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최저임금의 최대 쟁점은 업종별로 이를 차등 적용할 것인가였다. 매년 인상 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노사 측은 예년과 달리 최저임금을 지역이나 업종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안을 두고 맞서왔다. 그러나 모든 게 없던 일이 됐다.
지난 6월 16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제4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를 표결에 부친 결과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3년도 최저임금은 예년처럼 업종과 무관하게 단일 금액이 적용된다. 이제 쟁점은 현재 9160원인 최저임금을 얼마나 인상하느냐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다시 노사측의 대립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쏘아 올렸지만 ‘없던 일’로
사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재계의 오랜 숙원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은 당초 법으로 보장된 내용이기도 하다. 최저임금법 제4조1항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 해였던 1988년 최저임금을 2개 업종으로 구분해 적용한 뒤로 다시 시행된 적이 없다. 지난 몇 년간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이 최저임금위 안건으로 오르기는 했지만, 통과된 적은 없다. 지역·업종별 차이 반영을 통해 고용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보다 업종별 차등 적용이 가져올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저임금 업종을 낙인 찍을 수 있는 데다, 업종별 차등 적용을 위한 합리적인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구분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1년 6월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 제도’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40개 나라 가운데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서 적용하는 곳은 멕시코, 벨기에, 스위스(제네바주), 브라질, 일본, 호주 등 6곳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여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대 쟁점이 된 건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21년 8월 자영업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자영업이 무너지면 우리 가정 경제가 중병을 앓게 된다”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지역별,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이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데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숙박·음식점업 등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이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며 차등 적용하자고 주장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계는 오랜 숙원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 이미 재계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7년 16.4%, 2018년 10.8% 등 두 차례에 걸쳐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자, 이에 반발해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해 왔다. 업종별로 인건비 부담 능력이 달라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 업종과 도·소매업 등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업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저임금 근로자 보호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영계가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하는 음식·숙박업에는 이미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데, 이들의 최저임금을 낮게 정할 경우 저임금이 고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9160원’ vs ‘1만1860원’
이제 쟁점은 최저임금 인상률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물가다. 문제는 최근 물가 상승률이 심상치 않다는 거다. 2022년 2월 3.7%였던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들어 4.8%로 올랐고 5월엔 5.4%까지 상승했다. 이런 추세라면 6월에는 6%대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런 가파른 물가 상승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으면서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폭발한 탓도 있다.
‘내 월급 빼곤 다 오른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물가가 오르는 상황인 만큼 노동계는 이를 반영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최소한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난이 여전한 데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악재가 덮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이 41.6% 급등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5년간 가파르게 인상됐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22년 9160원으로 41.6%나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2018년 16.4%, 2019년 10.9%로 초반 2년간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다. 그러나 저소득층 일자리 감소, 자영업자 경영난 악화 등 역풍이 불면서 2020년 2.9%, 2021년 1.5%로 속도를 늦췄고 2022년에는 최저임금을 5.1% 인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현재 9160원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53.2%에 달했다. 최저임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응답도 6.3%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은 현재 최저임금 수준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1.8%가 현재 최저임금이 경영에 많이 부담된다고 응답했고, '부담이 없다'고 답한 자영업자는 14.8%에 불과했다.
반면 노동계는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물가에 맞춰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저임금 근로자의 삶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내년 최저임금은 1만원 이상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적정 생계비를 고려할 때 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1860원이 적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정아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2021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토대로 1~4인 가구 월 평균 적정 생계비를 계산한 결과 247만9000원이 나왔다고 했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1만1860원이다. 적정 생계비는 '한국 사회에서 표준적인 생활 수준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출액'을 뜻한다.
양대 노총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1만1860원은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보다 29.5% 오른 금액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전년 대비 최저임금 인상률은 1.5~5.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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