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권에서 신혼집을 알아보던 직장인 홍모(35)씨는 최근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서 올라온 전세 5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집도 보지 않고 바로 계약했다. 행여 누가 채갈세라 계약금부터 보냈다고 한다. 경기 한 신도시에 위치한 해당 매물은 매매가가 18억원에 전세 가는 9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홍씨가 구한 ‘반값 전셋집’은 임대사업자가 내놓은 매물이다. 일반 매물은 전월세 상한제 등이 포함된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인상률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기본 계약 기간에 계약갱신청구권 1회를 쓰고 난4년(2+2년) 뒤에는 시세대로 값을 올릴 수 있다. 반면 ‘등록 임대주택’은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계약 때마다 최대 5% 내 인상만 허용된다. 때문에 최근 전셋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거의 시세의 반값에 가까운 매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홍씨는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예정됐던 결혼까지 미뤘었는데 임대사업자 매물이라니 뒤도 안 보고 계약했다”며 “빌라 전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아파트에 살게 돼 로또 맞은 기분이다”고 했다.
전셋값이 치솟는 시기, 임대사업자 전세 매물이 귀한 몸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전세를 구하기 어려운데 시세보다 가격대가 낮은 경우가 많아서다. ‘임사(임대사업자) 로또’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울 부동산마다 이러한 임사 매물을 찾아 떠도는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투기 세력으로 지목한 임대사업자 매물이 오히려 세입자에게는 ‘착한 매물’이 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2018~2020년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의 매물을 잡은 세입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등록 임대주택 전셋집을 잡기 위한 팁들이 공유되고 있다. ‘열일 제쳐놓고 계약금부터 쏴라’, ‘부동산에 미리 구한다고 알려놓고 자주 얼굴을 비춰라’, ‘무조건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집만 계약한다는 마음으로 여유있게 구하라’… 서울 한 부동산에는 임대 사업자 매물이 뜨자마자 한 시간도 안 돼 전화가 스무 통 넘게 왔다고 한다. 한 중개업자는 “부동산 문 열자마자 임대사업자 전세 없느냐고 묻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의 임대사업자가 내놓은 주택이 일반 주택보다 40% 싸다는 통계도 나왔다. 국민의힘 부동산공시가격검증센터장인 유경준 의원에 따르면, 서울의 지난해 등록임대주택 평균 전세가는 2억 3606만원이었다. 시중 일반 주택 전세가인 3억 7762만원의 60% 수준이다. 부산, 인천, 대구, 울산, 광주, 대전 등 광역시도 등록임대주택 전세가가 시중 일반주택의 60~70% 수준으로 형성돼 있었다.
특히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에서 임대사업자가 내놓은 주택은 시세의 절반도 안 됐다. 서울의 경우 등록임대주택이 시중 일반 주택 전셋값의 약 37%로 말그대로 ‘반값 세일’ 이상인 수준이었다.
임대사업자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앞으로 더 구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픽사베이
시중 일반 주택과 등록임대주택의 가격 차는 최근 전세가가 폭등하면서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7월 통과시킨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시행 후 서울 전세가는 1억 4384억원 올랐다. 전셋값 평균이 10억원을 넘는 서울 자치구는 작년 8월만 해도 한 곳도 없었지만, 법 시행 이후 강남과 서초구에는 10억원 이상의 전세가 등장했다. 전세값 폭등 ‘무풍지대’인 등록임대주택에 세입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운 좋게 임대사업자의 아파트 전세 매물을 구하는 일도 이제 쉽지 않게 됐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등록 임대주택은 160만채였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단기 및 아파트 임대사업자를 폐지한 후 등록 임대주택은 108만채(2020년 4월 기준)로 줄었다. 아파트 등록 임대주택은 2028년이면 모두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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