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CL(이채린)의 아버지는 이기진(61)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마이크로파를 연구한다. 자유분방하고 멋진 퍼포먼스로 유명한 가수와 연구실에서 파동을 연구하는 교수. 사실 쉽게 뒤섞이는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지난 세월을 뒤적여보면 둘 사이가 부녀라는 것에 자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교수는 아제르바이잔과 내전 중이었던 아르메니아에 물리학 연구를 위해 떠났다. 내전에도 참전했다. 이사도 자주 했다. ‘강이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 생각하면 바로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서울 전셋집을 빼 프랑스 파리의 한 다락방으로 온 가족이 이사한 일도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하지 못 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벌여온 그지만 과학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성과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의 연구에 중국 기업 화웨이가 백지수표를 제시하며 투자를 하고 싶다고 나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쯤 되니 그가 정말 궁금해진다. 이 교수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기진 서강대 교수입니다. 전공은 물리학입니다.”
-교수님의 지난날을 살펴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입니다. 고교,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버님이 굉장히 자유로운 분이셨어요. 항상 여유가 있으셨고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시,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시절 교내 그림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군 복무를 마친 후부터는 전공 공부를 진지하게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물리학은 이과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영역인 것 같습니다. 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물리학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과목이었어요. 100% 착각이었지만요. (웃음) 아버님이 물리학 교수를 하셔서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쉽게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죠. 계속 간다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요.”
-대학 졸업반 시절 삼성전자에 원서를 내러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고요. 대학 시절부터 계속 물리학 연구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친구들을 따라 삼성전자에 원서를 내러 갔다가 찢어버리고 돌아온 적이 있죠.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더 공부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나의 길을 포기하니 다음 길이 확실히 보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물리학이 그런 길 아니었을까요.”
-채린씨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르메니아에 연구를 위해 떠났다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곳인데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내전 중인 나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제게 필요한 연구를 하는 곳이 아르메니아 공화국에 있었어요. 간다고 하니 다들 반대했어요. 근데 제가 주위에서 반대하는 소리를 잘 파악 못하는 성격이에요. ‘왜 반대를 할까? 자기들이 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내전 중이인 곳에 간 거였고요. 지금에 와서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정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에요.”
-내전에도 참전했다고 해요. ‘연구실 사람들이 전쟁터로 나가서 혼자 있기 뭐해서 나갔다’는 농담 섞인 이유도 있었다고 하던데 참전 이유가 궁금합니다. 교수님 말고 참전한 외국인들도 있었나요.
“참전을 앞 뒤 재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땐 한 달 정도 국경에서 태권도도 가르치고 같이 보초도 서고, 총도 쐈어요. 못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요. 군대라는 조직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총알이 언제 날아올 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여유가 있기도 하고. 외국인은 저 이외에는 보지 못했어요.”
-동양인 최초로 아르메니아 과학원의 회원이 됐다고 합니다. 회원 자격을 얻는 건 그 나라 과학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예라고 하는데 어떻게 회원이 된 건지 궁금합니다. 아르메니아 공항에 내리면 정부에서 공항으로 차를 보내줄 만큼 국빈 대우를 받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제가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도 있지만 학문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아르메니아 연구원과 학생들이 제 연구실을 거쳐갔죠. 그들이 돌아가 지금 아르메니아 최고 대학인 예례반 대학에서 학문의 틀을 만들고 있고요. 이런 일들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거의 30년에 걸친 학문적 교류의 결과죠. 제 인생이기도 하고요. 국빈 대접 이야기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웃음)
-가족들을 데리고 파리의 다락방으로 이사를 한 일화도 굉장히 놀랍습니다. 파리와의 인연이 있었나요. 파리에선 어떻게 지냈나요.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을 것 같아요.
“파리는 20대 때 아르메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들렀던 곳인데 굉장히 좋았어요. 가족들과 파리의 한 다락방으로 떠난 건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 이후에요. 100년이 넘은 건물이었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르다 숨 차 지칠 때 쯤에야 문에 다다르는 곳이었어요. 부엌은 당시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움직일 수도 없었을 만큼 좁았지만 행복했어요.
파리에선 서울 전셋집을 빼 가져간 전세금과 파리연구소에서 나오는 작은 돈으로 살았어요.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삶을 꾸리는 긴장된 가난의 시간이었죠. 파리에서 마냥 논 것은 아니에요. 치열하게 논문을 썼어요. 아침에 카페에 출근해 일하고 카페 직원들이 점심 준비를 하면 다락방으로 올라와 다시 일을 하는 식이었죠. 가장 싼 차를 빌려서 가족들과 여행을 하기도 하고요. 일본으로 떠나기로 결정이 된 상황이라 미래에 대한 여유는 그래도 좀 있었어요.”
-일본 유학 시절에는 두 딸(채린, 하린)의 한글 공부를 위해 직접 그림책을 만들어줬다고요.
“‘빡치기 깍까’라는 책이었어요. 5권까지 있었는데 얼마 전 채린에게 원본을 줬어요. 박치기를 잘하는 깍까가 그 힘을 이용해 세계와 우주를 여행하는 이야기였어요.”
-올해 유퀴즈에 출연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는 채린씨의 말에 이유를 묻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부모들이 가져야 할 마인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잔소리는 아이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요. 자동차의 공회전 내지는 후진과 같은 것이죠. 아이들을 믿으세요. ‘지금부터 믿자’ 이렇게 해서 하루 아침에 되긴 어려워요.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해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피를 뽑지 않고 혈당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의사 출신 과학자가 연구할 것만 같은 주제인데 물리학자가 연구를 시작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연구하는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채혈 없이 혈당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2006년 마이크로파로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다가 이 정도의 정밀도면 혈액 속에 포도당이 얼마나 들어있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던 연구였어요. 이 연구는 제 마지막 연구이기도 해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도 힘든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화웨이에서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며 백지수표를 내밀었는데 거절했다고요. 당시 정부로부터 받던 연구비 지원이 끊겼던 상황이라 많이 아쉬웠을 것 같은데요. 이후의 연구는 그럼 어떻게 진행했나요.
“네. 국내 지원을 받아 시작한 연구니 국내에서 (국내 자본으로) 마무리짓고 싶었어요. 지금은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감사히 생각하고, 귀중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판화 전시를 하기도 하고, 동화책도 쓰고 그림도 그립니다. 교수님께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나의 휴식 방법일까요?
“전 물리학자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평범한 인간입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도 있고요.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과 요리, 음악, 사랑, 우정 등을 포함해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제 기술입니다.”
이기진 교수가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들을 그린 그림. 이 그림들은 그의 책 ‘우주말고 파리로 간 물리학자’에 실렸다./ 흐름출판
-이번에 파리에서 지낸 이야기들을 담은 ‘우주말고 파리로 간 물리학자’ 책을 냈어요. 이 책을 읽다보니 파리가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따로 없고요. (웃음) 이 책을 읽고 자신의 현실을 잠시 바라봤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아름다운 자신만의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지를 깨닫는 게 중요하잖아요. 저 역시 하루하루 멋지게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고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요.
“거창한 것은 없고요, 하루하루 무사히 스트레스 조금 덜 받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에요.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면 다음에는 더 센 놈이 나타나더라고요. 그러니 목표를 위해 피 흘리며 산다는 걸 좋아할 이유는 없죠. 그 지나가는 시간에 웃으며 살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멋진 대답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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