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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소리없는 CM송의 탄생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20 09:13:09
조회 3023 추천 2 댓글 11

해태 부라보콘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CM송’
가수 이적∙이영현∙정은지, 청각 장애인 위한 수어 콘텐츠 제작 화제

가수 이적, 이영현, 정은지. 국내에서 가창력 하면 빠지지 않는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해태 부라보콘의 CM송을 부르기 위해서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중장년층이라면 귀에 익숙한 부라보콘 CM송이 이들이 부를 노래다. 그러나 이들이 CM송을 부르기 위해 선 곳은 마이크 앞이 아니라 카메라 앞이다. 목소리 대신 수어(手語, Sign language)로 노래하기 위해서다.

목소리 대신 수어(手語)로 부라보콘 CM송을 부르는 가수 이적(왼쪽부터), 정은지, 이영현. /해태아이스크림 유튜브 캡처

◇30년 넘은 CM송, 수어로 재탄생

수어는 소리로 말을 배울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이는 언어’다.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농인은 40만명이다.

부라보콘은 1970년 4월 출시된 국내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이다. 2001년엔 국내 최장수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12시에 만나요’로 시작하는 부라보콘의 CM송은 국내 광고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작으로 꼽힌다. 1976년 당시 인기 배우 정윤희와 신일룡이 출연한 광고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30년 넘게 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따라부른다. 그러나 농인들은 이 유명한 CM송을 한번도 들어보거나 본 적이 없다.   

그런 농인들을 위해 수어로 부라보콘 CM송을 노래하는 영상이 탄생했다. 지난 6월 7일 해태아이스크림이 공개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CM송’이다. 가창력 끝판왕으로 불리는 가수 이적, 이영현, 정은지가 목소리 대신 수어로 노래한 CM송은 공개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260만회를 기록했다. 이적과 이영현, 정은지는 이 CM송을 위해 전문 수어통역사에게 수어를 배웠다. 이들은 직접 CM송을 부르기도 했는데 이 장면에는 화면 오른쪽 아래 수어 통역이 나온다.

가수 이적과 이영현, 정은지가 목소리로 CM송을 부르는 장면에는 오른쪽 하단에 수어 통역이 나온다. /해태아이스크림 유튜브 캡처

이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수어로 노래하는 CM송이라니, 너무 신선하고 좋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CM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적x정은지x이영현 조합이라서 본 건데 수어가 나올 줄 몰랐다. 순간 울컥했다’ ‘요즘 광고들이 자극적인데 이런 좋은 취지의 광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CM송’은 MZ세대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부라보콘 CM송을 다시 한번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이 광고를 제작한 종합광고대행사 펜타클은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국민 CM송이지만 청각 장애인은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특히, 청각 콘텐츠를 접할 수 없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문화적 격차를 좁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광고를 통해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을 섭외해 목소리가 아닌 수어로 노래하는 반전이 신선하다. 예상을 깬 스토리 전개가 의아함을 자아내지만, 이는 곧 뜻밖의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평가다.

해태 관계자는 “조용한 부라보송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친근한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다양한 세대와의 폭넓은 소통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수어 안무∙통역이 나오는 ‘보이는’ 광고 계속돼

보이는 언어를 통해 공익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기업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2022년 3월 롯데는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New Today, Better Tomorrow)’라는 슬로건을 담은 디지털 광고를 공개했다. 이 광고에는 SBS ‘스타킹’, Mnet ‘댄싱9’ ‘소년24’ 등에 출연했던 김홍인 댄서(청각장애)와 2020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유병훈 육상선수(지체장애), 2018 평창 패럴림픽 개·폐막식에서 공연한 김용우 무용가(지체장애)와 고아라 발레리나(청각장애) 등이 출연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로운 영향력을 펼치는 모습을 담았다.

청각 장애인 댄서들이 수어 안무로 표현한 롯데그룹의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 캠페인 영상. /롯데그룹

롯데는 이 광고에서 기존의 CM송을 그대로 사용하되 수어 안무로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또한 광고 초반 20초 동안 소리없이 무대를 준비하는 모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청각장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이 롯데의 슬로건을 함께 즐기고 롯데가 강조해온 ‘다양성 존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2020년 7월 생활용품브랜드 ‘해피홈’ 광고에 수어 통역을 포함시켜 청각장애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약회사가 생활용품을 만들면 무엇이 다를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약은 아니지만 약을 만드는 마음으로’라는 문구와 ‘안심생활예방 해피홈’이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화면 화단에는 이 내용을 수어로 전달하는 수어 통역사의 모습이 나온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약을 만들 때처럼 엄격하고 완벽하게,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의 근본적인 정신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자 했다”면서 “이러한 광고 메시지가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잘 전달되도록 광고 내용을 설명해주는 수어 통역사의 모습을 광고 영상 하단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해피홈’은 수어 통역을 포함한 광고를 제작해 농인들의 광고 이해를 도왔다. /유한양행

◇공익적 메시지, 때론 반발도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이런 공익적인 시도는 기업이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무조건 좋은 반응을 얻는 건 아니다.

2020년 4월 KT가 공개한 ‘마음을 담다’ 캠페인은 장애인들의 반발을 샀다. KT가 사회공헌 캠페으로 선보인 ‘마음을 담다’의 첫 번째 시리즈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편은 KT가 선천적 청각장애인인 김소희씨에게 AI 음성합성 기술로 구현한 목소리를 선물한다는 내용이다.

AI 기술로 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복원해 선물한다는 내용의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 /KT

KT는 김소희 씨의 목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먼저 가족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어 김씨와 동년배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석하고 그녀의 구강구조를 파악해 목소리를 추론해 나갔고, 기자지니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김씨 목소리를 완성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과 일부 장애인들은 이 광고가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조장할 수 있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들은 “KT 광고를 보면 농인들이 수어가 아닌 음성언어를 원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며 “KT는 수어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많은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사회가 언어로서의 수어를 인정하고 농인들과 자유로이 소통했다면 광고에서처럼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캠페인 방영 유보와 추가 제작 금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KT 측은 “진정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다 나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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