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최근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운전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교통사고 영상들을 분석해온 그이기에 운전 역시 ‘만렙(더 올라갈 곳이 없는 수준)’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 시청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사고 사례를 접하면서 생긴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차가 갑자기 달려들 것 같고, 주차된 차들 사이로 아이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며 “모든 곳이 지뢰밭 같다”고 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도 있다. 5년 전 일이었다. 주차장에서 출구로 나갔던 차가 갑자기 후진을 해 지인을 기다리고 한 변호사를 친 사고였다.
그는 운전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보도 앞에 있지 않고 가급적 사람들 뒤에 서 있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로수나 전봇대 등 엄폐물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인도로 갑자기 돌진하는 차량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그는 모든 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 뒤 건너는데, 이때도 먼저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먼저 보내고 세 걸음 뒤에 따라 건넌다고 부연했다.
한 변호사의 유별날 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생활은 너무 많은 교통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생긴 ‘직업병’으로 볼 수 있다. 직업병은 한 변호사의 사례 말고도 굉장히 다양하다.
주사를 놓거나 채혈을 자주 하는 간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남의 핏줄에 눈길이 가고, 핏줄이 뚜렷한 사람들을 보면 ‘주사 놓기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한 간호사는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에 “남친 생기면 핏줄 쓰다듬음”이라는 글을 올리며 주사 놓기 쉬운 핏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2년 차 간호사로 일하는 A씨는 “핏줄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벨소리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이 일하는 스테이션으로 연락이 꽤 많이 오는 데다, 그 연락이 응급 콜(심폐소생술 등을 요청하는 경우) 일 수 있기 때문에 벨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이 습관이 이어져 병원 밖에서도 벨소리나 알람이 울리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또 병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선생님 혹은 선생님을 줄인 ‘쌤’이라고 부르다 보니 병원 밖에서 지인들을 만날 때도 이 같은 호칭을 자신도 모르게 쓰기도 한다.
광고인의 세계에는 신조어나 재치 있어 보이는 문구 등에 집착하는 직업병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도가 세질 경우, 트렌드를 선도하진 못할망정 뒤처져 버렸다며 광고인의 자격을 운운하며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극한 사례까지 나온다고 한다.
광고인들은 유튜브 시청 시 스킵(SKIP) 버튼이 나오면 득달같이 광고를 넘겨버리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광고를 끝까지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광고 잘하나’라는 단순한 호기심형에서부터 요즘 광고 트렌드는 어떤가 하고 살피는 분석형, ‘같은 광고인으로서 돕고 살아야지’라며 광고 시청 시간을 늘려주려는 박애주의자형, ‘이 광고를 찍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반응을 보이는 감정이입형 등 광고를 보는 이유나 유형도 다양하다.
광고인은 물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 사이에는 ‘습관성 저장증’이라는 직업병이 널리 퍼져있기도 하다.
뭔가 재미있는 걸 보면 훗날 요긴하게 쓰일지 모른다며 해당 화면을 캡처하거나 메모하는 강박이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그것도 많이 모으는 데다 어떤 자료가 있는지 자주 확인하거나 정리하지 않으면 있는 지도 몰라 결국 쓰지도 못하고 낡은 아이템이 괴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의 세계에도 직업병이 있다. 자신의 출입처(담당 기관, 지역)에 혹시 놓친 기사거리가 있지 않를까 걱정하면서 끊임없이 출입처에 대한 최신 동향을 확인하거나, 뉴스 속보 푸시 알람에 긴장하는 일 등이다. 부장이나 선배 전화를 받지 못해 혼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좀처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연차가 낮을수록 심한데 실제로 한때 수습기자들은 샤워를 하러 갈 때는 비닐봉지(요즘은 방수팩)에 휴대전화를 넣어 들어가기도 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부도 아니면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현장에서 고생할 동료 정치부 기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어 정시에 퇴근해야 할 땐 제발 오늘만은 아무 일도 터지지 말라며 안절부절하는 것 역시 기자들의 직업병 가운데 하나다.
사무직 직원들 가운데 가장 흔한 직업병은 ‘엑셀 집착증’이다. 문서 도구 가운데 하나인 엑셀을 활용하면 문서를 정리하는데 효율적이고, 계산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림까지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엑셀 만능주의에 빠져드는 증세를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들은 업무 외에 개인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가계부를 쓰거나 투자 현황 등을 정리할 때도 엑셀을 사용해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며 뿌듯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맛있게 추어탕을 먹는 아내 앞에서 음식 맛을 냉정하게 평가했다가 눈총을 받았다는 한 식품연구원. /tvN ‘유퀴즈온더블럭’
이 밖에도 은행원들은 천 단위 숫자마다 콤마(,)가 붙어있지 않으면 숨이 가빠지고, 건설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비만 오면 야외에서 비에 젖을 자재와 제대로 굳지 않을 시멘트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식품 연구원들은 평범한 밥자리에서 엄격하게 맛을 분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같이 먹는 이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한 연구원은 가족과 함께 한 추어탕 식사 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부인을 앞에 두고 “흙 맛이 난다”는 냉철한 평가를 했다가 눈칫밥을 먹었다는 고백을 했다.
직업병은 저마다 밥벌이를 위해,또는 자아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생긴 증상이다. 보통은 위와 같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배우 이성재는 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7개월간 출연한 뒤,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여기 카메라를 갖다 놨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에 깊이 빠져 슬픈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찾는 자신에 놀랐다는 말이었다. 이런 걸 보면 직업병이라고 다 웃어넘길 수 있는 습관으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