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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17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5 18:04:30
조회 832 추천 1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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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미묘하게 늦어지는 이유는 세부 디테일에서 난관을 겪고 있어서 그럼(...) 양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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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2)


밖에는 한산했던 것에 비해 안에는 관람 중인 사람이 꽤 있었다. 평일 낮 시간대라 그런지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들 위주였다. 먼저 들어갔던 여자는 벌써 안쪽으로 들어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여기 전부 유리인 건가? 어쩐지 층계가 없다 싶더라니.”


혁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멀리서 볼 땐 2층 건물처럼 보이는 이곳은 층고가 높은 단층 건물이었다. 심지어 외벽뿐 아니라 내벽도 유리로 이뤄져 있는데, 색채 유리 전시라는 이름에 맞게 내부가 비칠 듯 안 비치는 반투명함이 묘한 착시를 일으켰다.


“난 여자 찾으러 갈게. 끝에서 보자.”


“친구 버리고 가냐?”


혁민이 타박하자, 혁수는 씩 웃었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리고 원래 전시는 같이 와서 각자 보는 거야. 그럼 간다.”


혁민은 굳이 혁수를 붙잡지 않았다. 물론 본인도 여자에게 볼일이 있었지만, 막상 또 전시를 보자니 작품들에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첫 구역은 작가 자신의 생애를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주로 투명한 유리에 내부 부속물들을 채운 형식이었는데, 개중엔 사람의 형상에 장기를 채워놓은 그로테스크한 것들도 종종 섞였다.


“…….”


혁민은 총력고 이후로 초자연현상에 빠지면 자력구제가 가능한 것인지 끊임없이 검토했다. 초자연현상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초자연현상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APOF가 대표적이었고, 초자연현상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과학 단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혁민은 그런 것만 믿고 살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헤쳐 나갈 힘과 지혜가 없으면 안 됐다. 그렇기에 혁민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기로 했다.


이런 태도를 주위 사람이 알았을 때 반응은 늘 좋지 않았다. 피곤하게 산다는 말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 것 같냐는 비아냥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러나 남들처럼 살았다면 본인의 인생은 고등학생에서 끝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저거 깜빡이지 않았어?”


“기분 탓이겠지.”


“응?”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작품 쪽이었다. 혁민은 자연스레 이끌려 그곳으로 향하자, 놀라 넘어진 듯한 노부부가 가슴을 추스르며 일어나고 있었고, 혁수가 둘을 부축해주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고마워, 청년.”


“번호 따러 간다더니…….”


혁민은 조용히 혀를 차고 작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목은 ‘시선’이었고, 바닥에서 수직으로 솟아올라 복도 쪽으로 90도 꺾인 파이프 형상의 유리 작품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불투명한 정도가 다르긴 해도 모두 속이 비치는 걸 전제한 다른 작품에 비해 ‘시선’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거울처럼 빛이 반사되어 보였다.


혁민은 무엇이 깜빡였다고 하는지 궁금해 유리 안쪽 구멍에 뭐가 보이나 싶어 자리를 살짝 옮겼다. 그러자 구멍 안쪽에 자리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하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저기요.”


“앗,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혁민은 빠르게 사과하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가 냉큼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들어오기 전에 봤던 그 여자였다. 그러나 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혁민은 사람들을 뚫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트렌치코트를 입은 검은색 장발 여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초자연현상 아니야……?”


혁민은 입으로 뱉어놓고도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초자연현상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피해 다니지 않았을 터였다. 오히려 자기가 붙잡을 때 본인을 으슥한 곳으로 유인한다면 모를까.


혁민은 자기가 상상해놓고도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얼굴을 찌푸렸다.


“저것 봐! 진짜 깜빡였다니까!”


“진짜네! 괜히 오싹해지는데?”


“이야, 진짜 잘 만들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한 번 더 터졌다. 혁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깜빡였다는 말은 ‘시선’의 구멍 속 눈동자를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호기심을 해결한 사람들은 자연히 흩어지고, 노부부를 부축하던 혁수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연스레 ‘시선’ 앞에 남은 건 혁민 한 명뿐이었다.


혁민은 정말로 ‘시선’이 깜빡이는지 확인해볼까 싶었지만, 언제까지 기다릴지도 모르거니와, 묘하게 ‘시선’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을 잠자코 견디기 싫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려던 찰나,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한 건 그 여자였다.


“우왓!”


“여전히 얼빠진 건 여전하구나?”


“……네?”


여자의 왼쪽 눈은 무표정한 감각으로 혁민을 쳐다봤다. 반쪽짜리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혁민은 어쩐지 본인의 속내까지 전부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혁민에게 있어서 생소한 게 아니었다.


“차해경?”


“여긴 어쩐 일이야?”


여자, 곧 해경은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지만, 혁민은 그녀가 해경임을 직감했다. 비록 너무 많은 게 달라져서 목소리가 닮았단 사실을 떠올리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분명히 그녀는 해경이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어?”


“어쩐 일이냐고 먼저 물었잖아.”


혁민은 3년 만에 만난 것치고 목소리에 감정이 절제됐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억제됐다는 느낌보단, 아예 느끼지도 못하기에 나오는 무감각한 대꾸였다.


“대학 동기가 공짜 티켓을 구해다 줬어. 아는 누나한테 받았대.”


“그래?”


“진짜야.”


혁민은 어쩐지 추궁받는 느낌이라 괜스레 목소리가 올라갔다. 해경과 마지막 만남은 그녀와 마지막 데이트였었다. 치기 어렸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이자, 몇 없는 훈훈한 추억으로 남았었는데,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난 해경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봐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답할 차례네.”


“답해줄 의무는 없어.”


해경은 차갑게 대꾸했다. 혁민은 심사가 뒤틀렸다. 원래 이런 애란 걸 알면서도, 웃으며 넘길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오기가 생겼다.


“거기는 아직도 다니고 있는 거야?”


“거기라니?”


“발뺌하지 마. 초자연현상처리반 말이야.”


“아, 그렇지. 공식적으로는 나왔어.”


“나왔다고?”


해경은 코트 안쪽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혁민에게 건네줬다.


‘V.ANK 경기도 지부 차해경 기획팀장’


“반크?”


V.ANK라면 혁민도 잘 아는 동아리였다. 물론 3년 전의 위세에 비하면 대외활동을 줄여나가는 추세라 예전과 같은 위상은 아니라곤 하지만, 여전히 대학 연합 동아리 중에선 비교할 곳이 없는 곳이었다.


“너 대학 갔어?”


“갈 시간이 있어 보여?”


혁민은 해경의 대꾸를 듣자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용은 분명 비꼬는 말인데, 억양은 기계적이었다. 혁민은 점점 자기가 대하는 게 정말 차해경인지, 차해경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다른 무엇인지 헷갈렸다.


“너 정말 차해경 맞아?”


“……할 말 없으면 이만.”


해경은 몸을 돌려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혁민은 굳이 붙잡지 않았다. 정말 차해경이라면 3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겠거니 짐작할 수 있겠지만, 후자라면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결국 혁민은 해경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안심하고 발을 옮길 수 있었다.


그제야 혁민은 혁수가 생각났다. 뭔지 모를 해경에게 번호를 따려고 한다니. 십중팔구 까일 게 분명했다. 아니, 까이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가능성이면 곤란했다. 혁수가 해경을 찾기 전에, 본인이 먼저 혁수를 찾아야 했다.


“음?”


혁민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시선’이 있었다. 혁민은 그 순간 ‘시선’의 구멍 속 눈동자가 정확히 어딜 향하고 있었는지 헷갈렸다. 미묘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혁민은 그 순간 해경이 이곳을 찾아왔단 사실을 상기했다. 그건 하나의 경고였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초자연현상처리반을 나왔다고 하지만, 그 말은 뒤집어 말해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처리반과 협력 중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이곳에 왔는가. 자명한 답을 두고 해경을 찾을 이유는 더 없었다. 혁민은 혁수를 찾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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