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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볼 수 없는 당신 얼굴

이응(119.204) 2020.03.11 21: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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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는 당신 얼굴




적막만 흐르는 헬기 안.

두 남녀는 멍하니 앞만 바라볼 뿐 한순간도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하지 않아.


마침내 저물어가는 끔찍한 밤에 대한 안도를 나누지도, 힘들었을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지도 않은 채로 각자의 세계에 잠겨있는 사람들처럼 두 사람은 고요 속을 걷고 있어.
헬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단단히 모연을 안고 있던 팔은 멀어진지 오래고, 모연은 그의 품을 파고들지 않아.
오롯이 혼자이길 바라는 것처럼, 마치 서로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때 시진의 헤드폰으로 무전이 들어오고, 모연은 그의 응답소리에 돌아보았어.


무전을 치는 그의 방탄복에 박힌 총알이 보였어.

아구스의 총 앞에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 맞은 총알자국이었지.


방탄복에 박힌 총알은 그때 그 상황으로 모연을 데려갔어.


-이건 잊어요.


그리고 울린 아홉 발의 총성.

그녀의 눈을 가린 그 손 사이로 보이던 얼굴.


울고 있었어.


시진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그의 우상이었던, 그리고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남자에게 아홉 발의 총탄을 쏘았어.


누군가의 총으로부터 그녀를 지킨 남자는 그러기 위해 그 누군가를 총으로 쏘아 죽였어.

다름 아닌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모연이 받은 충격은 저승문턱을 밟았다가 돌아왔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야.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봤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사람이 죽었어.

그 사람이 악인이었건 아니건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그녀는 처음 보았지.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눈물도 나오지 않아.

그저 멍하게 머릿속을 비우고 있는 거야.

입력 신호가 들어오지 않는 정지된 기계처럼 그냥 멈춰있는 거지.


시진이 사람을 죽이는 걸 봤다고 해서 그를 거리끼는 것도, 그가 무서운 것도 아니야.

그녀는 그냥 오늘 받은 충격을 모두 소화해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거야.


시진이라고 해서 다를까?
시진은 이제껏 자신이 무척 오만했다는 것을 오늘 뼈저리게 깨달았어.

그가 간과한 거야. 그에겐 적이 아주 많다는 것을.

적들은 언제나 그의 목덜미를 물기 위해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던 거지.


이제까지 그는 혼자였어.

그는 이제껏 주변인의 목숨을 저당 잡혀본 적이 없었어.

위험을 당해도 혼자 당했고, 위기를 넘겨도 혼자 넘겼지.

도움을 주고받는 전우들이 있다 해도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몸은 알아서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


그는 조국의 명령이 스스로의 생명보다 우선이었고, 그래서 두려울 것이 없었어.

그랬기 때문에 상황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고 똑바로 서서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가 유능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던 걸지도…….


사랑하는 여자의 목숨을 담보로 놓고서야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어.


착각한 거야.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다치지 않게 소중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오만에 대한 대가를 그는 오늘 아주 호되게 치러야만 했어.

그가 방심한 탓에 모연이 납치되었고 죽을 뻔했지.


그녀가 그의 연인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어.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서 그는 모연의 입술 상처를 닦아줄 수도, 그녀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어.

앞만 바라본 채 그녀의 눈을 피하는 수밖에.


오늘 그녀가 보는 앞에서 시진은 처음으로 알파팀의 일을 했어.

그녀에게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전부 보이고 말았지.


모연이 그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저 막연히 들어 아는 것과 그 상황에 목숨을 위협받는 인질이 되어 직접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


그는 조금 전 그녀의 앞에서 사람을 죽였어.

놈을 멈출 방법이 그것뿐이었지만, 그랬대도 방금 사람을 죽인 손으로 그녀를 만질 수는 없잖아.


모연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진은 도저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어.


무전 너머로 들려오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그는 늘 그랬듯, 수십 수백 번 했던 임무 종료를 보고했어.


“임무 마치고 복귀 중입니다. 타겟은 사살, 인질은 무사합니다. 무장해제하고 영내 대기하겠습니다.”


일견 무감하게도, 건조하게도 들리는 시진의 목소리는 곧이어 결코 아니기를 바랐던 사실 하나를 꺼내놨어.


“어떤 징계도 달게 받겠습니다.”
“…….”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도 뚫고 그의 목소리는 모연에게 전해졌어.


징계.

그 말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또 한 번 시진이 조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뜻이었어.

그는 군의 명령을 받아 그녀를 구하러 온 게 아니었던 거지.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는 저 남자가 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죽음을 넘나들었는지 모연은 셀 수가 없어.


30초 후면 터질 폭탄조끼를 입고 흐느끼던 자신을 꼭 안아주던 품.

정말 폭탄이 터졌으면 어쩌려고 그녀를 두고 가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 건지 모연은 아득해져.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미소 짓던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당신은 정말 30초 안에 해결할 자신이 있었던 걸까?


짐작해 보건데 만약 우근이 실패했다면 마지막 순간 그는 우근에게 가장 가까운 창밖으로 뛰어내리라고 했을 거야.

그렇게 해서라도 현장을 벗어나라고 했겠지.

따르려하지 않았을 충직한 부하에게 단호하게 명령했을 거야.


그리고 정작 그는 모연의 옆에 남았겠지.
폭탄조끼를 입고 있는 그녀를 품에 안고 함께 죽었을 테지.

그것까지 전부 각오하고 나선 작전이니까.


작전을 나갈 때에 하는 각오는 언제나 같았어.

죽을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을 맞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단독작전도 마찬가지였어.


그는 처음부터 이 작전의 끝이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가 아무리 날고 기는 알파팀 팀장이래도 총 몇 자루와 최루탄만 가지고 어떤 백업도 없이 한 무리의 갱단을 단신으로 뚫는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어.


가능하다해도 그 과정을 거쳐 붙잡힌 모연에게 도달할 때엔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후였겠지.

그런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적어도 그녀를 혼자 보내지는 않는 일 정도였을 거고.


그는 최소한 그것까지는 할 수 있기를 바랐어.

모연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는 것. 마지막 순간에는 그가 그 옆에 있어줄 수 있기를…….


그래서 중대를 나오기 전에 대영에게 인사를 전한 거야. 못 보고 가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친우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고 떠나온 거야.


그래서 폭탄을 눈앞에 두고도 웃을 수가 있었어.

우근 없이 그 혼자 폭탄조끼를 입은 그녀를 만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었으니까.

기적처럼 전우들은 그를 찾아와주었고 덕분에 그는 모연을 구할 기회를 맥없이 놓치지는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가 각오했던 최악보다 두 걸음은 더 멀어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모연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던 그 모든 것이 정작 그녀에게는 다 미안함으로 다가올 뿐이야.


왜 매번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는데 왜 토해내지 않고 속으로만 삼키는지 모연은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나에게 숨겨왔을까.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나에게 숨겨야할까.

말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당신에게 앞으로도 나는 과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기다릴 수 있을까.
내가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를 원하지 않아서 시선을 피했던 게 아니야.

무서웠던 거야.

내가 저 사람을 품에 안아도 되는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당신을 사랑해도 되는지…….


* * *


이튿날, 모연은 중대 뒤 언덕에서 시진과 마주섰어.


저 멀리 들려오던 아침군가 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그들 사이에는 시진의 군홧발 아래에서 사각대는 모래알 소리만 들렸어.


“……다친 덴 어때요?”


차마 더 다가오지 못하고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멈춰선 시진은 머뭇대다 안부를 물었어.

그 질문에 모연은 질문으로 답을 했어.


“어젠 정신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파티마는…….”
“괜찮아요. 본진 의무대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다행히 경과는 좋을 거랍니다.”
“……진짜예요?”
“무슨 뜻입니까.”


그의 대답은 ‘진짜’였어.

수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이번만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실이었어.

하지만 정작 모연은 그걸 믿을 수가 없게 되었지.


대체로 그의 말을 믿어주던 그녀였지만 이제 와서는 그럴 수가 없게 됐어.

간밤의 일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지.


그가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감추기 위해 둘러대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 그녀는 멈출 수가 없어.


그래서 물었어.

진짜냐고.

알아야 했으니까.


“나한테 거짓말을 자주 하는 것 같아서요.”
“…….”


지친 걸지도 모르지, 그의 거짓말에 속는 것에.

아니, 그것보다도 거짓말하는 그를 탓할 수가 없다는 데에 지친 걸지도.


모연의 어조는 이미 충분히 실망한 사람의 그것이었어.


“도깨비마을 아이들 잘 인계했다면서요. 근데 그 아이들 다 거기 있던데.”


거짓말이 들통 난 사람치고 시진은 퍽 담담했어.

당황하지도 눈을 피하지도 않았지.


그는 모연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어.


-어쩌다 다친 거예요?
-부대에서 삽질하다가.


-괜찮아요? 다친 사람은 없어요?
-단순 교통사고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본진에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요.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 바로 이 순간까지 그는 거짓말을 했어.

그의 거짓말은 그녀에게 들킨 것도 있었고, 들키지 않고 넘겼던 것도 있었지.

되새겨 보건데 그때마다 그는 지금처럼 고요했어.


-이상한 부대네요. 삽질하다 총도 맞고. 이건 총상이잖아요.


-본진에 일 있다는 거 거짓말이었죠. 철물점에서 내가 들었던 총소리, 그거 유시진씨죠.


거짓말을 할 때에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들켜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눈빛을 했어.

거짓말을 들킨 바로 다음 순간에도 그는 무연하게 그녀를 보았어.

바로 지금처럼…….


“거짓말한 건 미안합니다. 괜한 걱정할까봐 그랬습니다.”
“그래서 또 어떤 거짓말을 했나요, 나한테. 내가 괜한 걱정할까봐.”


자신이 했던 거짓말들이 하나하나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시진은 망설임 끝에 또 한 번의 거짓말을 해.


“다른 거짓말은 없었습니다.”
“……거짓말.”


왜 몰랐을까.

모르고 싶었던가?

당신이 나에게 진실보다 거짓을 더 많이 말한다는 걸 외면하고 싶었나?


시진의 굳은 눈빛은 예전이라면 정말로 믿었을 만큼 단단했어.

그래서 모연은 그가 더 원망스럽고 슬펐어.


이제까지 당신은 나에게 이런 식의 거짓말을 계속해서 해왔겠구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였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과연 진짜는 얼마나 될까.


끝내 거짓만을 말하고 있는 시진도, 그녀가 그의 거짓말에 상처입고 있음을 알아.


그녀가 안다는 걸 알면서도 시진은 거짓말을 그만둘 수가 없어.

그는 말할 수 없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

그걸 감추려면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가 아는 방법이라곤 그것뿐이라서.


모연도 이제야 알겠어.

그녀가 묻는 게 많아질수록, 그가 해야 할 거짓말 또한 많아진다는 걸…….


그가 하는 거짓말은 그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야.

정말 말할 수 없는, 말해서는 안 되는, 말하는 게 허락되지 않는 그런 일들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왜 말해주지 않느냐, 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느냐 따질 수도 없고, 거짓말 하는 그를 탓할 수도 없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가 진실을 답해주길 바라며 묻고 또 물을까?

아니면 그에게 답을 구하던 모든 것들을 그저 없던 일처럼 덮어둘까?


모연은 둘 다 할 수 없어.

그가 절대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질문을 계속 할 수도, 그의 거짓말만 믿으며 모든 걸 덮어둘 수도 없어.


그녀가 그와 나누고 싶은 건 대단한 게 아니야.

그냥 서로에게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묻고 답을 듣는 거, 그런 거야.


나를 언제 쏴죽일지 모를 범죄자에게 납치를 당하고, 시한폭탄이 금방이라도 터질까봐 너무 무서웠다는 그런 말 말고, 아침에 세수하는데 갑자기 화장실 전구가 나가서 깜짝 놀랐고, 어제 본 공포영화가 무서웠다고 말하는 그런 것에 불과하길 바랄 뿐이야.


하지만 유시진은 그녀가 원하는 사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지.

그런 일상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들 사이의 문제는 그들의 신념의 차이도, 시진의 죽음도 아니었어.

그보다 먼저가 있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거야.


“앞으로도 당신은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농담할 거고, 난 믿지 못할 거고, 그러다 우리 사이엔 할 얘기가 없어지겠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들.

한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데 다른 한 쪽은 거짓말을 하지.


거짓만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 사이에 가짜가 숨어있는 건 온통 가짜뿐인 것보다 때로는 더 잔인해.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전부 믿지 않기엔 분명 상대는 진심을 말할 때가 있고, 그렇다고 그 진심을 믿자고 다른 것까지 전부 믿기엔 진실 사이에 숨은 거짓이 너무 커.


묻지도 답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어.

그럼 입을 다무는 수밖에…….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유시진은 저 멀리에 있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에게 갈 수 있는지 서성이는 모연의 맨발은 뿌려진 거짓말조각에 피투성이가 되고 있어.


시진은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이 아플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외마디 비명처럼 속마음을 토해냈어.


“얘기해요. 난 당신이 하는 모든 말들이 중요해.”


울 자격도 없는 남자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어.

말해달라고, 듣고 싶다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들을 내가 듣겠다고.


시진은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들어줄 수 있어.

아니, 듣고 싶어.


오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내일은 무슨 일을 할 건지, 그녀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알고 싶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어제 밤에 잠은 잘 잤는지, 오늘 아침은 맛있게 먹었는지…….


그게 아무리 사소하대도 좋아.

작디작은 사소한 일이어도 그것을 들을 수 있고 물어봐도 되는 존재가 바로 그녀의 연인이었으니까.


그녀의 남자가 돼서 가장 사소하고 그래서 아무나 물어보면 안 되는 그녀의 개인적인 일상에 한 부분이 되고 싶었어.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바랐어.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인 마음이었던 거야.

그런 마음이 어떻게 그 혼자만의 것이겠어.

그가 모연을 사랑해서 그녀의 모든 것이 알고 싶듯 그녀 또한 그럴 텐데.


아무 것도 말해줄 게 없으면서 묻기만 하는 건 공평하지 못해.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모연이 버틸 수 있을까?

시진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 감고, 귀 막고, 모른척하면서 두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까?


“알아요. 믿는데, 근데, 총알을 몸으로 막아서는 사람에게 그런 얘길 할 순 없어요.”


일상과 비일상.

그 간극을 한 사람의 사소한 이야기만으로 채운다는 게 가능할까?

상대에게 아무 질문도 못하는데 그 사람과 살아가는 게 과연 행복할까?

그 대답은 아니.


“나랑 헤어지고 싶습니까?”


시진은 이를 악물고 물었어.

끝일까봐 무서워서, 이대로 못 보게 되는 걸까봐 두려워서…….


그는 언제나 그녀를 쥔 손에 힘 조절을 해야 했어.

욕심껏 꽉 붙잡아본 적이 없었지.

언제든 그녀가 밀어내면 밀려나 주어야 했거든.


어렵게 마주잡은 손이 믿기 힘들만큼 행복했고 그래서 가까이 끌어당겨 실컷 품 안에 안고 배부르게 그 숨을 삼키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어.

꼭 안고 그 머리칼에 볼을 부비면 정말 미치도록 행복할 것 같았는데 차마 못했어.


분명 모연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그 자신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숨긴 진실들을 그녀가 알게 되면 그녀의 고백이 사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가 오면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걸 시진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녀에게 애원하면 안 된다는 알면서도 붙잡고 싶어서 물었어.

헤어져달라는 거냐고, 나 이제 안 볼 거냐고.
흐르려는 눈물을 붙잡고 주먹이 부서져라 쥔 채로…….


매번 그렇게 물었어.

콘크리트에 깔려 죽을 뻔한 자신을 원망하는 그녀에게 한국으로 갈 거냐고 물었고, 고백하는 거라는 그녀에게 키스하고도 혹시 실수했나 싶었고, 지금도 손닿는 거리에서 울고 있는 그녀의 눈물도 못 닦아주고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물어야만 해.


가겠다고 하면 보내줘야 했으니까.

헤어져달라고 하면 놓아줘야 했으니까.


안 간다, 옆에 있을 거다, 헤어지기 싫다는 대답을 들어야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줄 수 있어.

그 대답이 없으면 그는 그녀를 안을 자격이 없어.


가지 말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헤어지기 싫다고 하면 강모연은 착해서 그래줄 거야.

그녀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당장은 붙잡을 수 있어.

행복하겠지.

미치도록, 숨 막히도록 행복할 거야.


근데 그 다음엔?

점점 시들고 말라붙어서 결국 깨지고 부서질 텐데 그걸 지켜보라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맞나, 하는 생각?”
“…….”


그가 그녀의 옆에 있으려면 그녀가 감수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그걸 전부 감당해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잖아.

그래서 돌아서는 모연을 잡을 수가 없는 거야.


모연이 그를 두고 가버리는데 그는 할 수 있는 게 남겨진 자리에 못 박혀 서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


그 야속한 걸음을 돌이키라고, 뒤돌아 다시 내게로 걸어오라고…….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이어지는 글 : 당신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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