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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당신의 죄악을 막기 위하여

이응(119.204) 2020.03.01 23: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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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죄악을 막기 위하여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도 잠시였을 뿐 두 사람이 주유소에서 만난 건 홍역에 걸린 아이였어.

아이는 고열로 벌게진 얼굴에 반점투성이인 몸을 하고는 약을 훔치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곧바로 아픈 아이를 데리고 아이가 사는 마을로 향했어.


이윽고 도착한 마을은 시진에게도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던 곳이었어.

물론 그가 모우루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도착한 마을은 보고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평범해 보이지 않았지.

아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어. 부모는 보이질 않고 노인만 가득했지.


내전을 거쳤는데도 이렇게 아이들이 많이 사는 특이한 마을이라면 유엔을 거쳐 한국 파병 부대에도 보고되었을 거고 블랙키 마을처럼 마땅히 시진의 중대에서 지원이 나왔을 텐데 그렇지가 않았어.


“빅보스 송신. 마을에 도착했다. 현재 위치 GPS좌표 확인 바람.”


중대에 지원요청을 보냈지만 너무 외진 곳에 있는 탓인지 무전조차도 불량했어.


마을은 여러 가지가 수상했어.

어른들이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마을 밖에 나가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봐도 아이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거야.


두 사람이 차 주변에 몰려들어 수런대는 아이들을 헤치고 마을 한 쪽의 너덜너덜한 천막으로 다가가보니 비나 막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그 아래에 홍역에 걸린 아이들을 눕혀놓고 몇몇 아이들끼리 간호를 하고 있었어.


보면 볼수록 시진의 눈에는 이상한 것들 투성이야.

아픈 아이들만 남겨놓고 마을 어른들 모두가 자리를 비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아이들은 모연의 영어에도 못 알아들을 리가 없는 시진의 현지어에도 묵묵부답 고개만 저었어.


“못 알아듣나 봐요. 홍역이 확실한데 어쩌죠? 마을 아이들 전부 모아서 검사해야하는데.”


모연은 눈앞에 누운 아픈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느라 마을이 어딘가 많이 수상하다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어.

시진의 등 뒤가 점점 서늘해지는데 그때 또렷한 영어가 들려 왔어.


“/외부 사람하고 말하면 삼일을 굶어야 되거든./”
“아, 다행이다. 쟤는 영어를 하네요.”
“/넌 우리랑 말해도 괜찮아?/”
“/난 이제 상관없어./”


장미처럼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딘가 많이 비틀려 있었어.

소녀의 말에서도 아주 좋지 않은 느낌이 풍겼지.


외부인과 말을 하면 삼일을 굶어야 한다.


너무 이상한 말이야.

어떤 부모가 아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했다고 밥을 굶기겠어.

하물며 자기는 이제 그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더 이상했어.


“/마을 아이들 좀 다 불러 모아줄래? 이 아이들, 홍역에 걸렸어. 홍역은 아주 무서운 전염병이야.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열 명 중에 일곱은 죽거나 불구가 될 거야./”


모연은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줄 수 있겠다는 기쁜 마음에 그 묘한 말을 알아채지 못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소녀를 그저 반가워했지만 시진은 소녀의 슬픈 눈빛을 놓치지 않았어.


“/여기서 살 거면 그냥 죽는 게 나아./”


뒤이은 아이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어.

남자아이들을 데려다 건달로 삼고, 여자아이들을 첩으로 판다니…….

이 마을은 이상한 수준이 아니라 정상적인 마을조차도 아니었던 거야.


그제야 모연은 지금 그들이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곳에 들어왔다는 걸 알았어.


“/당신들한테 협조할게. 대신 조건이 있어. 날 여기서 데리고 나가줘./”


소녀, 파티마는 아주 당돌했어.

곧 죽어도 팔려가기는 싫었는지 대담하게도 외부인인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파티마는 오늘이 바로 제 차례라고 했어.


시진은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핸드폰이 터지는 곳을 찾아 마을 뒤편 높은 언덕에 올라와 중대로 전화를 걸었어.

아픈 아이들 때문에 모연 혼자 마을에 남겨두고 올라온 터라 불안한 마음에 마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내내 마을을 주시하며 대영과 통화를 하는데 그가 전한 말은 정말이지 좋지 않은 소식이었어.


“……도깨비 마을?”
“갱단들 간에 마을 고아들이 통째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계속 옮겨 다녀서 도깨비 마을이랍니다.”


목에 뭐라도 걸린 것처럼 시진은 초조해졌어.

인신매매의 공급처로 밝혀진 마을에 모연이 함께 있는데 중대에서의 지원은 늦어지고, 인신매매범들이 언제라도 마을에 모습을 드러낼 텐데 그는 그녀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사정을 모르고 이곳까지 모연을 데려온 것이 시진은 못내 불안해. 벌써 해가 지고 있어.

오늘 파티마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던 남자들이 금방이라도 마을로 들이닥칠 것 같았어.


시진이 불안한 마음에 또 한 번 마을을 돌아보는데 마을 진입로로 고급 세단이 들어오는 게 보였어.

그리고 열린 차창 안으로 보이는 사람은 그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지.


다시 만나면 빚을 받아 내리라 다짐했지만 ‘지금’은 절대 맞닥뜨리면 안 되는 남자, 아구스였어.


마을에 모연이 있는데 그 곳으로 지금 저 놈이 가고 있는 거야. 얼굴이 사색이 된 시진은 달리기 시작했어.



아이들에게 급한 대로 링거를 놓아주던 모연은 차가 들어오는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

어슬렁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썩 편치 않아.
아픈 아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죽어가는 중인데 정작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는 고급 슈트에 고급 세단을 몰고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났으니 그 모습이 아니꼬워 보일 수밖에.


하지만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 일단 모연은 찌푸려지려는 인상을 참고 이야기를 시작했어.


“/아이들 보호자세요?/”
“/손님이 계셨네?/”
“/전 한국에서 온 의사입니다. 마을 아이들 몇이 홍역에 걸렸어요. 이 아이들을 야전병원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좋은 일 하시는 분이 이렇게 아름답긴 쉽지 않은데./”
“…….”


남자의 되도 않는 수작과 가볍기 그지없는 말에 모연은 입을 다물었어.


아이 보호자냐는 말에도, 아이들의 거취 문제에 대한 문제도 아랑곳없이 그녀의 외모품평이나 늘어놓고 있는 남자의 말에 모연은 대화를 이어갈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어.


이 황당하고 짜증나는 남자의 태도에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하나, 지금은 얼굴 내갈길 가방도 없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는데, 그때 갑자기 시진이 나타나 그녀의 앞을 막아섰어.

뭐가 그리 급했는지 숨이 턱까지 찬 그의 등을 모연은 놀란 눈으로 보았어.


순식간에 달려온 시진은 그녀의 팔을 잡고 자기 등 뒤에 세웠어.

그 행동이 아구스에게 어떻게 보일지 계산도 못하고 그는 그저 모연을 숨기는데 급급했지.


“내 뒤에 있어요.”
“?”
“/또 보네 캡틴? 하필 이런 곳에서?/”
“…….”


그래.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여기인지 시진의 속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어.


아구스를 다시 맞닥뜨린다면 그게 언제든 어떤 곳이든 시진은 두렵지 않았어.

전세가 불리해지더라도 그 혼자만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발을 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어.

알 수 없는 상황에 조용해진 모연이 그의 등을 보고 있었으니까.


시진에게 지금 상황은 절대 유리하지 않아.

어떤 위험한 작전에서도 잠잠하던 그의 심장이 긴장감에 거칠게 뛰었어.


점점 뜨거워지는 머리에 시진은 다시금 모연을 끌어당겨 등에 바짝 붙였어.

그렇게 하면 그녀를 놈이 볼 수 없게 숨길 수라도 있는 것처럼…….


모연은 유독 예민하게 구는 시진이 이상해서 무엇 때문에 그가 이토록 긴장했는지, 앞에 서 있는 저 남자는 누구냐고 물었어.


“아는 사람이에요? 누군데요?”
“……라이언 일병.”


그제야 모연도 이 팽팽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어.

그녀는 오래 전의 그 기억을 회상하는 시진의 등 너머로 남자를 보았어.


시진이 오래 전 목숨을 구해주었다던 그 ‘라이언 일병’. 하지만 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후회하게 한 ‘그’ 라이언 일병이 지금 앞에 서 있는 비릿한 미소를 짓는 저 남자였던 거야.


남자, 아구스는 악랄하지만 좋은 머리로 상황을 분석해냈어.

앞에 강철로 만든 벽처럼 서 있는 빅보스와 그가 한사코 등 뒤로 숨겨두고 싶어 하는 여자라니 너무 흥미로웠지.


저 여자가 대체 빅보스의 무엇이기에 안달복달을 하며 그를 죽일 듯 노려보는 건지. 아직 아무 짓도 안했는데.


잠시 머릿속을 더듬던 아구스는 이내 기억해냈어.

저 예쁘장한 여자를 어디서 보았었는지를.


추도식에서 보았던 이질적인 동양인 여자.


맞아. 저 여자는 그의 옛 전우의 추도식을 먼발치서 지켜만 보던 여자였어.

그리고 그곳에는, 빅보스도 있었지.


여자는 그때 영정이 아니라 빅보스를 바라보고 있었어.

저 여자는 그의 전우의 추도식에 온 것이 아니라, 빅보스를 따라왔던 거야.


지키려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등 뒤에 말없이 서 있는 여자라…….


시진의 어깨 너머 잘 보이지도 않는 모연에게 흘끗 시선을 주던 아구스의 뇌리에 재밌는 생각이 스쳐갔어.

그에게는 재밌지만 시진에게는 끔찍할만한 그런 재밌는 생각이.


“우리가 싸우면 내가 훨씬 유리하겠어, 빅보스.”
“!”


놈이 내린 섬뜩한 결론.

그 결론에 시진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어.


어떻게 하면 저 놈을 처리하고 모연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뒤에 두 놈이 다일까. 몇이나 저 차 안에서 대기 중일까.

지금이라도 총을 뽑아 저 놈을 쏘면 승산이 있을까.

내 등 뒤에 있다고 해서 모연이 총격전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온갖 수십 수백 가지의 작전이 시진의 머릿속에 수립되었다 엎어지기를 반복했어.


점점 시진의 얼굴이 굳어지고 살기어린 눈으로 아구스를 노려보는데 미처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탕! 소리가 나더니 아구스의 몸이 별안간 무너져 내렸어.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에 곧바로 총을 뽑아든 시진의 눈에 보인 건 아까 그 붉은 원피스의 소녀, 파티마였어.

그녀가 방금 제가 쏜 총을 들고 아구스의 뒤에 서 있었어. 총을 쏜 본인도 놀랐는지 손을 벌벌 떨다 파티마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 시진에게로 뛰어왔어.


보스가 총에 맞자 아구스의 부하들이 뛰어왔고 순식간에 양쪽 모두 총을 들고 대치 상태에 돌입했어.


“Freeze! Don't move!”


시진 또한 절대 바라지 않던 상황이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졌어.

모연을, 이제는 파티마까지, 나아가 마을 아이들까지도 시진은 그를 똑바로 겨눈 총구 앞에서 지켜내야 해.


“/거기 의사 뭐해! 빨리 와서 뭐든 해!/”


모연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눈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해.

저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도 알겠고 파티마가 그를 쏘지 않았다면 반대로 이쪽이 총을 맞았을지도 모르는 것도 알겠는데, 모연의 의사로서의 본능은 이 상황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어느새 피를 쏟는 남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어.


“/안 돼! 살리지마! 그냥 죽여! 죽게 놔둬!/”
“/이봐 의사, 뭘 망설여! 당신 일을 해야지./”
“/제발 죽게 놔둬!/”


눈앞에서 피를 쏟는 남자와 살리지 말라는 소녀의 절규가 모연을 뒤흔들어댔어.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저 악인에 대한 반감, 아이의 비명과도 같은 호소가 모연을 혼란스럽게 했어.


“/뭐 하는 거야! 나한테 저 꼬마를 죽일 기회를 뺏지 말라고./”


저 몸을 해서도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살기등등한 저 악인을 살려야 하는지, 저 사람도 생명이라고 구해야 하는 건지, 그게 내가 더 큰 죄를 짓는 건 아닌지 공포와 혼란이 모연을 짓눌렀어.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다가도 그 사람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보고는 살리는 게 과연 옳을까 미치겠는 거야.


“살리지 말까 봐요. 그냥 둘까 봐요. 내가 이 사람을 살리는 건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살려요. 당신은 의사로서 당신의 일을 해요. 죽여야 할 상황이 생기면, 죽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시진은 모연의 혼란을 종식시켜 주었어.

모연은 내내 갈피를 못 잡고 있었고, 주변의 상황과 아이의 절규에 밀려 그대로 자신의 판단 기준을 잃어갔어.

그런 그녀에게 시진은 그녀의 기준을 되짚어주었어.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면, 당신에게 가장 명확한 한 가지의 기준을 따르라고.

당신은 의사로서의 자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죽을 것을 알면서 내버려두어 간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고.
죽이는 건 내가 할 일이니, 당신은 그저 계산 없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일을 하라고.


죽일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릴 수 있지만 죽어도 좋을 사람이라 여겨 죽도록 내버려 두는 건 다른 거야. 죽어도 좋을 사람이라는 판단을 개인으로서 누가 내릴 자격이 있겠어.


시진은 이 일로 모연에게 오점이 남길 바라지 않아.

아구스 따위의 놈 때문에 그녀가 직업적 순수를 잃는 건 정말 무가치한 일이니까.


그는 모연이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남은 생을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어떤 상황이든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살려야 해.

그러지 않는다면 그 죄의 굴레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방조한 그녀에게 씌워질 테니까.


이후 되살아난 아구스가 그에게 더 위협적인 적이 된다고 해도 당장은 모연에게 죄악을 저지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 놈을 그녀에게 치료받게 해야만 했어.


놈을 죽이는 건 그가 명분을 갖고 하면 되는 거야.

그 일을 아무 명분도 없이 의사인 모연에게 하게 할 수는 없었어.


모연은 시진의 말에 모든 것을 초월하여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의사의 책무만을 생각하기로 해.

그게 지금 그녀가 일말의 혼란 없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의 절대 기준이니까.


“출혈로 인한 쇼크예요. 안으로 옮겨야 해요.”
“/선택해. 총 내려놓고 안으로 옮길지. 이대로 둬서 그냥 죽게 할지. 참고로 난 후자를 권해./”


시진은 진심으로 이대로 아구스가 죽어주길 바라. 만약 모연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는 새삼 아구스를 병원으로 옮겨 주지도 않았어.

그의 부하들이 병원으로 옮기는 사이 죽을 테니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놈은 참으로 운이 좋게도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거지.

이곳엔 의사인 그녀가 함께 있었으니까.


시진이 아구스를 살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건 오로지 모연을 위해서였어.


모연에게 죄를 짓게 하지 않기 위해서.

오로지 그녀의 죄악을 막기 위하여 아구스를 오늘만 살려 보내야 했어.


“/꽉 잡아!/”


공포를 걷어놓고 냉정을 되찾은 모연은 비명을 질러대는 아구스에게서 총알을 적출하는 내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


“/아프잖아! 진통제는 놓고 하는 거야?/”
“깜빡했네. 실력 좋은 의사가 아니라서.”


메스를 든 의사로서 모연은 베드에 누운 아구스가 두렵지 않아.

죽일 듯 노려보면서도 놈은 저를 살려줄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

놈은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어.

전쟁 중에 의사는 누구보다 귀한 인재니까.


하지만 정성껏 치료해서 그들을 다시금 해치게 만들 수는 없기에 모연은 진통제도 놓지 않고 총알을 꺼내고, 상처도 봉합해주지 않고 거즈로 지혈 작업만 해주었어.


그러나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놈은 몸이 그 지경이 되어서도 파티마에게 그 흉악한 손을 뻗었어.


“/돌아가자./”
“/이 아인 못 데려가. 총알은 꺼냈지만 병원부터 가는 게 좋을 거야. 당장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했거든./”


모연은 그녀 자신에게도, 현재 총을 겨누고 있는 시진에게도 최선의 결정을 내렸어.


총을 겨눈 남자들 사이에서 시진이 그녀와 파티마, 마을 아이들까지 완벽하게 보호할 수는 없어.
모연은 이곳에서 아구스가 제 발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치료를 모두 마쳐주지 않은 거야.


그에 이를 갈며 아구스는 피비린내 나는 약속을 하나 했어.


“/다음에 보게 되면 약속할게. 지금처럼 예쁜 얼굴로 죽진 않을 거야, 파티마./”
“/후퇴는 가능한 빨리, 가능한 멀리. 내가 친절한 건 여기까지야./”


애석하게도 모연이 함께 있었기에 시진은 아구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만 했어.

놈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후일 벌어질 충돌은 둘 중 어느 쪽에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 오늘로써 분명해졌지.


모연의 영리한 판단으로 아구스는 그렇게 제 발로 마을을 떠났어.



막사로 돌아온 모연은 바쁘게 아이들을 챙기다 뒤늦게 자신의 손에 말라붙은 아구스의 핏자국을 발견했어.

외과의사로서 수없이 손에 묻혔던 피가 오늘처럼 비릿한 적이 없었어.


모연은 수돗가에 나와 피를 씻어내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다시금 떠올렸어.


-살려요. 당신은 의사로서 당신의 일을 해요. 죽여야 할 상황이 생기면, 죽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위험한 남자랑 다니시네. 총 든 남자 옆에 있으면 총 맞을 확률이 높은데.


죽여야 할 상황, 죽이는 것, 위험한 남자, 총 맞을 확률.


그 모든 말들이 모연의 가슴에 남았지만 결코 그것들은 그녀를 흔들지는 못했어.


시진은 총을 드는 남자고, 그 총으로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하고, 그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도 떠넘기지 않아.


‘라이언 일병’의 말대로 그의 옆에 있으면 그녀까지 총을 맞게 될지 모른다 해도 그건 그와 헤어질 이유로 충분하지 못해.


모연에게 가장 겁나는 일은 그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녀가 총에 맞는 것도 아닌,
그녀의 연인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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