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딧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인이 있다. 윤나라(38) 애니메이터다. 그는 올해로 15년차, 디즈니에선 8년차 애니메이터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려 군대까지 다녀왔다. 현재 다양한 작품들로 활약하며 디즈니 ‘금손’으로 통한다.
그는 어릴적부터 만화영화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외교관이었던 부모님을 따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지만 언어장벽으로 달리 밖에서 할 놀이가 없었다. 둘리, 머털도사부터 피구왕통키, 토이스토리 등을 비디오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돌려보며 영화에 관심을 키웠다. 이후 애니메이션 전문 대학 링링컬리지(Ringling College of Art and Design)를 졸업하고 드림웍스에 스카웃돼 다양한 작품에 참여한 것이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를 온라인 인터뷰로 만났다. 애니메이터라는 직업, 디즈니의 업무 환경,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윤나라입니다. 현재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전문 대학 링링컬리지(Ringling College of Art and Design)를 나와 15년 넘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밖에도 미국 ‘포켓몬 컴퍼니’와 ‘헬로키티’ 등 회사에서 사진 및 비디오 촬영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3년 동안 삼성의 로봇 연구개발팀과 함께 일했어요. 그곳에서 미래 가정용 로봇을 디자인하는 엔지니어와 애니메이터·디자이너들을 감독했습니다.”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은 무엇인가요?
“애니메이션은 1초에 사진 24프레임을 사용해 실사 영화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해내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면에서 애니메이터는 굉장히 기술적인 직업으로 보이죠. 처음에는 애니메이터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단순히 생명력만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깨달았어요. 캐릭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실존한다고 믿어질 수 있게 하는게 애니메이터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봤을 때 캐릭터가 단순히 그림 또는 픽셀로 보이는게 아니라 ‘아 닉이구나’, ‘엘사다’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공적인 작업같아요.”
-애니메이터 직업을 택한 계기와 디즈니를 들어간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부터 애니메이터가 되겠다고 꿈꾸진 않았어요. 그저 영화에 관심이 많았을 뿐이었죠. 어릴적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영국·러시아·한국 등을 오가며 생활했어요. 오랜 해외 생활로 부모님께서는 그 나라의 언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비디오로 만화영화를 보여주셨어요. 같은 영화를 비디오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스무번, 서른번씩 돌려볼 정도로 좋아했죠. 한국 만화영화로는 둘리, 머털도사를 좋아했어요. 그러던 중 제가 고등학생 쯤에 ‘토이스토리’와 ‘몬스터주식회사’가 나왔어요. 영화랑은 언어가 다르면서 애니메이션만의 감정 표현과 스타일이 너무 새로웠어요. 특히 몬스터주식회사의 초록색 공 같은 ‘마이크’ 캐릭터와 듬직한 네모 몬스터 ‘설리’를 보면서 단순하게 생긴 캐릭터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본격적으로 3D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죠. 애니메이션 전문 대학을 진학하고 애니메이터 직업을 선택하게 됐어요.
대학에서 전공을 마친 뒤에는 드림웍스에 바로 스카우트 되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미술 분야를 많이 반대하셨어요. 제가 해외 생활을 띄엄 띄엄 했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좋았거든요. (웃음) 대학교를 가지 않고 전문대에 진학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슈렉’을 만든 드림웍스에 스카우트되었다니까 인정해주셨어요.
7년 동안 일했던 드림웍스를 나온 건 군복무 때문이에요. 한국에 군대를 가면서 잠깐 휴직을 했어요. 2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들어갈 때쯤 픽사가 문을 닫게 되었어요. 마침 디즈니에 있는 친구에게 제의가 왔고, 포트폴리오를 내고 인터뷰를 진행한 뒤 ‘겨울왕국’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됐죠.”
-원래 그림 또는 미술 분야에 재능이 많으셨나요?
“어머니가 음대 교수이셨는데 예체능 분야에 있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특별히 미술 학원을 다녔던 건 아니고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어머니와 만들기, 그림 놀이를 많이 했어요. 미술을 놀이로 접한 것 같아요. 어릴 적엔 제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한국에서 미술 시험을 보면 늘 25점~30점을 받았으니까요. (웃음) 러시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날 미술 선생님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술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애니메이터가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학원도, 그림도 아니고 ‘놀이’예요. 부끄럽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도 두살 아래 남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요. 외국어가 익숙치 않다보니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거든요. 동생과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즉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움직여보던 과정이 지금의 애니메이터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한 매일하던 훈련이 아니었나 싶어요.”
◇울라프, 알고보니 펭귄?
-3D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애니메이터는 기술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3D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터가 모델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돼요. 저희가 작업하는 캐릭터를 보면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입술, 혀, 콧구멍, 동공 등 전부 움직일 수 있어요. 사람 캐릭터는 컨트롤이 300~500개 정도이고, 드래곤 같은 캐릭터는 지느러미 하나 하나를 포함해 1200~2000개까지 컨트롤이 있어요.”
-캐릭터를 움직이려면 연기력이 어느정도 필요할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선 애니메이터들의 연기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캐릭터를 가지고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가 관건이죠. 실제로 애니메이터 대부분이 거울을 보고 혼자서 움직임을 구현해봐요.
전 동양인 남자이지만 금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목이 두 개 달린 용을 연기하기도 해요. 사람이든 사물·동물이든 모두 연기할 수 있어야 해요.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어릴적 많이 본 영화가 도움됐어요.”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사물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상상력이 기본이지만 다른 곳에서 움직임을 본떠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겨울왕국의 ‘울라프’ 움직임은 펭귄을 참고했어요. 울라프는 다리가 짧으니까 뒤뚱뒤뚱 움직이는 모습이 있죠. 또 팔이 나무 막대기라서 팔을 꺾을 순 없지만 펭귄처럼 흔들 순 있어요. 그런 한계성을 가지고 움직임을 구현한다는 게 굉장히 재밌는 작업같아요.
주토피아에선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동물 각각의 특징, 움직임을 오랜 기간 연구하면서 캐릭터성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리서치가 굉장히 중요해요. 모아나같은 경우는 아시아·태평양 문화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이번에 개봉 예정인 엔칸토를 만들 때는 콜롬비아 문화와 콜롬비아 사람들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어요.”
-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캐릭터가 연필을 잡고 드는 단순한 동작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수만가지에요. 연기라는건 수만가지 옵션이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 맞는 캐릭터 연기를 찾아야해요. 그런데 중간에 스토리가 바뀌면 캐릭터성도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어렵죠.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애니메이션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원이 투입되나요? 작업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저희 회사 총 인원이 800~900명 가량돼요. 작품 하나에 모든 인원이 투입됩니다. 또 애니메이션 한 편이 나오는데 컨셉부터 스토리,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대략 4~5년 정도 걸려요. 다만 모든 인원이 동시에 한 작품에 투입되는 건 아니고 파이프라인처럼 각 공정별로 프로세스가 있어요. 스토리팀이 2~3년 동안 작업을 마치면 이후 애니메이터가 1~2년 동안 이어서 작업을 해요. 그러니까 이번 해에 겨울왕국을 작업해서 내년에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4~5년 후에 나올 영화를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이죠.”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은 어떤가요?
“크게 두 분야로 나뉘어요.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과 프로덕션(production)이 있죠. 프리프로덕션은 정식으로 시나리오 작업하기 전 캐릭터를 가지고 실험해보는 과정이에요. 캐릭터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연구하는 기간이죠. 프로덕션은 스토리나 시나리오가 어느정도 나오고 작업할 수 있는 장면들이 완성됐을 때 캐릭터를 가지고 연기하는 과정이에요. 성우들이 제공하는 음성을 가지고 캐릭터에 맞춰 연기를 시켜요. 결론적으로 애니메이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성을 찾고 발굴하는 일을 하죠.”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제가 직접 작업한 영화 중에서는 영화 ‘빅히어로’의 베이맥스 캐릭터를 좋아해요. 저도 남동생이 있는데 영화 자체가 형제에 관한 이야기라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모아나 캐릭터도 좋아해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을 가진 캐릭터라서 좋아합니다.”
◇디즈니 직원은…
영화 ‘주토피아’. /영화 ‘주토피아’ 스틸컷영화 ‘주토피아’. /영화 ‘주토피아’ 스틸컷
저는 군복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 뜻밖의 일이죠. 주토피아를 작업할 때 일화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주디가 경찰관이 된 닉에게 경례 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래대로라면 상관이 먼저 경례하는 일은 없죠. 또 닉이 취임식에서 장난식으로 경례를 해요. 실제로라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장난식으로 경례하는 일은 없다고 말씀드렸죠. 그렇게 일부 장면이 수정되기도 했어요. 이렇게 군대에서 경험한 작은 부분들도 의외로 도움이 돼요. 그래서 인생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윤나라 애니메이터. /윤나라 애니메이터 제공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개인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스토리들이 있어요. 언젠가 이 스토리로 작업해보고 싶어요. 또 디즈니 플러스가 생긴 이후로 디즈니에서 굉장히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행복해요. 다양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공부하고 배울 수 있거든요. 앞으로도 학생같은 마음으로 초심잃지 않고 쭉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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