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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 대뿐인 자전거 만드는 사람입니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20 09:08:17
조회 3375 추천 4 댓글 35

이정훈 루키바이크 대표

이정훈 루키바이크 대표
자전거판 ‘맞춤 정장’ 프레임 빌더
1200만원짜리 자전거 의뢰한 고객도

“프레임 빌더는 작가와 비슷해요. 기나긴 무명 시절을 버텨야 언젠가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때까지 묵묵히 자전거를 만들어야 해요.”


서울 광진구 주택가의 한 공방. 이곳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프레임 빌더 이정훈(35) 루키바이크 대표다. 이 대표는 혼자 수공구를 이용해 고객 맞춤형 자전거를 제작한다. 그에게 수제 자전거를 만드는 일에 대해 물었다.

이정훈 프레임 빌더.

출처jobsN

-프레임 빌더가 하는 일이 뭔가요.


“말 그대로 자전거의 뼈대인 프레임(frame)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프레임을 제작하죠. 먼저 고객 요청이 들어오면 주문서를 접수해요. 주문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고객과 상담을 하고, 신체 사이즈를 잽니다. 인심(inseam·두 다리의 안쪽 길이)·몸통·팔·어깨너비 등을 측정해요. 이때 어떤 유형의 자전거를 원하는지, 좋아하는 디자인은 무엇인지 파악하죠. 재료 선택도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설계를 해요. 설계도를 보고 다시 한번 고객한테 피드백을 받고, 본격적으로 프레임 제작에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도색 작업을 거쳐 수제 자전거가 탄생해요.”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어요. 자전거 영화제를 보러 갈 정도로 즐겼죠. 대학에서는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오랜 기간 방황했어요. 수업도 재미없었고,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왔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다가 자전과와 관련된 직업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프레임 빌더라는 직업을 발견했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자전거를 만드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준비를 했나요.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았어요. 이 일 자체를 하는 분이 드물었는데, 수소문해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유튜브 동영상이나 해외 포럼에서 자료를 찾기도 했고요. 그래도 한계를 느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 했는데, 마침 미국에서 프레임 빌딩을 배우고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하는 분이 나왔어요. 제 영어 실력이 유창한 편도 아니었고, 교육 과정도 크게 차이가 날 것 같지 않아 6주 동안 그분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개인적으로 1년 정도 더 연습했어요. 지인들이 탈 자전거를 만들면서 감을 익혔고, 2013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가 만든 자전거들.

출처루키바이크 제공

-수제작인 만큼 가격이 비쌀 것 같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자전거보다는 고가예요. 로드바이크 완성차 기준 400만~450만원에서 시작합니다. 동급 부품을 쓴 자전거랑 비교하면 2배에서 2.5배가량 비싸죠. 그런데 고가 부품을 쓴 기성품일수록 수제 자전거와 가격 차이가 줄어들어요. 프레임 가격 비중이 그만큼 작아지니까요. 지금까지 가장 비싼 자전거 제작을 의뢰한 분은 1200만원짜리 제품을 만들어 가셨어요. 보통 500만~600만원 상당의 자전거를 제작합니다.”


-자전거 1대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요즘은 비대면으로 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자전거를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분이라면 상담과 사이즈 측정까지 방문 당일에 끝나요. 그 뒤로 설계와 피드백까지 2~3일, 길게는 1주일 걸립니다. 순수하게 프레임 제작에 걸리는 기간은 2~3주예요. 자전거를 만들 때는 수십가지 공구가 쓰입니다. 용접기가 필요하고, 파이프를 설계한 각도에 맞출 수 있는 지그(jig)도 있어야 해요. 또 수평을 맞추는 정반(定盤)도 씁니다. 개인적으로 전동 공구는 잘 안 활용해요. 대부분 손으로 작업하는 수공구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엔 자전거 제작에 필요한 공구가 많지 않아서 수입하거나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해요. 프레임 제작이 끝나면 도색하는 데 추가로 2~3주가 필요합니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총 6주 정도 걸려요.”


-어떤 분들이 수제 자전거 제작을 의뢰하나요.


“저희는 프레임을 만들 때 이탈리아 콜럼버스사(社)의 스틸(steel·강철) 파이프를 사용해요. 재료 특성상 클래식한 로드바이크나 여행용 자전거를 제작하는 분이 많습니다. 고객 유형은 다양한데요. 아무래도 자전거를 잘 아는 분이 많아요. 자전거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거나 자전거를 탄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수제 자전거 제작을 의뢰합니다. 제작한 자전거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이런 게시물을 보고 호기심에 가게를 찾는 분들도 있어요. 첫 자전거로 핸드메이드 자전거를 만들겠다는 분도 가끔 있는데, 이런 경우 신중하게 고민하고 구매하기를 권해요. 옷을 예로 들면 맞춤 정장은 중고로 되파는 게 쉽지 않잖습니까. 제값을 못 받을 가능성도 높고요. 그래서 정말 제품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 때 결정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용접기와 지그(위), 프레임 제작에 쓰이는 공구는 수십가지에 달한다(아래).

출처jobsN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자전거가 있습니까.


“매번 다른 제품을 제작하는 거라 만들 때마다 기분이 새로워요. 어려운 점이나 난관도 항상 생기고요. 그래서 작업한 자전거 사진만 보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이 납니다. 4년 전에는 왜소증(의학적인 이유로 키가 일반인보다 작은 증상)이 있는 분이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왜소증이 있으면 다리가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이 고객도 그랬어요. 그런데도 자전거를 꼭 타고 싶어 하셨죠. 처음 하는 작업이라 쉽지 않았지만, 자전거를 인도할 때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제 자전거가 기성 제품보다 좋은 점을 꼽는다면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요즘은 물건을 살 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많이 따지는데, 이 부분만 고려하면 수제 자전거를 제작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자전거에 본인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분이 많이 찾아오세요. 고객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다는 면에서 구매 경험 자체도 다르고요.”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몇 없다고 들었습니다.


“밥벌이로 프레임 빌딩을 하는 분은 우리나라에서 10명이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수제 자전거 시장이 크지 않기도 하고요.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는 거니까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전거 대란이 일어났지만, 이 업계는 일반 자전거 시장과는 성격이 달라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다만 올해는 다른 해보다 작업이 많은 편이긴 합니다. 몇 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알음알음 찾는 분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2020년에는 스무대가 약간 안 되게 만들었어요.”

출처jobsN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년에게 해줄 말이 있습니까.


“가끔 일을 배우고 싶다며 공방에 찾아오는 분이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쉬운 분야는 아닙니다. 작가와 비슷해요. 무명 시절을 버텨야 언젠가 빛을 볼 수도 있죠. 이 기간을 버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힘들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 해요.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곳은 일본입니다. 1·2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있어요. 이 교육을 마치고 귀국해 작업을 하는 분도 있고요. 이쪽이 가장 빠르게 프레임 빌더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시작할 형편이 아니라면 외국어 공부를 미리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또 자전거에 대한 지식도 필수입니다. 꼭 프레임 제작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정비 기술을 익히거나, 자전거 매장에서 근무하는 경험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다른 자전거 제작자분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습니다. 2017년 북미바이크쇼와 필라델피아 바이크엑스포에 신인 프레임 빌더로 참가한 적이 있어요. 여러 프레임 빌더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죠. 우리나라에는 수제 자전거 제작자가 많지 않아 커스텀 바이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흔치 않아요. 당시 해외 바이크쇼에 참가한 이유도 내가 만든 물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프레임 빌더와 함께 수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거창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앞으로도 꾸준히 자전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시시비비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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