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현대가 미래를 위해 주목한 스타트업은?
국내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늘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활용해 신규 시장 개척과 새로운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자본 등을 지원받아 기술과 서비스 개발 동력을 얻는다. 국내 대표 대기업 중 3세 경영을 본격화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가 최근 투자한 스타트업을 살펴봤다. ‘젊은 피’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향후 주목하는 미래 먹거리를 알아봤다.
◇현대차, 유망 미래기술 스타트업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 1위
현대차는 최근 5년간 국내 500대 기업 중 스타트업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7월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는 500대 기업 중 2015년부터 2020년 3월 말까지 타법인 출자 내역이 있는 168곳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단순 지분 취득이나 펀드 등 간접투자는 제외했다. 이중 벤처·스타트업 투자금액이 가장 많은 기업은 현대자동차였다. 현대차는 총 53개 기업에 7157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그룹으로 묶여 있는 기아차(2346억원)와 현대모비스(771억원)의 투자액을 합치면 현대차그룹의 스타트업 투자액은 1조원이 넘는다.
현대차가 가장 주목한 분야는 친환경 자동차, 자율주행 등 미래 차 관련 분야 스타트업이었다. 현대차가 투자한 대표적인 국내 스타트업은 마키나락스다. 마키나락스는 제조업에 특화한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하는 테크 스타트업이다. 딥러닝(deep learning·심화학습)과 강화학습으로 제품이 이상 있는 경우 자동 탐지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로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여러 분야의 기업에 생산을 효율화하는 산업용 AI 솔루션을 만든다. 현대차는 이곳에 20억원을 출자했다.
커넥티드카(connected car·통신망을 통해 정보기술기기로 활용하는 차량).
출처현대차 제공
해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유브이아이(UVeye)’에 투자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동차 결함을 검사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곳이다. 유브이아이의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은 인공지능, 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수동으로 이뤄지던 검사를 표준화해 더 빠르게 검사를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자동차의 결함을 쉽게 탐지하고, 이상 징후나 이물질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스크래치, 타이어 손상 등의 기계적 문제도 확인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 스타트업인 ‘옵시스’에는 300만달러(약 32억원)를 투자했다. 옵시스는 라이다(Lidar)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다. 라이다 센서는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부품이다. 레이저를 목표물에 쏴서 사물과의 거리 및 물체의 특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전파로 물체를 감지하는 ‘레이더’와는 다르다. 현대차는 옵시스의 라이다 기술을 확보해 현재 개발하는 자율주행차량에 탑재할 계획이다. 작년에는 영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어라이벌에 13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 같은 행보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정 회장은 “모빌리티가 회사의 미래”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도 미래 차 관련 스타트업에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좌), 서울 여의도 LG전자 사옥(우).
출처조선DB
LG사이언스파크를 찾은 구광모(오른쪽) LG 회장이 투명 플렉서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LG 제공
◇LG전자, 신기술·미래사업에 집중
LG전자는 582억원을 투자해 9위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에 잇따라 투자하면서 미래 유망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작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작년 11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을 보면 작년 3분기(1∼9월) 동안에만 5곳에 총 81억원을 투자했다. LG전자는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스타트업 투자를 본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구 회장은 로봇, 인공지능(AI), 전장 사업 등을 미래 사업으로 점찍기도 했다. 실제로 자율주행차, 의료기기, 생활가전 등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 주목했다.
작년에 투자한 레메디, 지이모션, 티랩스는 신기술·미래사업 분야 기술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이다. 먼저 레메디는 의료용 방사선기기 개발사다. LG전자는 병원용 엑스레이(X-ray) 솔루션 사업을 위해 16억원을 투자했다. 지이모션에는 10억원을 투자했다. 지이모션은 3차원(3D) 의류 텍스타일(textile·직물이나 옷감) 디자인툴을 개발하는 회사다. 의류가전과 관련해 가상 피팅 솔루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출자했다. 티랩스에도 10억원 투자했다. 이 기업은 LG전자가 최근 집중하는 위치 측위(GPS를 사용하거나 무선 네트워크의 기지국 위치를 활용해 단말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 실내지도 생성 기술을 가지고 있다. 티랩스는 현재 LG전자와 배송 로봇 기술 개발을 위해 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가 찜한 해외 스타트업은 프랑스의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스타트업 블레이드,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라이다 전문 기업인 캐나다의 레다테크였다. 블레이드에 39억원, 레다테크에 6억원을 투자했다. 신기술과 미래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인 셈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C랩 갤러리'를 찾아 사내 스타트업들의 제품과 기술을 살펴보는 모습.
출처삼성전자
◇반도체 기술과 국내 소·부·장에 집중하는 삼성전자
재계 1위인 삼성전자는 12개 기업에 408억원을 투자(14위)했다. CEO스코어는 삼성전자가 지분투자보다 경영권 인수를 포함한 인수합병(M&A)이나 미국 실리콘밸리 법인 및 펀드 조성 투자를 선호해 투자 실적이 적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LG전자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삼성전자는 작년 3분기 누적 기준(1∼9월) 스타트업, 투자조합 등에 약 2540억원을 출자했다. 2019년 삼성전자가 사업을 목적으로 타법인에 투자한 건 1건뿐이었다. 금액은 67억원이다. 이와 비교하면 2020년에 스타트업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집중했다. 또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투자했다. 작년 3분기에만 솔브레인(249억원), 에스앤에스텍(659억원), 와이아이케이(473억원), 이노비움(117억원) 4곳에 집중 투자했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보다는 기술력 있는 반도체 중견기업에 돈을 집어 넣은 것이다. 솔브레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재료 업체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순도 99% 이상의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처음으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세정 공정에 필요한 핵심소재다.
삼성전자가 솔브레인뿐 아니라 에스앤에스텍, 와이아이케이 등 국내 소·부·장 관련 기업에 투자를 집중한 데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19년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품목인 불화수소, 불화 폴리아마이드,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다.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은 사실상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에 그해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을 직접 찾기도 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입 길이 막히자 현지를 찾아 대책 마련에 나선 거다. 이와 동시에 국내 기업에 눈을 돌렸다.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직접 확보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국내 솔브레인이 만든 불화수소를 일부 제조 공정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삼성전자가 투자한 에스앤에스텍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과정에 쓰이는 포토마스크 원재료인 블랭크마스크를 만드는 업체다. 와이아이케이는 반도체 검사 장비를 만든다. 이노비움은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반도체 회사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1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33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세웠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는 기술 확보·시너지 효과 등을 활용해 미래에 대비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등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이런 움직임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스타트업 투자 규모 2위는 네이버(3092억원), 3위 SK㈜(2648억원), 4위 기아차(2346억원), 5위 SK텔레콤(1187억원), 6위 GS홈쇼핑(169억원), 7위 현대모비스(771억원), 8위 유한양행(725억원), 10위 NHN(576억원) 순이었다.
글 시시비비 귤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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