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다 갈아입었어요!"
"그래? 그럼 들어가도 돼?"
"나도, 나도 볼래!"
D.U 중앙구의 고풍스러운 양장점. 그곳에서 선생 가족은, 하나코가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짜잔~, 어때요? 반하겠죠?"
드레스룸에서 나오면서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도는 하나코. 그 모습을, 선생과 딸은 넋을 놓고 지켜봤다.
"우와."
"우와."
"어, 어...? 두 사람 다, 뭐라고 말을..."
뭔가에 홀린듯한 부녀 때문에 하나코는 당황했지만, 그건 하나코가 본인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자신의 이미지 컬러를 반영한 연분홍색과 흰색 천 드레스에 프릴 장식, 그리고 틀어올린 머리를 고정하는 에메랄드빛 나비 모양 머리핀은, 그녀가 마치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드레스는 마음에 드시나요?"
"네? 아, 네!"
선생이 겨우 정신을 차린 건, 양장점의 재단사가 그를 불렀을 때였다. 긴 털 때문에 눈까지 가린 수인 재단사의 모습은, 마치 늙은 집사같기도 했다.
"역시 재단사님이세요,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과찬입니다. 그래도 확실히, 전에 입은 웨딩드레스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지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재단사님. 여보, 괜찮으면 이걸로 계산을..."
"응, 그럴까? 나는 원래 입던 정장이면 되니까."
"그럼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하나코에게 드레스를 넘겨받은 재단사는, 잘 정리해 포장한 후 선생의 카드로 결제를 마쳤다. 이걸로 준비는 마쳤다.
다음주에 있을, 티파티에서 주최하는 교류회. 초대해준 히후미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어설픈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티파티의 교류회라면... 아마 오겠지?"
"네, 사실상 트리니티 사교계가 모이는 장소니까요."
두 사람은 조용히 속삭인 후, 뒤를 돌아 소녀를 보았다.
"어? 엄마아빠, 왜 그래?"
"아무것도요? 그보다 어서 갈까요?"
"저녁은 근처에서 먹고 갈까? 카레 어때?"
"와! 카레! 먹자먹자!"
세 사람은, 조금 왁자지껄하게 양장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예고한 티파티 주최 교류회의 날이 다가왔다.
선생과 그 가족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티파티 소유의 연회장에 도착했다. 물론, 선생의 차는 아니었다.
"다들 고마워, 교류회 준비로 바쁠텐데."
"이 정도야 가뿐하죠! 필리우스 분파가 직접 초대한 손님이잖아요?"
"거기다 키보토스의 퍼스트 패밀리가 직접 오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당연한 일이죠!"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필리우스의 수행원들은, 선생에게 엄지를 치켜올리며 답했다. 그 밝은 목소리에, 선생도 한결 긴장감이 풀렸다.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주차도 해야하고, 히후미 님도 보좌해야 돼서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사모님 드레스 너무 예뻐요~!"
선생 가족이 내린 후, 수행원들은 페달을 밟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은 쪽이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줬기에, 하나코 역시 손을 살짝 흔드는 것으로 답했다.
"그럼 들어갈까?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네, 기대되네요. 우리 딸, 엄마 손 놓으면 안돼요?"
"응! 어서 가자!"
세 사람은, 연회장 앞의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오랜만이에요, 히후미 님!"
"히후미 님! 선배들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에덴조약 때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게 정말인가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거예요?"
연회장의 한쪽 구석에서, 히후미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랜만에 교류회에 참석한 것이라, 그녀를 보러온 필리우스의 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하하, 여러분? 반가운 건 알겠지만, 질문은 한 번에 한 명씩..."
"여어, 히후미! 오랜만이네?"
그런 히후미를 구원한 것은, 익숙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 선생님! 앗, 크흠!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반가움에 고양되는 기분도 잠시, 히후미는 헛기침을 한 후 짐짓 무게를 잡으며 선생에게 인사했다.
"나야 뭐 잘 지내지. 히후미는, 보아하니 팬이 많은 모양이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너무 멋있으셔요!"
"사모님도 아름다우세요! 고귀해...!"
히후미에게 붙어있던 아이들은, 어느 새 선생 가족 곁을 둘러쌌다.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피로감을 자아냈다.
"아, 뭐... 다들 관심 가져주는 건 고마운데..."
"죄송하지만, 조금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히후미는 저도 오랜만에 만나는 벗이라서요."
"아, 넵! 실례했습니다!"
"다들 뭐해! 다른 테이블로 가자!"
다행히도 착한 아이들이었기에, 그녀들은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배려에 감사하며, 선생 가족과 히후미는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키보토스의 퍼스트 패밀리가 와준 것만으로도, 필리우스는..."
"잠깐."
선생은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히후미의 말을 끊었다. 선생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듯, 한쪽 눈을 감고 히후미에게 말했다.
"그런 것보다, 먼저 할 이야기가 있잖아? 난 히후미의 진심이 듣고 싶은데."
"... 후훗! 오랜만에 봐서 기뻐요, 선생님."
히후미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과하지 않게, 그러나 진솔하게. 그 진심을 확인한 선생 역시, 엄격하던 표정이 풀어졌다.
"그나저나 하나코 쨩, 드레스 잘 어울리네요! 분명 이번 교류회에서도 빛날 거예요!"
"그런가요? 다들 티파티의 제복을 입고와서, 혼자 튀어보일까봐 조금 걱정인데..."
"괜찮아요! 키보토스의 퍼스트 레이디잖아요? 다들 좋아할 거예요."
"어머, 그건..."
친구의 낯부끄러운 칭찬에, 하나코의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 선생은 그런 하나코를 지그시 보고 있었다.
"어? 아빠, 또 하트 뿅뿅 눈빛!"
"어? 아빠가? 하하, 이거 한 방 먹었네."
옆자리의 소녀가 이를 지적하자, 조금 놀란 선생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들은 감각이 예민하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무의식적인 사랑의 전파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아, 맞다. 히후미, 혹시 다른 사람들은 더 안 와? 나기사나..."
"아, 그분들도 곧 오실 거예요. 미카 님은... 여전히 은둔 중이지만요."
"역시 그렇겠지..."
선생은 양 팔을 머리 뒤에 가져다대며 허리를 뒤로 쭉 폈다. 미카한테는 언제 한 번 찾아가야겠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 의자에 앉아 그런 자세를 취하는 건 격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랍니다. 조심하는 편이 좋다구요?"
"아, 미안. 다음부턴 조심할... 나기사?"
선생은 어느 순간, 자신의 뒤에 나기사가 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라, 나기사! 언제 왔어?"
"나기사 이모! 안녕!"
"좀 전에 도착해서 연회장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이 들리는 거 아니겠어요?"
싱긋 웃는 나기사의 표정은, 과거 호스트 재임 시절과는 달리 독기가 빠진 순수한 미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라고 하던가요? 분명 선생님께서 즐겨쓰시던 표현이었죠?"
"뭐 그랬지. 그보다 일단 앉지그래? 계속 서서 이야기하기도 좀 그런데."
"아, 말씀은 감사하지만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그럼 이만..."
나기사는 사교계의 인물들과 교류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등에 달린 커다란 날개가, 조금 흔들리며 소녀의 코를 간질였다.
"에, 에에..."
"어? 우리 딸, 왜 그ㄹ..."
"에취!"
"... 어라?"
소녀는 그대로 성대하게 재채기를 해버렸다... 나기사의 날개에다가.
"어, 어멋! 죄송해요, 나기사 씨! 애가 감기가 다 안 나아서... 제가 닦아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하나코 씨! 이 정도는 제가 닦아도...!"
곱상한 성인 여성 둘이서 서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은, 어떤 아이러니를 불러일으켰다.
"이거, 왠지 웃겨."
"... 우리 딸, 이따 아빠 좀 볼까?"
"아하하..."
그 광경을 보는 선생과 소녀, 그리고 히후미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돼, 알겠지?"
"우으, 알겠어..."
따끔하게 혼이 난 소녀는 조금 풀이 죽었다. 그래도 금방 말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선생은 생각했다.
"아, 이러고 있기보단 회장을 좀 둘러보시지 그래요? 볼만한 게 많을 거예요."
답답한 분위기를 환기한 것은, 히후미의 제안이었다.
"흐음... 그럴까? 우리 딸도 같이 갈래?"
"어, 진짜?"
"어머, 그럼 저도 같이..."
세 사람은 히후미의 제안에 따라, 연회장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교류회가 시작될 시간이기도 했다.
"이야~, 사람 많네?"
"사교계 모임이니까 말이죠. 보아하니 각 분파에 소속된 사람들은 거의 다 온 모양이네요?"
"어, 엄마! 저기저기!"
소녀는 하나코의 드레스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소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디저트와 음료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나~, 맛있어보이네요. 조금 먹으러 가볼까요?"
"응! 응!"
아이의 손을 잡고 디저트로 향하는 하나코. 그걸 본 주위의 티파티 관계자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아, 저분이셔? 선생님의 아내분..."
"거짓말이지? 저런 분이 우리 졸업생 중에 계셨다고?"
"학교를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녔다는 건, 역시 헛소문이었나..."
주위의 수군거림은 익숙했기에, 하나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에게 접시를 가져다주었다.
"자, 우리 딸. 어떤 거 먹고싶어요?"
"음... 아! 초코 케이크다!"
"어이구, 저거 먹고 싶어? 기다려봐, 아빠가 꺼내줄게."
선생은 능숙하게 소녀의 접시에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덜어주었다. 접시를 돌려받는 소녀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듯 밝았다.
"와아! 고마워, 아빠! 엄마, 빨리 먹으러 가자!"
"네네, 갑니다~! 우리도 뭐 하나 마실까요?"
"그럴까? 마침 좋은 샴페인이 있는데..."
얼음통에 담겨있는 샴페인을 조심스레 들어올린 선생은, 한 잔 어떠냐는 눈빛을 보냈다. 하나코도 나쁘지 않은듯, 입을 가리며 조용히 쿡쿡 웃었다.
- ♩♪♬~
중앙 무대에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와 함께, 선생 부부는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말 여기 앉아만 있어도 괜찮겠어? 사교계와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텐데."
"어차피 사람을 만나는 건 좋은 친구 몇 명이면 되니까요. 그리고...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전 이곳의 분위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하나코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녀의 학창 시절이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 미안, 배려심이 부족했네."
"아, 아니에요! 덕분에 아이랑 같이 모교에도 와보고, 또..."
손사레를 치며 해명하던 하나코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 이런 것도,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커흡!?"
가슴 쪽에 손을 얹어, 드레스를 살짝 내려보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골짜기에, 선생은 그대로 사레가 들려버렸다.
"뭐, 뭐하는 거야...!"
"후훗, 역시 당신은 귀여워서 좋아해요.♡"
분노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선생의 얼굴에 어렸다. 하나코도 스스로 심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아니면 누구에게 이런 장난을 칠 수 있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코 옆에서 소녀는 케이크와 홍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차는 쓰다고 거부했겠지만, 초코 케이크와 어울리는 향이 깊은 차였기에 소녀는 잔을 빠르게 비웠다.
"에헤헤, 맛있어~... 으읏!?"
다만... 그렇게 차를 두세 잔씩 연거푸 비운 것이 화근이었다.
"어, 엄마..."
"어라? 우리 딸, 왜 그래요?"
"나, 화장실..."
"어머나, 잠시만요. 화장실이..."
소녀는 절박한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하나코는 그런 소녀를 데리고 화장실에 같이 가려 했지만...
"아, 찾았다! 선생님, 사모님!"
"어, 어? 너희들은..."
"저, 여러분. 혹시 실례가 안 되시면 잠시 단상 쪽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이따 티파티가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축사를 할 예정인데, 두 분이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예? 그치만..."
"자, 자! 빼지 마시구요!"
막무가내로 선생 부부를 끌고가는 티파티의 수행원들 때문에, 결국 소녀는 혼자 남고 말았다.
"어, 엄마!"
소녀는 엄마를 불렀지만, 하나코는 이미 떠나간 후였다.
"우으, 어쩌면 좋지..."
어쩔 수 없었다.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으니, 스스로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서..."
연회장의 문 밖으로 나온 소녀는,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수행원을 보았다.
"아! 혹시 저분이라면... 저, 저기!"
"어? 무슨 일입니까? 길을 잃었나요?"
다리를 배배 꼬는 소녀를 본 수행원은, 무릎을 꿇어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게 아니라... 화장실은 어디야?"
"아, 화장실이요? 저쪽으로 가서 표지판을 따라가면 있습니다만, 혹시 길을 찾기 어려우면 제가..."
"고, 고마워어어어!!!"
소녀는 수행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수행원이 차마 붙잡을 틈조차 없었다.
"어, 저렇게 가면...! 어휴, 이걸 어쩐다... 여긴 꽤 넓어서 돌아올 때 힘들텐데..."
수행원은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 쏴아아...
"후아... 시원해..."
겨우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친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근데 어디로 가야되더라?"
수행원의 걱정대로, 소녀는 길을 잃었다. 너무나 넓은 연회장은, 소녀에겐 황소의 미궁과도 같았다.
"어, 안되는데... 울면 엄마가 걱정하는데..."
터무니없이 길게 이어진 복도를 본 탓일까, 소녀는 겁에 질렸다. 이대로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으, 흐윽..."
결국 자리에 주저앉은 소녀가, 조용히 훌쩍이고 있을 때.
- 파다닥!
"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너는 누구야?"
소리가 난 곳으로 소녀가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하얀 아기 새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아있었다. 울고있던 소녀를 달래려는듯, 새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다시 날갯짓한 새는, 마치 따라오라는듯 천천히 어딘가로 날아갔다.
"어, 잠깐! 같이 가!"
바깥의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그곳으로 나간 소녀는, 무작정 새를 따라 뛰었다. 새는 여전히 소녀의 눈높이 정도에서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헥, 헤엑... 어라...?"
그리고 새를 따라 정원의 가장 안쪽까지 도착했을 때, 소녀는 보았다.
"'더 이상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은 들리지 않았다.' ... 선생님의 추천작치곤, 꽤나 엉성한 소설이군요."
"당신은..."
"그래도 잘됐어요. 감을 믿고 여기서 책을 읽은 덕에, 이렇게 당신을 만났으니."
눈에 확 들어오는, 커다란 황금빛 여우귀. 읽고 있던 책을 덮은 자그마한 체구의 여인은, 아기 새를 자신의 손 위에 앉힌 뒤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죠?"
"데, 데... 데몬니!"
소녀는 눈 앞의 여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러한 소녀의 돌발행동에, 여인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하나요. '데몬'같은 불경한 이름이 아니라... '대모'라고요."
소녀의 대모이자 상투스 분파의 전임 수장, 유리조노 세이아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녀와 세이아는 같이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대모님!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 안 됐습니다. 좀전에 나왔거든요."
"있지있지, 나 얼마 전에 바다 다녀왔다? 물에서 짠 맛이 나서 신기했어!"
"바닷물에 든 염류 때문이죠. 생명의 근원도 거기서 비롯되었다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은 창조주의 존재와 위배되지는 않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연회장에 들어선 두 사람은, 단상에 누군가 일장연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
"... 니티에 필요한 것은 공존을 위한 소통입니다! '철의 여인' 아지타니 히후미가 아리우스 난민 정책에 적극적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또 미숙한 자아를 성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 이상입니다."
"어? 저건 누구지?"
"이번 분기의 티파티 호스트로군요. 그리고... 선생님?"
호스트가 내려가고 선생이 단상 위에 서자, 회장은 열띤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어... 갑작스럽지만 절 이렇게 초대해서 여러분께 훈화를 전할 기회를 준 티파티에게 감사드립니다. 훈화 말씀이니까, 길게 끌 필요는 없겠죠?"
회장 곳곳에선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녀와 세이아 역시 조용히 입을 가리고 웃었다.
"키보토스에 부임하고부터 지금까지, 제 첫 번째 목표는 '모든 학생들의 행복'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생긴 지금은, 더더욱 그렇죠. 부성애라고나 할까요?"
뒤에 앉아 듣고 있던 하나코는,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조금 낯뜨거운 소리를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숙하던 시절엔 그걸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벌주는 건 안된다는 생각에, 모진 말을 뱉어버린 적도 있었구요."
단상 위에선 그 아래에 누가 있는지 매우 잘 보이기 마련이다. 선생은 한쪽 구석의 테이블에서, 히후미와 차를 마시다 놀란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나기사를 발견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여러분께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샬레는 언제나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물론 키보토스의 누구라도 진심을 다해 돕겠다고 말입니다. 노파심에 더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선생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단상에 내려갔다. 그러자 단상에 올라올 때보다 더 큰 갈채가, 회장을 진동시켰다.
"아빠, 멋지다! 쉬는 날엔 잠만 자서 몰랐어!"
"뭐, 선생님이니까요."
동경으로 눈을 빛내는 소녀를, 세이아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여어, 세이아! 역시 와줬구나?"
"후배들의 초청이니까요. 거기다 전, 이 아이의 대모구요."
선생 가족과 세이아는, 아까 선생이 봐뒀던 나기사와 히후미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세이아의 무릎 위에 앉은 소녀는, 세이아가 따라준 홍차를 홀짝였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세이아 씨. 그나저나 선생님,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땐 꽤 당황했다구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하핫, 미안 나기사!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하하, 선생님은 너무 진솔하셔서 탈이라구요?"
선생은 나기사와 히후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하나코의 눈빛은, 취기가 올라선지 조금 끈적했다.
"아! 엄마도 하트 뿅뿅 눈빛!"
"어, 네? 엄마가 그랬나요? 그, 그건..."
"... 그, 하트 뿅뿅 눈빛이 뭔가요? 당신은 왜 부끄러워하는건지..."
소녀와 두 어머니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교류회는 무르익어갔다.
"다들, 오늘 하루 즐거웠어.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쉽네."
"시간이라면, 언제든지 있으니까요. 트리니티에 다시 방문할 때 연락 주세요."
선생은 나기사와 인사를 마치고, 연회장에 올 때와 같이 필리우스의 수행원이 운전하는 차에 탔다. 하나코와 소녀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 뒤 선생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 잘 있어, 이모들이랑 대모님!"
"다음에 또 봐요, 여러분."
부우웅, 차는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떠나갔다.
"그럼 우리도 슬슬 갈까요. 밖에 오래 있었더니 컨디션이 조금 안 좋군요."
"세이아 씨는, 지금도 몸이 불편하시군요... 아, 여차하면 후배들에게 부탁해서 차를...!"
"괜찮습니다, 히후미의 입장이 불편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세이아는 히후미의 친절을 점잖게 거절한 후, 어딘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우우... 조금은 의지하셔도 괜찮을텐데..."
"뭐, 어쩔 수 없죠. 그보다 히후미 씨? 다른 일정이 없다면 저희 집에 들렀다 가시겠어요? 좋은 찻잎이 들어왔는데, 꼭 같이 마시고 싶어서요."
"아, 정말요? 그렇다면 조금 실례를..."
히후미와 나기사는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회장을 빠져나갔다.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연회장 앞 길가를 천천히 걷던 세이아.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 삐리리...
수수한 기본 착신음이 조금 울리다, 곧 전화가 걸렸다. 세이아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를 향해 말했다.
"... 오랜만이군요, 미카. 아, 별건 아닙니다. 오랜만에 그 아이를 만나서, 즐거웠거든요."
조용하게, 그러나 친구와의 통화로 들뜬 채 세이아는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찾아가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서요. 아,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사용인들 없이 저 혼자거든요."
세이아의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미카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세이아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럼 조금 이따 보죠. 아, 아쉽게도 나기사는 히후미와 약속이 있다는군요. 네? 아니, 둘이서만 만나는 건 싫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언성을 높이긴 했지만, 그건 그녀 나름의 우정 표현이었다. 세이아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5분이면 도착하니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 네, 금방 가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세이아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녀에게 있어, 교류회는 이제 시작이었다.
*****
언젠가 떡밥을 뿌려뒀던 교류회 에피소드를 썼습니다.
인물 간 드라마보단 작품의 설정을 풀어내는 데 집중해서, 안맞는 분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중간에 선생의 대사는 에덴조약의 그 발언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 좋아하는 작품의 대사 중 하나인데, 의도가 잘 전해졌으려나요.
그럼, 언젠가 또 재밌는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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