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워... 어어... 샬레의 선생...!"
얼굴에 꽃이 핀 기괴한 형태의 괴물. 틀림없다, 그녀였다.
"베아트리체... 대체 어떻게..."
녀석은 어떻게 이 세계로 온 것인가. 그러나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 이건... 설마 옥좌의 일부 기능을 재현하는...!
분명 까만 아로나는 그런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 옥좌라는 건, 분명 나람신의 옥좌를 말하는 거겠지.
"현실과 비현실의 가능성을 중첩시키는 그 힘이, 뇌제의 오파츠에 있었다는 거야?"
조금 더 간단히 이야기하면, 녀석은 평행세계에서 넘어왔다는 뜻이겠지.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것처럼.
그리고 날 저렇게까지 원망하는 걸 보면... 아마 내가 알던 그 베아트리체가 맞을거다.
"이거 일 났는데...!"
"머뭇거릴 틈은 없다! 모두 전투 태세를 취하도록!"
스오우의 지휘에 따라, 그곳에 있던 모두는 자신의 화기를 장전했다.
"에잇!"
"으아아아아아! 아아, 끄아아!!"
샷건을 장전하며 베아트리체에게 달려든 스오우는 그 흉측한 얼굴에 탄환을 먹여줬지만, 녀석은 그저 절규할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제길!"
"이 녀석은 위험해! 일단 위로 올라가자!"
모두의 견제 사격에도 그 괴물이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것을 본 우리는, 우선은 도망치려고 계단으로 향했으나...
"그렇게는 안돼, 만마전."
"이 목소린...!"
계단 앞에는,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우리를 막아선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가 있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 곧장 날아오는 게 정답이었군."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은 대체...!"
"목소리가 들렸어. 이곳에서 가장 강한 육체를 원하는 목소리가. 그래서 사막 한복판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지."
"뭐 그런 미친 짓을...!"
"그리고... 거슬리니까, 비켜!"
눈을 부릅뜬 히나는, 그녀의 무장인 종막의 파괴자로 우리에게 탄막을 흩뿌렸다.
"꺄악!"
"이부키!"
"바보, 누굴 걱정하는거야? 당신이 제일 위험한 상황인 거 몰라!"
"하지만!"
"지금 그 태블릿도 꺼졌잖아! 맞으면 즉사라고!"
총격에 당한 이부키를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사츠키가 내 뒷덜미를 잡으며 말렸다.
그러는 동안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온 히나는, 곧 색채에 물든 괴물과 마주하였다.
"당신이구나... 날 부른 게."
"으워... 어으아아...!"
"흥, 뭐 좋아. 이 전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나도 괴물이 되어주지.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
히나는 점점 괴물의 품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것과 하나가 되려는 것처럼.
"잠깐, 히나! 그 이상 갔다간...!"
두려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직감 때문에, 나는 그녀를 멈춰세우려 했지만...
"으, 으으, 으아아아!!!"
곧 괴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버린 히나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윽!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아! 여러분, 저쪽이에요!"
빛이 사그라든 후 겨우 앞을 볼 수 있게 된 우리는, 하루카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은...
"후, 후후후... 드디어, 이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육체를 얻게 됐군요!"
"이건, 살벌하게도 생겼군... 악몽이 따로 없어."
오른쪽 얼굴에 베아트리체의 꽃이 핀, 소라사키 히나였다.
"키보토스의 신비와 색채의 공포... 비로소 숭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후하하하하!"
히나의 목소리와 겹쳐들리는 그 역겨운 목소리. 베아트리체는 확실히 이전보다 더 위험한 적으로 거듭나고 말았다.
"웃기는 소리하긴! 아까보다 더 쪼끄매진 주제에!"
스오우는 다시 적에게 달려가 샷건을 처박으려고 했지만...
"흐음? 움직임이 뻔하군요."
"뭐야? 커헉!"
순식간에 스오우의 앞에 나타난 히나는, 그녀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크흑, 컥... 뭐 이런 힘이...!"
"스오우 씨!"
"다음은 당신들입니다, 만마전. 보아하니 이 몸을 준 아이도 당신들을 매우 증오하는 것 같으니까요."
"이런... 일단 다들 숨어!"
"어림없습니다, 샬레의 선생."
히나는 손가락을 튕겼고, 곧 지하 공간 곳곳에서 보라색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색채의 힘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나에게, 이 정도 기교는 어려운 일도 아니죠. 자, 무력함을 느끼며 사라지세요!"
"으엑! 하얀 문어같은 게 잔뜩!"
균열에서는 무명수호자의 군세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 강철의 인형들은, 곧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쪽수에서 너무 밀려! 물러나자!"
놈들을 피해, 우리는 지하 공간의 구조를 아는 스오우의 뒤를 따라 도망쳤다.
한편, 무명수호자의 군세를 맞이하게 된 것은 지상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이건!"
"일단 갈겨! 도망치지 마!"
선도부와 아비도스의 병력은 놈들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제기랄! 끝이 없잖아!"
샌드맨은 무명수호자를 하나씩 격파하며 진격했지만, 균열을 통해 나오는 무한의 병기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 어떡하죠? 이사장님, 이대로 있다간...!"
"하이랜더 대~ 핀치~!"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하이랜더의 이사장 노노미는, 곧 결단을 내렸다.
"... 하이랜더의 회선을 통해 전달하세요. 우리는 이 전장에서 퇴각한다고."
"역시 그게 맞겠죠? 그럼... 잠깐, 하이랜더 회선만으로요?"
"어? 노노미 대장, 그럼 게헨나 선도부는?"
"처음부터 이 싸움은 선도부와 샌드맨 간의 세력 대립이었던 겁니다. 하이랜더와 네프티스는, 그저 협상을 위해 왔다가 말려든 것 뿐이고요. 이해하시겠죠?"
빙긋 웃은 노노미한테서 살기를 감지한 쌍둥이는, 곧 하이랜더 전체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내린 것은 온천개발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이거 안 되겠는데... 돌아가자, 메구! 애들도 어서 빠지라고 전해!"
"어? 벌써?"
"어차피 우리 목적은 남아있는 선도부를 뿌리뽑으려던 것 뿐이야. 놔두면 알아서 망하겠지. 이탈한다!"
"으음... 뭐 좋아! 부장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작업반장 메구는 부장의 명령이 조금 불만족스러운듯 했지만, 곧 그 명령에 따라 철수 지시를 내렸다.
"선임행정관님! 네프티스와 온천개발부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합니다!"
"네?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이 녀석들... 철수하는데요?"
"뭐라고요!?"
아코가 그 움직임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전장에 선도부와 아비도스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더러... 이걸 다 처리하라고요...?"
"... 이봐, 게헨나. 멍때릴 시간 있으면 여기 좀 도와주지?"
"이 목소린... 이봐요, 당신! 언제 여기까지!"
"말장난할 시간 없어. 지휘 능력은 꽤 있는 것 같으니 맡기지. 그럼..."
"아니, 잠깐! 저기요!"
결국 공투를 선택한 샌드맨은, 자신의 무전을 멋대로 아코에게 넘기고는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다.
"허억, 허억... 일단은 어찌저찌 도망쳤군. 낙오자는 없나?"
지하실의 숨겨진 공간으로 뛰어온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들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모두 온 것 같아요. 만마전 네 사람에 탐정 씨와 조수, 선생님과 당신까지요."
"그래, 그럼 다행..."
"아뇨, 잠깐만요."
"응? 왜 그래, 하루카?"
하루카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곧,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없어요! 그 선도부의 꼬붕같던 사람, 놓친 것 같다고요!"
"선도부라면... 이오리 말야?"
그 말대로였다. 어쩌다보니 아비도스에서 합류했던 이오리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아로나, 아로나! 일어났니? 지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으윽... 죄송합니다, 선생님. 두 번이나 기능을 정지하다니...]
"그건 괜찮으니까! 빨리 이오리의 생명 반응을 추적해줘. 부탁할게!"
[네, 선생님. 이쪽입니다.]
"좋았어! 그리고 상자의 방호 기능을 최대로 설정해줘. 그럼 이제..."
"잠깐만요! 혼자 어디 가시게요!"
멋대로 뛰쳐나가려는 나를, 이부키가 붙잡았다.
"설마 밖으로 나가려고요? 그건 위험해요! 어차피 구할 이유도 없는 적인데, 그냥 놔두는 게...!"
"... 이부키, 물론 네 입장에선 그럴지도 몰라. 이해해. 하지만..."
이부키가 붙잡은 옷소매를 뿌리치며, 나는 말했다.
"그래도 가야해, 난 어른이니까."
"으, 으아아, 부장..."
"여기 있었네, 배신자가."
무명수호자로 이오리의 퇴로를 막은 히나는, 총구를 그녀의 이마에 향하고 있었다.
"오, 오해야! 난 그저, 녀석들한테 휘둘려서...!"
"걱정 마,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적어도 난 말이야."
"진짜? 그렇다면...!"
희망을 찾고 낯빛이 밝아진 이오리를 보며, 그것은 광소했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 따윈 없으니까 말이죠! 자, 해치워버리세요."
"뭣...!"
무명수호자의 모든 총구가 이오리를 향하고, 곧 불길을 뿜어낼 때.
"이오리! 위험해!"
"뭐, 뭐야! 잠깐, 당신은!"
난 그대로 달려가 이오리를 감쌌다.
"이봐! 당신 그러다 진짜로... 어? 뭐야?"
"쳇, 또 나를 방해하는군요. 샬레의 선생."
상자의 방호 기능 덕분에 겨우 살았지만, 이제 여길 빠져나가는 게 문제였다.
"제 발로 무덤에 기어들어온다니, 뭐 좋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끝을...!"
"아니, 그렇겐 안될걸!"
물론 나 역시 생각이 없던 것은 아녔기에, 난 히나의 탈을 쓴 그것을 덮쳤다.
"뭐야! 지금 무슨 짓을...!"
"원래라면 모를까, 네 몸집이 작아진 지금이라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히나의 양 손목을 잡고 늘어지자, 녀석은 아직 육체에 적응하지 못한건지 날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다.
"이오리, 이 틈에 도망쳐!"
"그치만!"
"빨리!"
내 호통에, 이오리는 곧 뒤돌아 달려나갔다. 그래, 이거면 됐어.
"에잇! 지긋지긋하긴!"
"컥!"
내 멱살을 잡아올린 베아트리체는, 내 뒤로 균열을 열었다.
"이건!"
"이 세계에, 당신같은 어른은 필요없습니다! 그만 사라지세요!"
"안돼, 잠깐! 으아아아악!"
녀석은 그대로 나를 균열로 던져버렸고, 나의 의식은 점점 멀어져갔다...
"허억... 허억... 으으..."
무작정 도망친 이오리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지하실의 최대한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은, 만마전 일행이 숨은 곳이기도 했다.
"어라? 당신들은..."
"선도부... 무사했던 모양이네, 적어도 당신은 말이야."
"선생님은... 결국..."
절망적이었다. 그나마 그 괴물에 대항할만한 건 싯딤의 상자 급의 오파츠였는데, 그 주인이 당해버렸다니.
"여기 계속 있는 것도 무리야. 놈들이 우릴 찾는 건 시간 문제겠지..."
"젠장! 정말 이대로 개죽음당할 뿐이라고? 난 인정 못해!"
누군가는 체념하고, 누군가는 분노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우리는 이대로, 여기에서...
"... 잠깐, 싯딤의 상자?"
그 순간, 이부키는 비책을 떠올렸다.
"응? 이부키, 왜 그래?"
"있어요, 이로하 선배! 싯딤의 상자라면, 분명 하나 더 있다구요!"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건 선생과 함께... 잠깐, 설마!"
그렇다. 분명히 하나가 더 있었다. 이 상황을 타계할 오파츠가.
"뇌제가 놔뒀다던 싯딤의 상자... 그걸 써보자구요."
무명수호자들을 풀어놓은 베아트리체는, 여유롭게 지하 공간을 거닐었다.
어차피 만마전은 손바닥 안의 쥐 신세이니,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슬슬 나오시죠, 모두들. 여러분같은 미숙한 존재는, 결국 죽기 마련이랍니다?"
그렇게 그녀가 만마전 일행의 은신처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
"오늘은 아니거든, 이 괴물아!"
기둥 뒤에 숨어있던 치아키는, 녀석을 향해 견제사격을 갈겼다.
"읏... 귀찮은 짓을!"
무명수호자가 일제히 달려가려는 순간, 바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콰앙!
"무슨!"
"아무래도 여분을 챙겨오길 잘했네요, 카요코 씨."
"미안, 수다떨 여유는 없어서. 움직이자!"
카요코와 하루카는 곧 베아트리체에게 접근했지만,
"사라지라고 말했을텐데요!"
"꺄악!"
"이게...!"
베아트리체는 날갯짓으로 돌풍을 일으켜 둘을 날려버렸다.
"카요코 선배!"
"으앙~! 이로하 무서워!"
"겁먹지 마라! 이대로 최대한 버텨!"
"제기랄...! 악감정은 없다고, 부장!"
"얼마나 덤비든 상관없습니다! 자, 무력함을 느끼며 쓰러지세... 응?"
응전하려던 베아트리체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기억 속에 있던 머릿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꼬맹이는 어디로... 설마!"
이변을 눈치챈 베아트리체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쳐 자신이 왔던 곳으로 날아갔다.
"이런, 들켰나!"
"역시 여기 있었군, 만마전의 꼬마!"
그녀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깨진 유리 케이스에서 싯딤의 상자를 꺼내려는 이부키가 있었다.
"내 손으로 당신을 처부숴주죠!"
"으윽! 으, 케헥!"
이부키를 덮친 베아트리체는, 이부키의 목을 졸라 그대로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마코토 의장, 다음은 샬레의 선생... 그리고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미숙한 것들은 너무 쉽게 죽는 게 아쉬운 일이죠. 아니면 이쯤에서 만족해야 할지도...!"
의식이 날아갈듯한 순간에서도, 이부키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손을 뻗어 싯딤의 상자에 손이 닿은 이부키는, 아까 선생님이 들려준 코드를 입력했다.
"우리는... 원한다... 예리코의 통곡을..."
"지금 뭐하는거죠? 유언치곤 볼품없..."
"우리는 기억한다... 일곱 개의... 화두를...!"
"잠깐 설마!"
목이 졸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음에도, 이부키는 코드를 입력하는 데 성공했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https://youtu.be/nvK4QjCMSDY
?si=w-RRynfeVyheYUeQ
"뭐, 뭐야!"
"이 빛은..."
"따뜻하다..."
"이게... 총학이 가지고 잇던 오파츠의 힘...!"
코드가 입력된 싯딤의 상자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져나왔다. 마치 그곳에 있는 외계의 존재를 태워 없애려는듯.
그 힘에 밀려난 베아트리체는, 바닥을 뒹굴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잔재주를 부린다고 제가 물러설 것 같나요!"
베아트리체는 도약하여 이부키를 향해 탄환을 난사했지만, 그 공격이 닿는 일은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샬레의 인증 등록을 마쳤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탄가 이부키 선생님.]
싯딤의 상자를 들고 일어선 이부키는, 그 빛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 일어서거라, 이부키.
"마코토 의장님..."
마침내 싯딤의 상자의 통제권을 완전히 얻게 된 이부키는, 베아트리체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제 끝입니다, 히나 부장! 아로나 씨, 듣고 계시죠?"
[네, 원하시는 업무를 선택해주세요.]
"저 자는 차원의 균열을 여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를 역이용해서, 그녀를 날려버릴 방법도 있겠죠?"
[가능합니다. A.R.O.N.A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OS이니까요.]
"그게 무슨...! 안돼, 멈춰!"
베아트리체는 다시 공격을 퍼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동안, 베아트리체의 뒤쪽에서는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입니다. 저 균열을 이용하면...]
"에에잇!"
"안돼, 안돼안돼안돼에에에!!! 운명을, 내 운명을 파괴할 순 없어!"
이부키가 히나의 멱살을 잡고 균열로 밀어붙이자, 그 몸에서 베아트리체가 튀어나오며 균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내게, 또 이런 치욕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아아아!!!"
그렇게 색채의 괴물로 전락한 베아트리체는, 이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끝난건가?"
"... 아뇨, 아직이에요."
이부키는 주위에 있는 무명수호자들을 둘러보았다. 공격을 멈추긴 했지만, 이들 역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싯딤의 상자여... 이제, 우리의 어두운 시간을 밝혀주세요."
이부키는 한 번 더, 상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뭐야, 이것들..."
"갑자기 움직임이 멈추었는데요?"
당연하게도, 아비도스 사막에서 나타난 무명수호자들도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에 대해 샌드맨과 아코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해, 행정관님! 저기 좀 보십쇼!"
"저건...!"
사막에 다시 균열이 나타나면서, 기계 병사들을 빨아들이는 것이 보였다.
"이게 무슨..."
"간단한 겁니다. 당신들의 패배라는 거죠."
넋을 놓고 있던 아코에게, 멀리서 차가 달려오는 소리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린... 만마전의 꼬마, 당신이 왜...!"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닐텐데요? 이걸 보시죠."
차에서 내린 만마전 일행은, 곧 뒷좌석에서 누군가를 꺼냈다.
"부, 부장님!"
하얀 머리와 보랏빛 제복이 인상적인 소녀는, 마치 잠든듯 조용할 뿐이었다.
"당신들, 부장님에게 무슨 짓을!"
"그 반대야, 당신네 부장이 일을 키워서,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다고."
"네?"
자초지종을 들은 아코는, 사막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럴... 그럴수가... 부장님이...!"
"그래도 다행히 부상은 없으니 걱정 마요. 그리고, 저, 저기..."
이부키는 머뭇거리다가, 아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 지금 뭐하자는 거죠? 제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 그런건가요?"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다만, 어떤 이상한 어른 때문에 생각이 좀 바뀌었거든요."
이부키는 보았다. 적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구하러 가는 선생의 모습을.
그건 지금의 게헨나에 필요한 자세였다.
"이 싸움을 일으킨 히나 부장은 지금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바로 저와 당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그건..."
아코는 망설였지만, 잠든듯한 히나의 모습을 보고 결심이 섰는지 이부키의 손을 잡았다.
"그럼, 결정하신거죠?"
"... 쓸데없는 말하게 하지 마요. 아니었으면 당신 손을 잡았겠어요?"
아코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준 이부키는, 선도부의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싸움을 멈추세요!"
"어, 뭐야?"
"만마전의 꼬마?"
"옆은 행정관이잖아? 설마 진짜로..."
반신반의하는 병사들이었지만, 이부키는 말을 이었다.
"오늘로써 게헨나 내전의 끝을 고하고, 평화와 행복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뭐,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전쟁을 계속할 수도 없잖아요? 히나 부장도 의식 불명인 상태고요."
이부키의 말에 아코가 맞장구 아닌 맞장구를 치자, 그제서야 병사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럼 진짜로..."
"우린... 진건가?"
"아뇨, 승패의 문제가 아닙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이 시대에 이별을 고한다는 뜻입니다!"
이부키의 연설은 이어졌다. 그 호소력에, 모두들 총기조차 내려놓고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샌드맨도 있었다.
"저기, 샌드맨... 우리는..."
"맹랑한 꼬맹이군. 사막 한복판에서 연설이나 하고 있다니. 들어가자, 정리할 게 산더미야."
"그치만..."
"어서, 시간 없어."
"... 그래, 알겠다."
샌드맨과 스오우는 카지노로 향했다. 마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두려워하듯이.
그러는 동안, 이부키의 연설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자, 다 함께 외칩시다! 모두가 하나될 때까지!"
"모두가 하나될 때까지!"
"모두가 하나될 때까지!"
반전된 학생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산더미 같다구요?
으음, 그에 대해서는 해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학생들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구요.
다만 베아트리체와의 결투에서 실종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다행히도, 싯딤의 상자의 OS였던 제가 아직 작동하고 있었기에, 그가 있어야 할 좌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 현재 대기권을 돌파 중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죠.
그래도 원래 세계로 돌아온 순간 이 세계의 A.R.O.N.A도 작동을 시작했기에, 다행히 힘을 합쳐 선생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걸로, 이 기적같은 이야기는 막을 내리겠군요.
그럼, 다들 안녕히.
"프라나 쨩~! 어디로 가는 거예요? 집은 그쪽이 아니잖아요!"
정정. 어쩌면 아직, 떠날 때가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
겨우겨우 이 이야기의 끝을 냈습니다.
사실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았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이상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힘들겠더라구요.
장편 자체가 꽤 힘든 일이기도 해서, 앞으로 쓴다고 하면 옴니버스를 다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작품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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