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는 멀고, 차를 타기엔 애매한 거리. 그럴 때 유용한 이동 수단이 공유 킥보드다.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공유 킥보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각종 안전 사고와 문제도 많아졌다.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가 잇따르자 국내에서 공유 킥보드 사업을 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짐을 싸고 있다.
2021년 9월 독일 킥보드 업체인 ‘윈드(Wind)’가 한국에서 철수한 데 이어, 싱가포르 업체인 ‘뉴런모빌리티(Neuron Mobility)’가 2021년 12월 운영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공유 킥보드 업체 ‘라임(Lime)’이 한국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2019년 한국에 진출한 지 2년 8개월 만이다.
국내 공유 킥보드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던 글로벌 기업들이 줄지어 한국을 떠나면서 국내 공유 킥보드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년여 만에 이용자 67% 급감한 라임
라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97년 설립 이후 미국과 유럽, 호주 등 120여개 나라에 진출해 공유 킥보드 사업을 펼치는 세계 최대 기업이다. 한국은 라임이 첫번째로 진출한 아시아 국가이자 유일하게 사업을 이어온 아시아 국가다.
2019년 국내에 진출한 라임은 한때 월 이용자 수가 20만명에 이를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공유 킥보드 관련 안전 사고가 늘어나고 무분별한 방치 등의 문제가 잇따르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규제를 강화했고, 이에 따라 이용자가 급감했다.
2021년 5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공유 킥보드 이용자의 무면허 운전, 헬멧 미착용, 2인 탑승, 음주 운전 등이 법으로 금지됐다. 또 공유 킥보드는 지정된 구역에 주차해야 하며 불법주차할 경우 견인돼 견인비를 내야 한다.
공유 킥보드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면서 이용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중에서도 헬멧 의무화 조항은 이용자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4월 24만명에 달했던 라임 이용자는 지난 5월 8만명 선으로 뚝 떨어졌다. 1년여 만에 이용자가 67% 급감한 것이다.
이에 따라 라임은 6월 30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라임 측은 “국내 진출 시기부터 이뤄진 연속적인 도로교통법 개정과 지자체별로 상이한 세부 정책 등 국내 도심과 규제 환경이 안정적인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규제로 시장 위축 우려
그동안 전동 킥보드는 편의성이 높아 젊은 이용자들이 단거리를 이동할 때 즐겨 쓰는 이동 수단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무질서한 주차와 ‘킥라니(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친 신조어로 운전자들 사이에서 고라니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운전자를 위협하는 전동 킥보드 운전자를 말함)’ 등 안전사고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문제가 됐다. 결국 정부가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에 들어갔다.
공유 킥보드 업체들은 이런 규제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기 자전거 등 비슷한 종류의 교통 수단들과 달리 전동 킥보드만 헬멧 착용과 운전면허증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유 킥보드 업체 중 일부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발맞춰 자체적으로 킥보드와 함께 헬멧을 비치하는 등 서비스 개선 노력을 보였지만 분실률과 파손율이 높아 이를 철회한 곳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이용자들이 불법주차를 해 견인 조치를 당할 경우 견인비를 업체가 내야 하는 것도 공유 킥보드 업체들이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다. 서울에서 공유 킥보드 이용자가 불법주차를 할 경우에는 즉시 견인 조치가 이뤄지는데, 이 경우 업체가 지불해야 하는 견인료는 소형차와 같은 4만원이다.
규제 시행 이후 공유 킥보드 사업이 어려워지자 라임 등 주요 업체들은 헬맷 단속을 풀어달라며 앞장서서 규제 완화 목소리를 외쳤다. 그러나 결국 라임은 이용자 급감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국내 사업을 접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용자 의식 개선 우선 돼야”
라임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잇따른 철수로 지난 약 4년 간 업체 간 경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내 공유킥보드 시장의 열기도 사그라들 전망이다.
국내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 시장은 2018년 9월 올룰로가 ‘킥고잉’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하며 매년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2021년 말 킥고잉을 비롯해 씽씽, 라임, 스윙, 지쿠터, 빔, 뉴런 등 20여개 사업자가 약 6만대의 킥보드를 운영할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어렵다며 폐업(서비스 종료), 합병 등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유 킥보드 업체들은 기기를 다른 서비스 국가로 옮겨 사업을 이어가면 되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면서 “가맹점 형태로 지역 사업을 확장한 업체의 경우는 매출이 줄어든 지역 가맹점들과의 갈등까지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용자의 불법 이용은 철저하게 단속하되, 공유 킥보드를 안전하면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공유 킥보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식이다. 도심 속에서 일부 몰지각한 이용자들은 차량 사이를 누비며 지나가거나 인도에서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곤 한다. 특히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등지에서 차량과 보행자와 접촉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PM) 교통사고는 2018년 225건에서 지난해 1735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개인형 이동장치 음주단속 건수는 전년 동기보다 89.8% 늘었다.
사고가 급증하자 서울경찰청은 오는 7월 31일까지 특별단속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단속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찰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단속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킥보드가 국내에 등장한 지 4년이 지났고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킥보드 이용자의 상당수는 킥보드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안전 규정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만큼 안전 교육과 홍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용자 스스로가 안전과 매너를 지킬 때 규제 완화와 국내 공유 킥보드 시장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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