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고 출범하는 새 정부에 발맞춰 기업들은 정권 출범을 즈음해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한다. 새 정부 5년에 맞춰 내거는 투자 계획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기업 스스로가 공언한 약속인 만큼, 대한민국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빗대 ‘민간 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 불리기도 한다. 잡스엔은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내걸었던 기업들의 경영 계획과 새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발표한 투자∙채용 계획을 비교해 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2026년까지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정보통신) 분야에 450조원 투자, 8만명 신규 채용’.
삼성이 지난 5월 24일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대규모 투자 계획의 핵심이다. 450조원은 삼성이 지난 5년간 투자한 330조원에서 120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연평균 투자 규모를 30% 이상 늘린 것이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4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2022년부터 2026년까지 8만명 채용으로 변경했다. 연간 약 1만3300명을 채용하다가 앞으로는 연간 1만6000명을 채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지 사흘 만에 나온 삼성의 발표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투자도 채용도 모두 역대 최대 규모였기 때문이다. 투자 기간은 윤 대통령의 임기와 동일한 ‘향후 5년’을 명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대규모 투자에 관해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며 “앞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문재인 정부 때보다 이번 정부에서 더 통 크게 투자하고 고용을 확 늘릴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삼성 투자와 고용이 확 늘어날까?
◇이재용 부회장, 문 정부 채용∙투자 약속은 ‘이행중’
삼성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에도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놨다. 2018년 8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틀 뒤 2020년까지 국내 투자 130조원을 비롯해 모두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AI와 5G, 바이오사업을 중심으로 2020년까지 4만명 채용도 약속했다.
2021년 8월에는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를 위해 2023년까지 24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와 바이오, 차세대 통신(5G·6G), 신성장 IT(AI, 로봇, 슈퍼컴)를 중심으로 국내에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삼성은 2018년부터 이 계획에 따라 올해까지 330조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3년간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한 약속도 지난해까지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고 한다.
새 정부 출범 보름째인 지난 5월 24일 삼성이 새롭게 내놓은 대규모 투자 계획은 뭐가 다를까. 2026년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2대 첨단산업과 인공지능(AI), 차세대 이동통신 등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4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사실상 지난해 8월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투자 금액은 3년간 240조원에서 5년간 450조로 늘었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80조원에서 90조원으로 증가한 셈이다. 또 채용 인원이 4만명에서 8만명으로 늘었다. 매년 1만3300명을 신규채용하다가 그 숫자를 1만6000명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바이오 등에 집중 투자
구체적인 삼성의 투자 계획은 이렇다. 앞으로 5년간 계열사들과 함께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 및 차세대 통신과 같은 신성장 IT 등 미래 신사업에 450조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중 80%인 360조원을 국내에 투자해 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의 경우 30년간 선도해온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 위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신소재·신구조에 대한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첨단 극자외선(EUV) 기술을 조기에 도입하는 등 첨단기술을 선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삼성은 고성능·저전력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5G·6G 등 초고속 통신 반도체 등에 필요한 팹리스(Fabless·제조설비를 의미하는 ‘Fabrication’과 없다는 뜻의 ‘less’를 합친 단어)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에서는 차세대 생산 기술을 적용해 3나노 이하 제품을 조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및 시밀러(복제약)를 주축으로 하는 사업구조를 구축하기로 했다.
AI의 경우 전 세계 7개 지역의 글로벌 AI 센터를 통해 선행 기술 연구에 나서는 한편 인재영입 및 전문인력 육성을 추진할 예정이다. 6G 등 차세대 통신에 대해서는 핵심기술 선점을 통해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삼성은 앞으로 5년간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총 8만명을 직접 고용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1만6000여명의 신규 채용이 이뤄지는 셈이다. 삼성은 직접 고용뿐 아니라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감안하면 107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큰 투자, 실현 가능성은?
삼성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2021년 8월 발표한 계획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투자 금액과 채용 규모가 늘었지만 기간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연평균 투자 금액과 채용 인원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2021년 4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76.57조원, 영업이익 13.87조원을 기록했다. 2021년 연간으로는 매출 279.6조원, 영업이익 51.63조원을 기록했다. 2017년 4분기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으로 매출 65.98조원, 영업이익은 15.15조원을 기록했다. 2017년 전체로는 매출 239.58조원과 영업이익 53.65조원의 실적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의 자산은 크게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진단’ 현황을 보면 삼성 자산총액은 2017년 5월 기준 363조2000억원에서 2021년 4월 기준 457조305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2년 5월 1일 기준 삼성 자산 규모는 483조919억원으로 국내 1위다. 삼성전자의 매출 규모나 자산 증가분만 따져봐도 삼성의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삼성이 주력으로 투자하고 있는 반도체 설비 비용은 계속 증가세다. 반도체 생산 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이 2000년대 후반 7조원, 2010년대 후반엔 10조원으로 늘었다. 삼성전자가 2017년에 완공한 평택공장 1라인에 들어간 돈은 30조원에 달한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지금 공사 막바지인 평택공장 3라인엔 50억원을 쏟아부었다고 말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반도체 생산 장비 가격도 치솟는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매년 투자할 금액을 80조원에서 90조원으로 올려도 원래 계획대로 투자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삼성은 올해 상반기 7000명 규모의 대졸 신입 사원 공채를 진행 중이다. 작년과 비슷한 규모다. 1년에 1만4000명을 선발하는 셈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만명 이상을 신규 채용한 삼성 그룹 직원 숫자는 얼마나 늘었을까? 삼성이 미래를 걸고 투자하고 있는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직원 수 변화를 살펴봤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 10만3011명이던 삼성전자 직원 수는 2021년 12월 31일 기준 11만3485명으로 1만474명 늘었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 2318명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 수는 2021년 12월 31일 기준 3959명으로 1641명으로 늘었다. 4년 사이 늘어난 두 기업의 임직원 수는 1만2115명이다.
하지만 다른 주력 계열사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중공업은 2018년 말 1만114명이던 직원 수가 2021년 말에는 9279명으로 감소했다. 삼성물산도 9374명에서 8819명으로 직원 수가 줄었다. 제일기획의 직원 수도 1392명에서 1326명으로 줄었다. 삼성SDI의 직원 수는 2018년 말 1만390명에서 2021년 말 1만1315명으로, 삼성전기 직원 수는 2018년 말 1만1721명에서 1만1866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결국 4년간 4만명 이상을 채용했다는 삼성 그룹 직원 숫자는 실제로는 1만명 조금 넘게 늘어난 수준으로 봐야 한다.
신규 채용을 하더라도 직원 수가 실제로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신입사원 20% 이상이 1년 안에 나간다”고 말했다. “삼성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한 조사에선 MZ세대(80년대 초반 출생~2000년대 초반 출생) 10명 중 3명이 입사 1년이 안돼 퇴사한다는 결과도 있다. 또 이직, 정년 등 많은 이유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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