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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군문구중君門九重: 여제와 그녀의 마하키탄 남경 황궁(상)
(지난편에서 등장한 전형적인 '여제식' 남경 건축물, 칙건원조사 금강옥좌탑)
한 번에 다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간략한 설명이라도 길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 그래서 상하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힘썼습니다!
(이번편은 1563년에 1470~1510년의 이야기를 기록한 시점입니다. 여제 이후엔 (18)에서 언급한 계미의 난(1526-1545)이 있었고, 그 뒤로는 (19)에서 언급한 국례복고운동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턴 계속 타임라인을 따라가야겠죠 ;)
요 평등平等 3년(1563) 가을, 새 황제는 남방 순행을 계획했고, 공부는 수백 명의 장인들을 난징에 보내 궁궐을 정비하게 했습니다.
지은 지 90년이 넘은 이 황궁은 주인이 죽자 방치되었고, 가지嘉祉 14년, 20년(1523년과 1529년) 두 차례의 남경 변란으로 약탈당했으며, 국고 보충이 급했던 선제에게 내전 동안 금장식과 구리 기와를 벗겨다 주화와 주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희뿌연 실루엣은 이제 돛대 사이로 남경부의 서항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선사[0]의 모든 원서를 익혔다고 자부하는 저는 이 고궁이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0] 아마 링크 속 명칭이 동일한 기구와 유사한 기구 같습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7461
남도유수사 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녹슨 운화문을 밀어젖히고 낙타 가시가 돋친 향수의 바다를 청소하기 시작하자, 제가 읽고 보았던 이야기 조각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완전히 파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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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 년 전,
보영宝永 13년(1467) 4월, 요 희종께선 중도 북원에서 사냥하고 밤새 잔치를 벌이다가 갑자기 협심증으로 승하했습니다. 하루 뒤 열한 살 공주 야율운혜가 이 끔찍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제의 두 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아들은 태어난 후 요절했습니다.
함께 간 왕공들이 어떻게 싸우고 거래했는지, 중도삼위가 왜 이리저리 동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돌아온 귀족들은 평소 아무리 서로를 미워했든 도성의 무서운 소식이 도성 전체에 퍼졌든 상관없이 결국 자천 아래에서 같은 행동을 취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공주가 즉위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11세 소녀가 갑자기 마하키탄 역사상 최초의 여제가 되었습니다. 조상의 법도를 중얼거리던 사람도 곧 입을 다물었습니다. 태후께서 섭정으로 공천되셨으니 아무리 비통해하시더라도 이 명목상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여위고 슬픔에 잠긴 타밀 여인과 어린 소녀는 더 이상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조종할 순 없습니다. 건창建昌 2년(1468) 춘삼월, 태후는 한 조정에서 단호한 어조로 어린 여황의 혼인을 선포했습니다. 봉건 귀족들이 아직 왕비의 국서로 어느 집안의 누구를 지명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태후는 "내 외동딸의 종신대사는 내 말로만 결정한다"는 강경한 태도로 먼저 움직여 모든 권고를 물리쳤습니다.
백리후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약혼 상대가 산양의 왕세자였다는 것입니다. 옛 팔라 왕조 산양왕가(山陽王家, 산양도, 즉 지금의 벵골~아삼 지역을 통치함)는 제국에서 손꼽히는 번국으로 동부에서 신망이 높았고, 야망 있는 공후들이 줄을 잇던 대상이었습니다.
몇 년 후 젊은 여제가 친정하게 되자 거란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큰 곤경에 처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똑똑한 젊은이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촐라 암사자, 그리고 천한 출신의 충성스러운 문신들의 조합은 이 공후들로 하여금 조용히 여제를 폐위할지에 대해 논하게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여전히 몇 명의 사촌이 있고, 그외에도 한산왕을 중도로 맞이할 수 있지만, 이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단녕端宁 4년(1474) 정월 대보름날, 여제와 산양 세자가 국혼을 올렸습니다. 이날 계하문啓夏門 밖 피실군皮室军의 산호만세山呼萬歲[1]와 천보랑에 세자를 호위하던 산양군의 700마리 전쟁 코끼리의 도열한 광경은 거란 공후들을 완전히 단념시켰습니다.
[1] 만세산호: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여 부르던 만세 (원문은 만세산호라 적혀있었습니다.)
황실을 전복하려는 내부 봉건 영주들의 마지막 시도는 이렇게 파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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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부터 마하키탄 황제들의 목표는 약한 황권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몽골이 남하하여 패배한 뒤, 임시방편으로 분할의 부작용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각지의 거란과 한인 왕공은 독자적인 병권과 재정권을 가지고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전임 황제들은 특수첩보 기구를 강화하고, 전국 토지를 측량하며, 병권을 점차 회수하고, 또 황실기 흑지해동청을 내건 강력한 금군, 오골피실군을 재건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마야날라데비 1세Mayanalladevi I라 불리는 젊은 야율운혜耶律云慧는 중앙집권화 제국을 재건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완수하여 자신이 조부와 아버지 못지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얽히고설킨 노귀족들을 피해 조정을 맑은 공기가 있는 곳으로 궁전을 옮긴 것은 18세 소녀가 고민했던 중요한 의제 중 하나였습니다.
난징 덕부부는 바로 그런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전 세계의 상인들이 온세상의 지식과 명나라와 태서泰西의 좋은 물건을 가져왔고, 남도南都와 술루蘇羅의 시박사市舶司는 조정이 직접 장악할 수 있는 지속적인 수입을 가져옵니다. 여제는 남쪽을 한 번 순시하고는 이곳에 매료되었습니다.
단녕 5년 5월, 난징에서 돌아온 여제는 남경 궁궐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제는 원래 황궁을 짓기위해 남긴 땅이 너무 넓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남경 남서쪽 서항 가장자리의 인더스 삼각주와 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고지를 궁전의 부지로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난징성의 남서쪽 모퉁이이자 주둔군의 성 일부였습니다.
여기, 형광칠 된 부분입니다.
궁궐을 짓기로 결심하기 전에 공부의 장인을 불신하는 것처럼 굴며 신덕(신드)과 파사(페르시아), 구자라트의 장인과 화가들을 대거 고용하여 도쿄로 돌아갔고, 남경기 부근의 여러 건물들의 도안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굴욕감을 느낀 공부에게 임무를 맡긴 뒤에도 궁궐 설계에 대해 시시콜콜 따졌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오에 막 조정을 떠나 우리 공부가 양고기를 삶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공부에 머리를 들이밀어 묻기도 하시고, 종종 도안 일부를 직접 그려주기도 합니다. 때때로 수라상을 보내기엔 너무 늦었을 때, 그녀는 우리가 떨리는 손으로 받든 양고기 온병湯餅을 드시며 가는 길에 수라실을 비꼬며 공부의 식사가 더 맛있다고 했습니다.
흠흠 그건 알려진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것이 바로 제가 직접 본 그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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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 완성된 것은 5년 뒤입니다. 여제가 남경 궁궐의 황금빛 꼭대기와 푸른 하늘빛 옥기와를 봤을 때에는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젠 신하 앞에서도 더 이상 영악하고 짖굳은 모습이 아니라 이제 남편인 막 왕위에 오른 산양왕 전하와 항상 붙어 있습니다.
산양왕은 여제보다 다섯 살 많습니다. 처음에 여제께선 이 정치적 결혼에 대해 아무런 열정이 없었고, 결혼식 당일에야 만난 먼 사촌에게도 매우 냉담했지만, 별이 바뀐 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서로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엔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음......지금까지 우리나라 낭만문학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며 여전히 제국 영화산업의 로맨스영화에 남발된 이야기입니다.)
새 궁전의 정전인 운화전은 설계할 때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제는 중앙에 넓은 황좌를 놓고 산양왕 전하와 나란히 앉기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군신의 예의에 맞지않는다로 이유로 태후와 평장사[2]를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황제는 이 수미좌[3] 한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합좌하는 것은 왼쪽에 치우칠 뿐만 아니라 친왕으로서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여황은 결국 태후의 제의를 들었습니다. 결국 대전 중앙의 높은 곳에 있는 가루다 병풍 앞에 보리가야 금강좌를 본딴 전륜성왕 옥좌를 뒀고, 한쪽에는 산양왕의 왕좌를 살짝 낮은 품계라도 황실의 금수미대(수메르 대좌), 금인, 황장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2] 평장사는 당때부터 있던 재상에 해당하는 관직
[3] 수미는 수메르 산을 뜻합니다. 즉 황제의 정전과 황좌는 불교 속 중심 수메르 산에 빗대어진 것입니다. (8)편 참조해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제가 임신 중이어서 정기적으로 조정에 참석할 수 없었을 때엔 산양왕 전하가 중앙의 황좌에 대신 앉았습니다. 이때 산양왕은 여왕의 목걸이가 달린 작은 베개를 무릎 위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남경 운화전 단면 서쪽 내부. 확대해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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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제가 직접 앉아있을 때, 운화전의 이 어좌는 제국을 휩쓴 일련의 폭풍이 시작된 곳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황실 역로를 개방하는 조서, 모든 사람에게 과거를 개방하고 산스크리트 문자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서, 각 주의 각 도의 인사권을 환수하는 조서, 강주(사마르칸트 일대)와 한산왕(아프간)[4]에게 관세를 납부하도록 명령하는 조서, 최초로 농민으로 구성된 화총군을 세운 조서가 신격화된 황권의 상징인 천장[5] 아래에서 낭독되어 전당의 사람들의 턱이 땅에 떨어지게 했습니다. 결국 여왕의 기대가 충족되었는지 여부는 이후 여러 세대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4] 작중 북쪽 국경지대로서 관세를 내지 않고 번왕과 절도사로서 우대받던 지역입니다.
[5] 번역 실패한 부분 입니다...
이 운화전은 여제가 먼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주들의 사절들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콘스탄티노플에 처음 도착했다는 소식, 대명국 양경(베이징과 난징)을 답방한 견문, 요 선원들이 거란의 고토 해안을 탐험하며 여진인과 코르친 몽골인을 만난 이야기, 동남쪽 전설의 비제가주(오늘날의 서호주)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모두 이 전에서 발표되어 요나라인들의 세계 곳곳의 부에 대한 갈망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시대에 옛 귀족들은 한때 경멸했던 해외 무역을 서서히 시작하였고, 보리도의 승단은 원시적인 금융 업무를 손을 댔으며, 양립할 수 없었던 계급들이 서서히 융합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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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외조 정전 앞의 이 정원은 이미 잡초가 무성합니다. 가운데 바닥에 용이 조각된 십자형 연못 페르시아식 '향수의 바다'는 이미 말라버렸고, 50년 동안 쌓인 황진이 성전 앞 옥계까지 이어진 용수를 가렸습니다. 수미산(基米山) 모양의 기단은 사람 2명 이상의 높이이며, 사암의 조각은 여전히 온전합니다. 전당에 오르니 연꽃무늬 벽돌 위에서 흙먼지가 일어나 기침이 멈추지 않습니다.
장인과 위병들이 반나절을 들여 돌기둥의 거미줄을 골라내고 낙엽과 깨진 나무를 쓸어버렸습니다. 운화전의 어좌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아마 금박을 다 까버리고 어느 헛간에 버려졌나보군요. 휘장은 남경 동란이 일어났을 때 아마 다 약탈당했습니다. 조각된 가루다가 새겨진의 뒷판은 온전히 남아있습니다. 금빛 날개를 가진 가루다의 날카로운 눈빛이 옆 돌기둥에 붙은 용장식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당시 조정 신하에게 억눌린 성질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용들은 대붕(가루다)를 가장 무서워합니다."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여왕이 왜 용과 가루다를 함께 조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제는 오랜 금기를 과감히 무시하고, 서로 대립하던 세력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낸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범룡 기둥에 기대어 경비병들이 사원 뒤편에 있는 주홍색으로 칠해진 장경문의 문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 격자에서 더 많은 먼지가 떨어졌습니다.
(궁궐 투시도, 이번 회차에선 투시도 오른편의 운화전雲和殿 위주로 묘사되었습니다. 후반에 작중 화자가 연 장경문은 운화전 바로 뒷편에 있습니다.)
(하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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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표: 참고건축물: 내가 어느 부분에서 어느 건물을 참조했는지 맞춰보세요.
모두 마하키탄에 등장할 법한 평행세계처럼 보이는 건물들이에요.
(역자첨부: 건물 순서를 지역별로 묶어서 재편성했습니다.)
하화엄사 대웅보전
(https://en.wikipedia.org/wiki/Huayan_Temple_(Datong))
독락사 관1음각, 독락사 산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ytchoi&logNo=222055694725)
포광사佛光寺 동대전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A%B4%91%EC%82%AC)
요 경릉지궁辽庆陵地宫
(내몽골에 소재함. https://baike.baidu.com/item/%E5%BA%86%E9%99%B5/4720508)
교토 어소 자신전
(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D%86%A0_%EC%96%B4%EC%86%8C#/media/%ED%8C%8C%EC%9D%BC:Shishinden_in_2016.JPG)
조캉사원 대소사 중심 불전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BA%89_%EC%82%AC%EC%9B%90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BA%89_%EC%82%AC%EC%9B%90)
티베트 시가체시, 샬루 수도원의 샬루 라캉(수도원의 중전)
Tarakeshvara Temple. Hangal
(https://en.wikipedia.org/wiki/Tarakeshwara_Temple,_Hangal)
Hoyaleshvara Temple, Halabid
(https://en.wikipedia.org/wiki/Hoysaleswara_Temple)
Siddharameshvara Templpe, Niralgi
(https://en.wikipedia.org/wiki/Siddhesvara_Temple)
Khandariya-Mahadevi, Khajurajo
(https://en.wikipedia.org/wiki/Kandariya_Mahadeva_Temple)
...다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서인도 사원들.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
(https://heritage.unesco.or.kr/%EB%B6%80%EB%8B%A4%EA%B0%80%EC%95%BC%EC%9D%98-%EB%A7%88%ED%95%98%EB%B3%B4%EB%94%94-%EC%82%AC%EC%9B%90-%EB%8B%A8%EC%A7%80/)
이스파한 40기둥 궁전 (체헬 소툰)
(https://ko.wikipedia.org/wiki/%EC%B2%B4%ED%97%AC_%EC%86%8C%ED%88%B0)
다마스쿠스 바잇 탈-말Bayt al-mal (재상부)
(https://en.wikipedia.org/wiki/Qubbat_al-Khazna
Takht-i-Sulaiman,Iran
(https://en.wikipedia.org/wiki/Takht-e_Soleym%C4%81n)
Fondaco del Turchi, Venice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enpa44&logNo=220877054726)
……그리고 미국 북부의 여러 박물관에서 온 남아시아 불교 조각상 컬렉션입니다.
실제로 하나씩 펼쳐서 어떻게 참조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지만...
저는 글에 집중해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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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메모장 어제 날려먹은 거 다시 재번역 하고있더니만 갑자기 켜보니까 또 파일 안깨져있고...
그래도 안날려먹은게 다행이지만 워드로 치고 말고 싶은데 워드는 또 디시로 복붙하면 개판나던데 미치겠네
혹시 디시로 복붙해도 안깨지는 프로그램 아는 갤럼 있으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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