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
너는 언다인의 집을 나와 그 노란새가 있었던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워터폴을 좀 더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왔을 때 불상사가 생겨서 제대로 돌아보지 못 했다. 이번에는 언다인이 창으로 공격할 일 같은 것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너가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그 작은 새가 있을 장소였지만, 그냥 앞으로 죽 가보기로 했다. 폭포가 주변에 있는지, 앞으로 나아갈수록 폭포 소리가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살짝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너는 얼굴을 찡그리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는데, 악취의 원인이 눈 앞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물이 고여 흐르고 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었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부서진 자전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냉장고, 먹다 남은 햄버거, 버려진 듯한 마네킹 인형, 여러가지 쓰레기들이 한 데 모여있었다. 주변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폭포에서 쓰레기가 쏟아져나와 생긴 곳인 것 같았다. 쓰레기의 양을 보면 엄청난 악취가 날 것 같았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냄새는 계속 해서 나고 있었으므로 너는 바로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워터폴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지하세계의 쓰레기가 다 여기로 모여. 괴물의 특성 상 썩어버릴 물건이 많지 않아서 냄새가 심하진 않지만, 그래도 찾아오기에 좋은 곳은 아니지.
너는 그대로 뒤돌아서 갈 길을 가려고 했다. 다른 곳을 더 돌아보거나, 아니면 노란 새에게 가서 태워달라고 해야될 것 같았다. 아니면, 저번에 봤던 거슨에게 찾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았고, 씻은 지 좀 되었으니까 워슈아한테 가서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흉악하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인간이……!!"
"엑?"
뒤를 돌아보려고 했으나,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너의 앞으로 뛰쳐나와 있었다. 아까 그 쓰레기 더미 중에 섞여있던 마네킹이었다. 알고 보니 괴물의 일종인 것 같았다. 그런데 너가 뭘 했다고 이렇게 화가 난 목소리로 달려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난 이 인형 안에 사는 유령이다! 지금까지 다른 녀석들이 여기를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었지……."
자기소개부터 하네. 예의바르게도.
"그런데 넌?! 넌 나를 멀리서 쳐다보고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어! 인간! 나를 말도 안 되게 화나게 만들다니!"
"어, 저기 죄송……"
"필요 없어! 필요 없어! 필요 없어! 변명은 필요 없다고! 내 사촌한테도 아무 기억도 안 남을 만큼 재미가 없었다는데 진짜구만! 네 놈의 영혼을 취해서 여기를 빠져나가고 말 테다!"
아니, 미친 건 물고기 하나로 충분했는데 말이야.
갑자기 화난 인형이 날뛰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서 여기저기 휘몰아치고 있었고,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중에 떠다니며 분리되는 화난 인형을 보고 있자니, 너는 무섭거나 당황스럽다기보단, 정신이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언다인과 잘 친해져서 좋은 기분으로 산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불청객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면, 저 화난 인형 입장에서는 너가 불청객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었다. 사촌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그 사촌이 누구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유령이라고 했으므로 그 사촌이 냅스타블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이 너무 달라서 아닌 것 같았다. 기억을 좀 더 더듬자, 토리엘이 폐허를 소개해줄 때 봤던 인형이 기억났다. 날뛰고 있다는 점만 빼면 확실히 비슷하게 생겼다. 서로 사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재미 없었다고 하면 재미 없는 것이긴 한데,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다.
"음, 인형 아저씨. 전 그냥 놀러온 거예요."
"상관 없어! 상관 없어! 상관 없어!"
화난 인형은 이미 몸 전체가 새빨개져서 화가 잔뜩 나 있었고 너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주변에서 작은 인형들이 튀어나오더니, 그 인형에서 마법의 발사체가 튀어나왔다. 너를 향해 날아오는 발사체를 피하긴 했지만, 이런 싸움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잠깐 도와줄까?
"아니, 그냥 샌즈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는 발사체를 피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샌즈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이제 그냥 전화해서 샌즈를 부르면, 이런 작은 소동 정도야 샌즈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뭔 소릴 하는 거냐! 싸우는 와중에도 무관심하다고?!"
어린 애도 피할 수 있는 마법을 날리는 주제에 무슨 관심을 바라는 거야? 다짜고짜 화내면서 공격이나 하고, 미친 놈이 따로 없네. 언다인처럼 말이 통하지도 않을 것 같고 말이야. 이따금 너가 피한 발사체가 날아가다 화난 인형이 대신 맞았다. 진짜 멍청한 인형이다. 최소한 자기도 피하던가. 너가 피한다고 해서 그 마법을 자기가 맞아주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 나는 그런 괴물 본 적 없는데.
너는 샌즈의 번호를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 순간에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야, 바빠 보이네."
"샌즈!"
애초부터 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샌즈가 뒤에서 나타났다. 여전히 웃는 표정 그대로였다.
"저 녀석 화가 많이 난 것 같네. 딴 데로 가자."
"넌 뭐야?!"
"골 때리게 하지 마."
샌즈는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화난 인형을 쳐다본 뒤, 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화난 인형이 무어라 계속 외치면서 마법을 날려댔지만, 이내 마법이나 화난 목소리는 사라지고, 너와 샌즈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언제봐도 신기한 능력이다.
어느새 너와 샌즈는 그릴비네 앞으로 와 있었다.
"이런,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네. 어쩔 수 없지, 한 번 그릴비네에 들러볼까?"
"네!"
분명 의도한 게 틀림 없다. 너와 샌즈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그릴비네로 들어갔다. 이유는 몰라도 예전에 왔을 때와 손님들이 똑같았다. 예전에도 저 괴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예 여기서 사는 것 같았다.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괴물들에게 샌즈는 가벼운 농담을 던져주었고 그 괴물들은 그걸 참 좋아했다. 경비대 일을 하고 있어야 할 개들이 샌즈의 농담을 들으면서 계속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너무 안 하는 것 아닌가?
샌즈와 너는 바에 앉았고, 샌즈가 그릴비에게 눈짓을 하자, 그릴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음식을 만드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눈빛 교환을 잘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샌즈, 제가 도움이 필요한 걸 어떻게 안 거예요?"
"나는 남에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 일을 하는 법을 잘 알고 있거든."
샌즈가 머리를 빗으로 정리하면서 말했다. 너는 그 행위를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인간인 너를 대놓고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 퍼지면, 그다지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거거든. 네 평판이 아직 모든 괴물에게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널 보고 있다고 보면 돼."
그거 스토킹 아냐?
"고마워요. 샌즈는 저한테 정말 잘해주는 것 같아요."
"헤헤, 칭찬은 필요 없어 꼬맹아. 낯 간지러워 물론, 간지러울 피부가 없지만."
너는 샌즈가 언젠가는 정말로 재밌는 말장난을 하는 때가 오리라고 믿으며 그 농담을 참아냈다. 너는 샌즈와 대화할 기회가 온 지금이 여러가지를 물어볼 때라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어보려고 입을 떼었다.
"샌즈, 예전부터 정말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뭐가?"
"스노우딘에서요. 저를 폐허 문 앞으로 데려다주셨을 때 말하신 거요. 제가 이상한 능력이 있다는 걸 눈치챈 건, 그렇다 치고……. 저에게서 지하 세계의 희망이 보인다거나, 제가 온 뒤로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저는 그냥 어린 애일 뿐이고, 이상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전,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이 능력을 쓸 생각이 없어요. 제가 엄청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헤헤, 꼬마야. 바로 그거야."
샌즈의 표정이 아까 전보다 풀어졌다. 눈매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귀여운 아이를 보는 사람처럼 따뜻한 미소도 지어주었다. 샌즈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이런 상황이 익숙치가 않아서, 오히려 샌즈의 반대편을 쳐다보면서 애써 샌즈의 행동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살면서 뼈다귀만 있는 존재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일을 겪을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키 작은 해골은, 조금 적응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그릴비가 샌즈가 주문한 듯한 음식을 들고 주방을 나오고 있었다. 샌즈와 너의 모습을 본 그릴비는 그 자리에서 멈추며 살짝 놀랍다는 몸짓을 취했다. 그릴비까지 그런 식으로 보니, 너는 슬슬 샌즈의 친절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내 샌즈는 너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고 그릴비에게 손짓했다. 빨리 주문한 음식을 달라는 것 같았다. 그릴비는 걸어와서 두 개의 접시를 내놓았다. 하나는 케첩이 잔뜩 뿌려진 햄버거였고, 하나는 달콤하면서 기분좋은 신 냄새가 나는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였다. 지하에 와서 먹은 음식이 핫도그나 파이, 고기 스튜같은 것밖에 없었으므로, 채소는 의외로 반가운 음식이었다.
"내가 예전에 그릴비한테 말해놓았지. 먹어, 꼬마야."
"어, 정말 고마워요."
너는 일단 그 샐러드의 모습과 냄새에 이끌려 그릴비가 준 포크를 잡았다. 양상추나 양배추 같은 기본적인 채소들이 꽉 차 있었고, 너가 본 적이 없는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섞여있었다. 너가 본 적이 없는 바깥의 과일이거나, 아니면 이 지하세계에만 있는 음식인 것 같았다. 포크로 채소와 과일들을 드레싱에 충분히 묻히고 찍은 뒤에 뒤, 입안에 넣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레몬이 들어간 듯한 드레싱 맛은 일품이었다. 너는 샐러드를 먹으면서 그릴비를 쳐다보았는데, 묵묵히 그저 옆에 있던 유리컵을 닦고 있을 뿐이었다. 그릴비는 너를 보고 있지 않았으므로, 너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보단 맛있게 먹는 것이 제일 훌륭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가에 드레싱 소스를 묻혀가며 샐러드를 한 번 더 입에 넣었다. 훌륭한 맛이었다.
"가끔은 이런 음식도 좋지?"
"넹!"
너는 입안에 있는 샐러드를 머금은 채로 대답했다. 바깥에 나가게 된다면, 이 샐러드를 만드는 법을 그릴비에게 알아내고 난 뒤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샌즈도 자신의 햄버거를 먹고 있었는데, 케찹이 자기 손에 묻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너는 샐러드를 계속 먹으려고 하다가, 아직 샌즈와의 대화를 제대로 끝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포크를 손에서 놓고 말했다.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바로 그거라니요?"
"만약, 정말 나쁜 인간이 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어땠을까 꼬마야?"
샌즈는 씹고 있던 햄버거를 삼키면서 말했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면서 숨을 고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 예를 한 번 봤지. 인간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나쁜 녀석이 그 힘을 가지고 있던 걸 말이야."
"플라위……."
……
"나는 정확히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 그런 짓을 한 게 그 말하는 황금꽃……, 아스리엘 왕자라는 걸 안 것도 너가 온 뒤지. 하지만, 누군가가 시간을 되돌리고, 세계를 리셋하는 짓을 끊임없이 반복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어. 시간선이 충돌하고 뒤죽박죽되어서……, 정말 희망이 없었지. 어떻게든 방법은 찾을 수 있었어.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게 지하세계 내의 괴물 짓이라면, 그 괴물도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인간의 영혼을 모으는 일을 도왔어. 그래서, 초소를 어떻게든 지키고 있는 거고 말이야. 제대로 하진 않지만. 뭐, 그래서 내가 너를 제일 먼저 발견했잖아?"
"네……?"
이야기가 살짝 이상하게 들리는데?
"그렇다면 왜 저를 잡지 않으셨어요? 제가 마지막 인간이고, 샌즈가 결계를 부수길 원했다면 저를 잡아갔을 텐데요."
"그건 말이지……. 내가 약속을 하나 했거든."
"약속이요?"
"스노우딘 숲 가장 안쪽에 있는 문, 그 너머에서 한 여자가 부탁했어. 같이 노크 농담을 나누다가 굉장히 친해졌었는데 말이야. 그 여자가 나에게 부탁을 하더라고. 여기서 인간이 나오게 되면, 그 인간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지."
너는 그 여자가 곧 토리엘이란 것을 바로 눈치챘다. 너가 처음 지하에 떨어졌을 때, 잠깐 너를 두고 집으로 돌아간 사이에 샌즈에게 말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너가 문을 나서자마자 샌즈가 나타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 사실을 들은 너는 왠지 씁쓸해졌다. 애초부터 토리엘은 너가 폐허를 떠날 것을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널 붙잡으라고 했던 것이었다.
"난, 약속을 싫어해. 뭘 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그런 상태에서 약속한다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거든.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마다하다니, 말이 안 되지. 하지만, 나와 농담을 나눌 줄 아는 최고의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줄 순 없었지."
"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약속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꼬마야."
너는 샐러드를 포크로 찔러 입에 가득 넣고 씹으면서 샌즈를 쳐다봤다. 미묘하게 웃는 표정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있는 표정이었다. 다음 샌즈가 할 말이 예상되어서 너는 입에 샐러드를 앙 문 채로 말했다.
"주허헤죠??"
"헤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샐러드 이거 꽤 맛있을 것 같은데. 나도 먹고 싶다.
"그럼 너도 먹어!"
"응? 나?"
순간, 프리스크가 나에게 몸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너의 손이 나의 손이 되고……, 에라이, 샐러드나 먹어야지.
"샌즈 말고, 저요. 꽤 맛있어 보이거든요, 이거."
"그런 식으로 바꿔치기하는 거냐……."
"바꿔치기라뇨! 잠깐 빌리는 거죠."
나는 프리스크가 먹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찍고서 입안에 가득 물었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고기 같은 게 없어도 부족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접시 한 구석에 모여있는 과일을 찍어서 또 입안에 넣었다.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맛이 배어 나오는 과육이 입 안을 또다시 적셨다. 프리스크가 맛 보는 걸 대신 느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더 실감이 난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새, 나는 샐러드를 모두 다 먹었고, 샌즈도 손에 집고 있던 햄버거를 모두 다 먹었다. 샌즈는 바 위에 올려져 있던 티슈를 꺼내서, 자신의 뼈다귀 손에 묻은 케찹을 닦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손에 묻은 건 다 빨아먹고 있네. 그걸 굳이 다 먹어야 할까 싶었다. 케찹이 그렇게 좋나?
샌즈는 티슈로 자기 손을 닦는 대신에, 내 입가에 묻은 드레싱 소스를 닦아주었다. 서투른 솜씨였기 때문에, 그냥 티슈를 주고 닦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일단 샌즈가 닦아주고 있었으므로 그냥 난 가만히 있었다. 아, 잊고 있었네. 프리스크, 나 샐러드 다 먹었어.
"으브븝, 샌즈!"
"응?"
"아직 끝까지 말을 안 했잖아요. 나쁜 사람한테 이 힘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고, 제가 이 힘을 나쁘게 쓰지 않을 거란 것도 당연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에 희망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제가 집에 가는 거랑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는 거예요?"
"헤, 꼬마야. 그건 너에게 달렸지. 그래서 확신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하는 거야.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일단 너 덕분에 시간의 불연속성이 사라졌어. 그 사실만으로도 난 안도할 수 있는 거야. 기대하고 있는 건 있지. 하지만, 이건 막연한 기대야. 어쩌면, 너에게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막연한 기대."
"시간이요? 불연속성이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약속을 지킬 거고, 너를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거야. 그 정도만 알아둬, 꼬마."
샌즈는 그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너도 샌즈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샌즈가 그릴비에게 외상으로 달아두라는 말을 하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너는 그릴비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샌즈를 따라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의 말이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잘하셨습니다."
너는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릴비가 유리컵을 닦기를 멈추고 너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샌즈가 저렇게 기분 좋은 건 본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항상 안 좋다고 봐야 했죠."
"네?"
"샌즈는 항상 재밌는 농담을 하고, 파피루스를 위해 여러가지를 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활기찬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웃긴 해골이지만, 즐거운 해골은 아니었죠. 하지만, 요즘엔 달라 보이네요. 당신 덕분입니다. 제 기분도 꽤 괜찮아지네요."
그릴비의 화염이 살짝 더 밝아지며 불타올랐다. 감사의 표시인 것 같았다. 너는 멋쩍어서 아무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자, 그릴비는 고개를 약간 꾸벅이며 인사의 표시를 하고 나선, 다시 유리컵을 닦기 시작했다. 너는 뒤돌아서 그릴비네를 나가려는 샌즈를 재빠르게 따라갔다. 뒤편에서, '와, 나 그릴비가 말하는 거 처음 봐.'라고 말하는 다른 괴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칭찬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더 좋아졌다.
샌즈의 발걸음을 따라잡고, 너는 샌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너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살짝 피곤하다고 느꼈다. 샌즈의 집에서 조금 쉬었다가 여정을 계속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다.
"어, 꼬마야. 뭔가 내 집이 시끄러운 것 같지 않아?"
샌즈가 자기 집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샌즈가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했고, 너도 샌즈의 발걸음에 맞춰 빠르게 달려갔다. 확실히, 샌즈의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파피루스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는데, 굉장히 기쁜듯한 목소리였다. 이윽고 샌즈의 집 앞에 도착하고 샌즈가 집 문을 열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와, 샌즈! 우리 애완돌이 날아다니면서 말을 하고 있어!"
"이 빌어먹을 인간이랑 망할 뼈다귀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제기랄! 감히 날 버리고 도망을 쳐! 유령의 정보력을 무시하는 거냐?! 네놈이 어디서 사는지도 모를 것 같아?!"
이게 뭐야.
파피루스는 감격한 듯, 설탕이 뿌려진 채로 날아다니는 돌을 보면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돌은, 아니, 애완돌은 엄청 화가 난듯 집 안을 미친듯이 날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뭐야, 방금 그 미친 인형인가?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꼬마야."
"신기해요……."
"거기 있었군! 둘이서 뭐라 쫑알거리는 거냐! 날 무시하고 도망치다니. 괘씸해! 괘씸해! 괘씸해! 인형보다 훨씬 위협적인 이 짱돌로 너희들의 몸을 박살 내고 영혼을 취하고 말겠어!"
화난 애완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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