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하면 대번에 “맛도 없는데 그걸 왜 먹냐”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쌉싸름한 호프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맥주 특유의 맛이 상대적으로 적어 아쉽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무알콜 맥주의 인기는 별로였습니다. 무알콜 맥주는 그저 의료 시술이나 수술을 받았거나, 아이를 임신 중인 경우 알콜 음료를 대신해 마시는 ‘마지막 선택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어도 일부러 이 무알콜 맥주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일까요?
알코올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무알콜 맥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픽사베이
# 20대 직장인 B씨는 소위 말하는 ‘알쓰(알코올 쓰레기)’입니다. 알쓰는 술을 거의 한방울도 못하는 이들이 그런 자신의 체질을 자조적으로 부를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물론 술을 못 마시는 건 나쁜 것도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닙니다) B씨는 그래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무알콜 맥주 덕분에 술자리를 즐기게 됐습니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유난을 떤다고 핀잔을 주다가 2차 때부터는 저들이 먼저 무알콜 맥주를 찾기도 하고, 칼로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일부러 무알콜 맥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 임산부 A씨는 늦은 저녁이면 가끔씩 치킨에 무알콜 맥주 한 잔을 하곤 합니다. 평소 즐겨마시던 라거와 비교하면 맛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진짜 맥주 못지 않게 청량한 느낌이 거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자꾸 마시다 보니 무알콜 맥주들 사이에서도 맛과 향이 다른 게 느껴지고 선호하는 브랜드도 생겼습니다.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다 보니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창피했던 피부도 항상 제 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술이 아니기 때문에 성인인증만 하면 온라인으로 편히 주문도 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출산 후에도 무알콜 맥주를 마실 생각입니다.
# 30대 직장인 C씨는 원래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술고래였습니다. 한 번 술자리에 갔다하면 소주 서너병에 맥주 대여섯병은 기본이었죠. 젊음을 믿고 무한정 술을 마시던 C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간수치가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위험한 수준이고 음주습관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간암이나 간경화 등 간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경고를 들은 것 입니다. 간 쪽으로 가족력이 있던 C씨는 그 길로 술을 끊고 무알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술을 마시는 기분은 그대로 내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 타협한 겁니다.
이들 사례처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알콜 맥주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무알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장조사전문기관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13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무알콜 시장은 지난해 200억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10년간 약 15배 가량 커진 겁니다. 2025년에는 무알콜 시장이 2000억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지금보다 10배 이상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는 겁니다.
2030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은 월 1회 이상 무알콜 또는 논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하이네켄코리아
글로벌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이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 오픈서베이를 통해 최근 3개월 이내 무알콜 및 논알콜 맥주를 마신 경험이 있는 2030세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도 이 시장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조사에서 2030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은 월 1회 이상 무알콜 혹은 논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답했습니다. 이 맥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선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만 맞추고 싶어서라는 응답이 과반이었습니다. 운전을 해야 할 때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이 맥주는 찾는다는 응답도 각각 30%씩을 기록했습니다.
실제로도 주류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가 내놓은 무알콜 맥주 카스 0.0은 2020년 출시 후 2021년 12월까지 온라인에서만 400만캔 이상 팔렸습니다. 하이트진로의 무알콜 맥주인 하이트제로 0.00은 2021년도 매출이 2020년도에 비해 80%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판매한 양만해도 2100만캔 정도입니다. 대표적인 국산 무알콜 맥주인 두 브랜드의 판매량만 따져봐도 얼추 한 해 수 천만캔의 무알콜 맥주가 소비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제품 호가든 제로./ 오비맥주 제공
무알콜·논알콜 맥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류업계는 관련 제품 출시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비맥주는 수입맥주 브랜드인 호가든의 프리미엄 논알콜 음료인 호가든 제로를 출시했습니다. 호가든 제로는 호가든과 동일하게 맥주를 제조한 뒤 마지막 여과 단계에서 알코올만 추출해낸 맥주로 실제 알코올 도수는 0.05% 이하입니다. 호가든은 밀맥주 가운데 하나로 풍성한 거품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제품입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논알콜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맥주를 출시했다”며 “밀맥주 1위 브랜드로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이트진로도 논알콜 맥주인 카스 0.0의 500ml 캔 제품을 새롭게 내놓았습니다. 기존 355ml 짜리의 선전에 힘입어 보다 큰 용량의 제품을 내놓은 것입니다. 수제 맥주를 내세워 성장한 제주맥주와 세븐브로이맥주 또한 무알콜·논알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미래 사업 전략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 정도면 주류 업계에서 굵직굵직한 업체들은 모두 무알콜·논알콜 맥주 사업을 추진하고 있거나 진행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맥주명 뒤에 붙는 0.0과 0.00은 알코올 함량을 표시한 겁니다. 0.0은 호가든 제로처럼 아주 약간이라도 알코올이 들어가 있는 맥주입니다. 호가든뿐 아니라 하이네켄 논알콜(0.03%)이나 칭따오 논알콜(0.05%), 클라우스탈러(0.49%), 웨팅어 프라이(0.49%), 산미구엘 엔에이비(0.003%) 등도 조금씩은 알코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코올이 조금씩 들어가 있는데 왜 무알콜, 논알콜 맥주라고 부르냐고요? 국내 주류법상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제품은 음료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알코올이 아예 안 들어간 제품을 이용하려면 제품명에 0.00이 쓰여진 걸 고르면 됩니다. 0.00은 아예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맥주에만 붙일 수 있습니다. 국내 제품 가운데서는 하이트제로 0.00과 클라우드 0.00이 유일한 완전 무알콜 맥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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