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디자이너’, ‘현대판 칼 라거펠트’, ‘유행 창조자’….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던 루이비통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11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41세. 사인은 심장혈관육종이었다. 심장에 종양이 자라는 희귀암으로 2019년 해당 병을 진단받고 2년간 치료를 받아 왔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그의 죽음을 두고 “버질 아블로는 천재적인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선구자였고, 아름다운 영혼과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성명을 올리며 추모했다. 아르노 회장 외에도 세계적인 셀럽, 모델, 디자이너 등이 버질 아블로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프 화이트 설립한 건축학도에서 루이비통 최초 흑인 디자이너로
버질 아블로는 1980년 가나 출신 미국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였지만 패션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재봉사였던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의 대학 시절 전공은 토목공학이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버질 아블로는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패션에 빠졌다.
당시 건축가 렘 콜하스는 일리노이 공과대학 캠퍼스 안에 건물을 짓고 있었다. 버질 아블로는 렘 콜하스가 프라다와 협업해 설계한 ‘프라다 에피 센터 뉴욕’을 보면서 패션 사업에 눈을 떴다고 했다. 건축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블로그 ‘THE BRILLIANCE’에 패션과 디자인에 관한 글을 쓰면서 패션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지금은 ‘예(ye)’로 개명한 칸예 웨스트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진출한다. 당시 예는 버질 아블로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에이전시 ‘돈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용했다. 그렇게 버질 아블로는 예의 앨범과 무대, 마케팅을 총괄하면서 2009년 펜디 인턴으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버질 아블로가 본인의 첫 번째 브랜드를 세상에 선보인 건 2012년이었다. 폴로 랄프 로렌의 인기 없는 제품을 사서 자신의 프린트 디자인을 입혀 비싼 가격에 되파는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이었다. 1년동안 운영하면서 패션 사업의 가능성을 본 버질 아블로는 파이렉스 비전 문을 닫고 지금도 스트리트 패션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브랜드, ‘오프 화이트’를 선보였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 제품에 건축을 접목한 신선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오프 화이트를 대표하는 화살표 로고, 사선 줄무늬, 주황색 케이블 타이 등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케이블 타이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꼽힌다. 버질 아블로는 생전 트위터를 통해 케이블 타이를 디자인으로 택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케이블 타이’와 이중 신발 끈을 제작한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직접 DIY 신발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다. 어떤 신발을 갖고 있든지, ‘케이블 타이’를 부착해 자신만의 오프 화이트 스니커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2018년 3월 버질 아블로는 흑인 최초로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 남성 기성복 라인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됐다. 명품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의 결합으로 젊은 남성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버질 아블로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에 올랐다.
◇협업의 귀재…한정판 신발 1100만원까지 올라
버질 아블로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유명했다. 최상급 브랜드는 물론 가구, 자동차, 생수 브랜드 등 장르를 불문하고 디자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협업이라 하면 단연 나이키와의 협업을 꼽을 수 있다. 오프 화이트와 나이키가 협업해 선보인 ‘더 텐 시리즈’는 전 세계 스니커즈 마니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어 조던, 베이퍼 맥스, 덩크 등에 오프 화이트 상징을 입힌 한정판 제품은 출시될 때마다 화제였고, 출시 후에는 항상 높은 리셀 가격을 자랑하는 제품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나이키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한정판 제품의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에어 조던1 x 오프 화이트 레트로 하이 유니버시티 블루’ 모델은 약 200만원 초반에 거래됐는데, 버질 아블로 사망 후 39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11월 27일 670만원에 팔리던 ‘에어 조던1 x 오프 화이트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텐’은 12월 1일 기준 11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스니커즈 마니아들에게 더이상 접할 수 없는 그의 유작으로 간주되면서 리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이다. 평소 한정판 신발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 김모씨는 ”더는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의 협업을 볼 수 없게 돼 아쉽다. 나이키와 아블로의 협업 제품은 최고였다”고 했다.
버질 아블로의 죽음으로 2021년 초 오프 화이트가 아모레퍼시픽과 협업해 내놓은 윷놀이 세트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오프 화이트가 한국 회사 최초로 진행한 협업이었다. 오프 화이트 상징인 화살표 로고를 바탕으로 만든 윷놀이 판은 오프 화이트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버질 아블로는 한국팬들에게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디자이너로도 알려져 있다. 2019년 패션쇼에는 태극기를 필두로 만국기 의상을 디자인 했는데, 태극기가 가진 시각적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했다. 2020년에는 위너 멤버이자 래퍼 송민호를 직접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 2021년 쇼에는 국내 밴드 ‘혁오밴드’ 음악을 사용했다. 버질 아블로는 생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은 세계 문화 트렌드에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 음악에 영향을 주는 한국 문화 역시 매혹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버질 아블로는 생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17살의 나를 위한 것(Everything I do is for the 17 years old version of myself)”이라는 말을 모토로 삼았다. 디자인은 물론 아이들, 이민자,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8년 파리 튈르리에서 열린 첫 루이비통 쇼에는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 3000명을 초대해 객석 절반을 채웠다.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에 동참해 장학 기금을 조성, 패션을 공부하는 흑인 학생을 지원했다.
영국 보그 편집장 에드워드 에닌풀은 “아블로는 커리어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일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예술과 패션의 문을 열어 그들이 창조적인 세상에서 자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생전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상상력을 되살릴 수 있다면 인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버질 아블로를 추모했다. 신선한 디자인과 협업으로 브랜드를 정상에 올려 놓는 건 물론 자신의 능력을 다음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던 버질 아블로는 패션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