하는 삶이 더 좋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나는 군사법원에 배치됐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준 다른 법무장교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청운의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이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이제 곧 판사영감이 될 분들이었다. 흑(黑)은 백(白)과의 대비를 통해 더 검어 보인다. 빛나는 장래를 가진 그들과 매일 얼굴을 대하면 난 더욱더 불행해졌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실패한 자의 낙담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특히 겸손하지 못한 한 분이 있었다. 사무실에 함께 있을 때 그는 이렇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같은 중위계급장을 달았지만 같은 게 아니요. 명심해.”

    그는 명품이고 나는 짝퉁이라는 소리였다. 참 씁쓸한 세상이었다. 점수 몇 점 차이에 일류와 이류로 분류됐다. 고시촌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사병으로 들어와 구두를 닦고 있었다. 불공평한 세상을 인정하기에 아직은 젊었을 때였다.


    “내가 보기에 중위면 같은 중위로 똑같은데 뭐가 다르지?”

    나는 굳이 그렇게 어긋매겼다. 그는 앙심을 품었는지 사무실로 다른 군인들이 찾아오면 무참하게 나를 짓밟았다.


    “나는 내년에 제대하면 바로 판사가 되지만 여기 엄 중위는 군대에 평생 있을 사람입니다. 잘 봐주쇼.”

    주위의 사람들도 내편은 아니었다. 세상은 약한 자를 동정할 것 같지만 강한 자와 야합해서 현실의 이익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 무렵 군사법원 사무실을 종종 찾아오던 고교 선배 A변호사가 있었다. 서울법대를 졸업하시고 글을 쓰면서 언론에도 관여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일류변호사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었다.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부러웠다. 언제 자유로운 사회에 나갈지 모르는 제복의 속박 속에서 그 갈망은 상대적으로 더 컸었다. 변호사를 하는 그 선배가 어느 날 군사법원에 있는 장교들을 대접하겠다면서 인사동에 있는 한 요정으로 초청했다. 후배들의 사기를 올려주자는 취지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가는 걸 사양했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며 같이 근무하는 다른 법무장교가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A선배가 요정에서 나보고 너를 좀 때려주라고 하더라. 건방진 놈이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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