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찰률(경매에 나온 물건 중 낙찰자가 결정된 비율)이 높았던 작가가 누군지 아시나요. 132억원(한국 미술 최고가)에 작품이 팔린 김환기 작가가 아닙니다. 394억 8770만원이란 낙찰 총액 1위를 갖고 있는 이우환 작가도 아닙니다. 1976년생 우국원 작가입니다. 그는 100%의 낙찰률을 자랑합니다. 더불어 대부분 작품이 추정가보다 몇 배씩 높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기껏 전문가들이 가격을 예상해 놓으면 그의 이름값이 예상보다 더 빨리 뛴다는 의미입니다. 우국원 작가를 포함해 MZ세대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빅3' 작가들이 있습니다.
◇한달 새 2배 올라 2억 넘겼다 우국원 작가 작품의 최고가는 작년 한달만에 1억 넘게 올랐습니다. 우 작가의 'Ugly Duckling'이 우 작가 그림 최고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이 그림은 경매 시작가 1500만원의 16배 가까운 2억 3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그의 직전 최고가 거래 작품은 ‘Ugly Ducking’보다 한달 전에 팔린 '타-다(Tah-Dah)'입니다. 이 작품은 1억200만원에 판매됐습니다. 8월 서울옥션에서 세운 최고가 기록을 9월 케이옥션에서 깼습니다.
경매회사의 추정가가 우 작가 작품의 시세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2021년 서울옥션 겨울 경매에서 그의 출품작 'Door'는 1억 1500만원에 낙찰 됐습니다. 추정가는 2500만원에서 5000만원이었습니다. 그는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본인 작품의 인기가 “기이한 현상이고 나와는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컬렉터 집단에 MZ세대가 많이 유입돼 다양한 작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장의 중심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내 작품을 수집하는 세대(MZ세대)다. 컬렉션을 공유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MZ세대의 컬렉터들이 내 작품의 인기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본 최대 서점인 쓰타야를 운영하는 마스다 회장은 과거 "우국원은 바스키아 못지않게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언이 통한 걸까요? 2021년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서 낙찰 총액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 작가 10권 안에 우국원 작가가 진출했습니다.
우국원은 강렬한 색채와 어린아이의 낙서를 연상시키는 화법으로 책, 음악, 동화 등 유년기의 경험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림에 늘 글자를 새겨 넣습니다. 바바라 크루거나 제니 홀저의 개념미술이 떠오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개념 미술이란 작품 자체보다 제작 과정이나 아이디어를 중요시하는 사조입니다.
◇540만원에 샀고 2년후 1억1500만원 됐다…88년생 김선우 작가 2년 여만에 같은 작품 값이 20배 뛴 작가도 있습니다. 김선우 작가의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는 2021년 9월 서울옥션 가을 세일 경매에서 1억1500만원에 팔렸습니다. 2년 4개월 전인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약 540만원(3만5000홍콩달러)에 팔렸던 작품입니다. 낙찰 가격이 추정가보다 7배나 높았습니다. 김선우 작가의 작품값이 이 정도로 뛸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김 작가의 프린트 에디션 작품도 1000만원을 호가할 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됐습니다. ‘프린트 에디션’이란 작가가 직접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닌 찍어낸 그림을 말합니다. 'Hide n Seek' 조형물 연작은 과거에 30만~50만원 정도에 거래됐지만 최근엔 100만원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는 일명 ‘도도새 작가’로 유명합니다. 도도새는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살다 1681년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한 새입니다. 김선우 작가는 이 새를 그림에 등장시키면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가 처음 도도새에 흥미를 가진 건 ‘도도새가 계속 날지 않다 보니 나는 방법을 까먹어서 멸종됐다’는 말을 듣고 부터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도도새를 연구하러 모리셔스 섬까지 갔습니다. 그는 모리셔스 섬에서 돌아와서부터 작품에 도도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는 미대생 시절부터 새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그려왔습니다. 도도새는 그의 기존 그림 스타일과 잘 맞았습니다.
도도새 연작은 가치를 중요시하는 MZ세대 소비 패턴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일회용품 안 쓰기나 채식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식과 열대림 속 멸종된 도도새가 잘 부합합니다. 김 작가는 작년 말 본인 작품을 자선 경매로 내놓고 수익 1억원을 한국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합니다. 이런 일정을 철저히 지켜 사람들은 그를 '예술 공무원'이라고 부릅니다. 또 그는 새로운 시도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술 브랜드 로얄 살루트, 신한카드 등 여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했습니다. 한정판 도도새 피규어나 협업 접시, 직접 만든 대체불가토큰(NFT)은 순식간에 완판됐습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작가다운 시도입니다.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마팔'이라는 문형태 작가 우국원 이어 2021년 국내 경매시장 낙찰률 2위는 아직 30대인 88년생 작가 문형태입니다. 그는 99.34%의 낙찰률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8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그의 작품 ‘A Pot’은 250만원에 시작해 10배에 가까운 23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경매 시작할 땐 250만원이었던 ‘Perpect Picture’은 2400만원에 팔렸습니다. 작년 8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그의 ‘Diamond’가 450만원에 시작해 4000만원에 팔렸습니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문 작가는 조선대 순수미술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조지 콘도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립니다. 입체파 그림엔 직사각형이나 삼각형, 큐브와 같은 기하학적 도형이 주로 나옵니다. 문 작가는 초창기에 어둡고 깊이 있는 색감의 작업들을 선보였습니다. 최근엔 연인이나 가족을 주제로 밝고 따뜻한 느낌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감, 단순한 구도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취득세, 등록세, 보유세 없는 미술시장으로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은 1~2년 새 값이 10배 이상 뛰고 있습니다. 미술계에선 20~40대 젊은 수집가들이 미술품 투자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 입장에선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 쉽게 부동산으로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규제에 막힌 유동자금이 미술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죠. 미술품은 취득세, 등록세, 보유세가 없는데다가 6000만원 미만 미술품이나 국내 생존 작가 작품, 조각의 경우 양도세가 면세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경매가 활성화된 것도 한 몫했습니다.
과거 작가들은 이용할 수 없었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MZ세대 작가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대중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선우 작가도 인스타그램(@dodo_seeker)로 팬들과 소통을 확발히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은 글귀나 전시 정보, 과거 기억 등을 직접 공유합니다. 댓글을 달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도 합니다. 젊은 작가들과 컬레터들 덕분에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던 미술에 대한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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