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약진이 화제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6월 18일 트위터의 한 게시물에 ‘현대차가 꽤 잘하고 있다(Hyundai is doing pretty well)’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의 트윗을 인용해 “머스크가 현대차를 극찬했다”는 기사를 쏟아냈죠.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 25일에는 현대차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날 미 블룸버그통신에 현대차를 다룬 기사가 올라왔는데요, 이 기사를 인용한 뉴스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제목은 ‘유감, 일론 머스크. 현대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지배하는 중(Sorry Elon Musk. Hyundai is Quietly Dominating the EV Race)’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미안, 일론 머스크’로 번역한 곳이 많았죠.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현대차가 전기차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단, 테슬라만 빼면 말이죠.
◇점유율 2위긴 하지만…
최근 나온 두 뉴스만 보면 현대차가 굉장히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전기차 시장 1위 테슬라의 아성을 넘보는 것처럼요. 기사만 보면 점유율 2위인 현대가 조만간 테슬라와 대등한 위치에 오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테슬라는 ‘유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현대차에 위협을 받고 있을까요.
우선 6월 18일 일론 머스크가 답글을 단 트위터 원문에는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2022년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보여주는 방송 화면을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1위는 테슬라로, 점유율은 75.8%에 달했습니다. 2022년 1분기 미국에서 판매된 전기차 4대 중 3대 이상이 테슬라 전기차인 셈이죠. 2위 현대차의 점유율은 9%로, 테슬라의 8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3위는 폴크스바겐(4.6%), 4위는 포드(4.5%)였습니다.
점유율이 8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온라인에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라이벌 현대자동차를 언급하며 극찬한 이유’, ‘테슬라 보고 있나, 현대기아차 미 전기차 2위 소식에 주가 급등’ 등의 제목을 단 기사가 쏟아져 나왔죠. 머스크가 현대차를 ‘칭송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성과를 언론이 침소봉대(針小棒大·바늘처럼 작은 일을 몽둥이처럼 크게 부풀려 허풍을 떠는 모습)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점유율 2위에 테슬라를 위협한다는 소식만 듣고 현대차 주식을 사는 투자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죠.
◇“현대차 칭찬 아닌 바이든 조롱”
일론의 뜻을 언론이 정반대로 해석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은 현대차 칭찬을 내세워 일론이 바이든을 조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일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친노조 성향인 바이든 대통령은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일론 머스크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합니다. 머스크가 얼마 전 경제위기를 예감한다며 직원 감축을 시사하자 바이든은 6월 2일 트위터에 “포드와 GM이 일자리 1만5000개를 만들고, 180억달러가 넘는 투자를 했다”고 적었습니다. 발끈한 머스크는 “테슬라는 5만개 이상의 미국 일자리를 창출했고, GM과 포드를 합친 것보다 2배가 넘는 투자를 하고 있다”고 트윗했죠.
둘 사이가 유치한 감정싸움인 것만은 아닙니다. 바이든의 간판 공약이자 민주당이 도입을 추진 중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을 보면 머스크가 바이든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만합니다. 법안에는 미국 전기차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책이 담겨 있는데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현행 세액공제액 7500달러에 4500달러 혜택을 추가로 주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노조가 있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구매해야 소비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는 것입니다. 포드와 GM에는 노조가 있지만, 테슬라나 리비안에는 노조가 없죠.
그 때문에 일론 머스크는 미 정부가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테슬라는 비난하기만 하고, 포드와 GM만 편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1분기 점유율을 보면 포드는 현대차의 절반 수준인 4.5%고, GM은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현대차를 칭찬한 건, 바이든이 포드와 GM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데도 두 회사의 실적이 별볼일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찢었다, 테슬라만 빼면”
6월 25일 나온 블룸버그 기사도 제대로 읽어봐야 합니다. 이 기사는 현대차의 전기차를 지나치게 띄워줍니다. ‘2022년 초 한국의 자동차 제조사가 내놓은 현대의 아이오닉5와 기아 EV6가 출시되자마자 판매 차트를 찢었다(promptly tore up the sales charts)’면서 닛산의 리프, 쉐보레의 볼트 등 다른 경쟁 전기차 모두를 제쳤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테슬라를 뺀(not made by Tesla)’이라는 문구를 달았습니다. 테슬라는 비교 대상에서 빼놓고, 기사는 ‘일론, 잠깐 쉬어라. 지금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핫한 모델은 현대차에서 나오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테슬라와 현대차의 업력도 비교합니다. 테슬라가 지금 현대차보다 훨씬 많은 전기차를 팔기는 하지만, 테슬라가 10년간 노력해 얻은 성과를 현대차는 불과 몇 달만에 해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2003년 문을 열었고, 현대차는 1967년 설립된 회사입니다. 테슬라가 설립되던 해 현대차는 연간 수출 100만대를 돌파해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죠.
일론 머스크가 태어난 게 1971년입니다. 현대차는 일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동차를 만든 회사입니다. 현대차가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1 4도어를 선보인 1975년 일론의 나이는 4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2022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일론이 만든 테슬라의 8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유감의 시선은 테슬라가 아닌 현대차를 향하는 게 이치에 맞아 보입니다. 물론 현대차가 테슬라를 뛰어넘는 대세가 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더 없이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길 바라기도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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