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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위로 그리고 격려

이응(119.204) 2020.02.23 0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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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그리고 격려




상황보고를 하러 간다는 시진을 따라 본진에 온 모연은 고반장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어.


“마지막 순간에 제가 같이 있었습니다. 사모님께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혼자, 너무 오래 계시지 마시라고…….”


생존소식이든 사망소식이든 피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그의 아내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게 그녀로서도 끔찍하고 죄스러웠지만 해야만 했어.

고반장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남겨질 가족만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기억에서 단 1초라도 덜 흐려졌을 때 그의 유언을, 전언을 전해줘야만 했어.


눈물을 참으며 고반장이 전한 당부의 말을 전하는 모연의 뒷모습에서 시진은 시선을 떼지 못해.

이 일이 그녀에게 너무 심한 상처가 된 게 아닐까 마음이 아프고, 그 판단을 강요한 것이 못내 미안해서.


시진은 모연이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데 어떤 최선도 아끼지 않는 아주 훌륭한 의사라는 걸 알아.

그런데 죽은 고반장은 모연에게 의사로서 살려볼 노력조차 하지 못한 생명이지.

다른 생명 하나를 고반장의 희생으로 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것보다 모연에게 중요한건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야.


모연에게 고반장은 큰 죄책감으로 남았어.

거기에 더해 남편을 잃은 고반장의 아내에게 직접 죽은 남편의 유언을 전하는 것은 더욱 그녀를 죄스럽게 했어.


시진이 상황 보고 회의를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모연은 내내 울고 있었어.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발걸음 소리에 급하게 눈물을 닦아내 보지만 소용이 없지.

시진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연이 너무 가슴 아프고, 그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데 무력감을 느꼈어.


“보지 마세요. 여긴 어디 으슥한데 없어요?”
“보통은 남자가 하는 멘튼데. 그럼 어디 한번 최선을 다해 으슥해볼까요?”


나름대로 자신이 괜찮다고 의사표시를 하는 건지, 농담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는 그녀에게 시진은 제대로 된 농담을 건넸어.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진심어린 위로를 해.


“잘 했어요, 오늘.”


그런데 오히려 그 말에 멈추는가 싶던 모연의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어.

엄마가 울지 마, 울지 마 달래면 더 울음이 터뜨리는 어린아이처럼 시진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눈물이 모연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


“뭐 대답을 들어야 눈물이라도 닦아주지…….”


그걸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진의 가슴이 타들어만 갔어.

어떻게든 모연의 눈물을 말려주고 싶은데 그는 그녀에게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해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자격도 없는 거야.


시진은 아직 모연의 볼에 손을 대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연을 얼굴이 안보이게 안고 달래줄 수도 없어.


“잠깐 나 봐요.”
“와……. 너무 뻔뻔하네. 땅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모연을 위로할 방법을 밤하늘의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에서 찾은 시진은 모연에게 밤하늘을 가리켜 보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름다운 밤하늘에 대한 탄성이 아니라 땅의 비극은 아랑곳없이 홀로 찬란한 하늘을 향한 원망이었어.

모연은 빛나는 것보다 어두운 곳을 항상 더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


“위로가 될 줄 알았더니.”


별빛 가득한 밤하늘로도 위로할 수 없는 여자라 어렵지만, 그래도 그녀가 눈물을 멈추어 주어서 시진은 참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들려온 모연의 목소리는 그를 놀래기에 충분했지.


“위로 이미 받았는데, 대위님한테.”


시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아.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가 제대로 들었나.


시진이 모연의 눈동자를 정확히 보는데.


“돌아와 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대위님 없었으면 전 아마 도망갔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있어서 해낼 수 있었다고, 당신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위로였다고 모연은 말하고 있었어.


그녀가 받았다는 시진의 위로는 어떤 것이었을까?

시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연에게 건넨 위로라는 건 무엇이었을까?


지진이 일어나고 모연은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서 끔찍한 지진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했어.

현장은 정말 참혹했지.


바로 어제까지도 그녀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웃던 발전소 직원들은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장기가 터지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나오기도 했어.

아무리 8년간 의사로 살아온 모연이지만 그녀가 이제껏 병원에서 치료한 환자들과 발전소직원들은 달랐어.


모연은 바로 전날까지도 평화롭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어.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그들이 생생히 살아있는 걸 느꼈지.

이제껏 병원에 실려 들어온 환자들과는 그 시작점이 달랐던 거야.


의사들은 친인척이나 지인의 수술을 할 때는 그 수술장에 들어갈 수 없어.

그들을 수술하기에는 그 심적 부담감이 너무 크고 수술 중 냉정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료 의사한테 맡기고 한 발 물러서 있지.

그런데 지진 현장에서는 그럴 수도 없었어.

모든 의사가 투입되어도 손이 모자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의료팀 책임자로서 모연을 짓누르는 부담은 더 없이 컸어.

현장 이곳저곳에서 하고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찾았어.

그 부름에 발에 땀나게 현장을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해 봐도 사람들은 속수무책 죽어갔어.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든 시간들이었지.


막내 간호사 민지가 무서워 죽을 것 같다며 울 때, 치훈이 의사 인생 처음으로 사망선고를 내리며 오열할 때, 그들과 함께 모연도 울어버리고만 싶었어.

하지만 그녀는 그들과 또 달라야 했지.

의료팀을 책임지는 팀장으로서 그들까지 모두 다독여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강단 있게 굴어야했어.


그 다짐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없이 외고 또 외는 동안 모연은 점점 지쳐갔어.

결국 정말 다 포기하고 도망가 버릴까 싶도록 숨이 막히게 모연의 어깨가 부담감에 짓눌려갈 즈음 시진이 헬기를 타고 나타난 거야.


모연과 부담을 나누어 져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가 지쳐나가 떨어질 만큼 힘들어할 때 타이밍도 완벽하게 나타났어.

그 사람이 바로 유시진이었어.


하지만 나타난 사람이 단순히 구조팀 지휘관이기만 했다면 모연도 아 지원이 왔구나, 다행이다 정도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으로 끝났을 거야.

하지만 유시진은 강모연에게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어.


가장 큰 공포에 직면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시진이었다. 모연은 생각지도 못한 자기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당황스러웠다.(중략)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특전대원들이 프로펠러 먼지바람 속을 뚫고 씩씩하게 다가왔다. 모연의 몸에서 긴장이 확 풀리면서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녀의 시선으로 시진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너무나 정신없어서 깨닫지 못했을 뿐, 자신이 내내 시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환자의 손목에 검은 비표를 걸 때마다, 사망 진단을 내릴 때마다, 그렇게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그녀의 무의식은 시진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태양의 후예 1권 中-


그때 모연은 이미 위로받은 거야.

저 멀리서도 그녀만 바라보고 서있는 그 눈동자를 보면서.

모연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그가 안도하는 것도 잠시, 그녀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초조한 눈으로 하염없이 그녀를 쓸어내리던 시진의 눈동자와 눈을 맞추면서 모연은 충분히 위로받고 격려 받은 거야.


아, 당신이 나를 많이도 걱정했구나. 내가 당신을 찾고 있는 동안에 당신도 나를 이토록 찾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의 앞으로 정렬하는 군인들 사이로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빼앗겨 있는 동안 내가 저 남자를 이토록 그리워했구나, 깨달았지.


수십 사람들 속에서 그녀만을 찾던 그의 눈동자와 그녀의 신발끈을 동여매주던 그 손길, 그리고……


-안 다쳤으면 했는데…….


그녀의 상처에서 좀체 떼지 못하던 그의 눈길에,


-내내 후회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얼굴 안 보고 간 거.


상처받았던 그날 아침까지도 다독이는 그 말에, 그 모든 것에 모연은 빠짐없이 위로받고 격려 받았어.


그때에 이미 당신은 나를 충분히 위로했다는 모연의 말을 들은 시진은 가슴이 벅차올랐어.

그 순간은 그에게만 소중하게 남은 것이 아니었어.

그와 그녀, 둘 다의 가슴에 새겨졌던 거야.


이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모연의 젖은 눈을 시진은 하염없이 들여다보았어.



당신이 아직 내게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다행을 느끼고,
점점 당신이 나에게 오고 있는 중이라는 걸 느끼며…….







이어지는 글 : 그대 내게 다시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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