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22년 상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大魚)로 꼽혔던 기업들이 연달아 상장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IPO(Initial Public Offering)란 기업이 주식시장 상장을 목적으로 자사 주식과 경영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식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일반 투자자에게 공모하거나 재무내용을 공시해 주식회사의 체제를 갖추는 것을 말하기도 하죠.
상장을 철회하거나 미룬 곳은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입니다. SK쉴더스는 2021년 3월 SK스퀘어 자회사 SK인포섹이 ADT캡스를 흡수합병해 출범한 보안 기업입니다. 마찬가지로 SK스퀘어 자회사인 원스토어는 토종 앱스토어입니다. 증시 침체가 길어지면서 시장에선 “상장 계획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지만, 공모가를 낮춰서라도 상장하겠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죠.
하지만 5월 9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기록을 내자 결국 원스토어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기업이 기업공개를 하려면 기관이 원하는 가격과 수량을 주문하고, 이를 취합해 공모가를 결정하는 수요예측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원스토어는 전체 공모 주식 수의 75%인 499만5000주를 기관투자자에 배정했지만, 모집 수량을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골판지 원지 제조업체 태림페이퍼도 5월 11일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기업의 희망 공모가 밴드보다 낮은 금액에 투자하겠다는 기관이 대부분이었다고 하죠. 증시가 요동치는 요즘 기업공개 시장은 규모가 작은 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움츠러들게 하는 혹한기나 다름 없어 보입니다.
◇예상 밖 흥행한 ‘삼성전자 파트너’
드물지만 매서운 추위를 뚫고 피는 꽃이 있는 것처럼, 이런 와중에도 상장에 나서 흥행몰이까지 성공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 반도체 디자인 솔루션 업체 가온칩스입니다. 이 회사는 쉽게 말해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fabless)한테 설계도를 받아 공정에 최적화된 형태로 가공하고, 이를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에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가온칩스는 2012년 문을 연 중소기업으로, 2021년 매출은 322억3560만원 수준입니다. 업력이 10년 차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매년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가온칩스를 만든 이들은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들입니다. 2014년 삼성전자와 협력 관계를 맺었고, 2017년에는 파운드리(foundry) 채널 파트너 자리에 올랐습니다. 2019년에는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삼성 파운드리 위탁생산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디자인솔루션 파트너로 뽑혔습니다. 소프트뱅크가 상장을 추진 중인 영국의 팹리스 ARM도 가온칩스의 파트너입니다.
가온칩스는 5월 초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했습니다. 경쟁률은 1847.12대 1이었습니다. 참여 기관 99.9%인 1901곳이 가온칩스의 희망 공모가 범위 최상단인 1만3000원을 제시했습니다. 때문에 공모가가 1만4000원으로 정해졌죠. 가온칩스는 5월 20일 코스닥에서 데뷔합니다.
대기업 자회사도 상장을 철회하는 마당에 가온칩스가 흥행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요? 이 회사는 28나노미터(nm) 이하 공정과 차량,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반도체 제조에 특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21년에는 ARM의 최고 디자인 파트너사(ARM Best Design Partner)로 선정되기도 했죠.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영업이익 성장률은 50.2%에 달합니다. 2021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9% 수준입니다.
가온칩스가 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에서 살아남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만, 상장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면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기업공개 시장에 있던 대기자금이 가온칩스로 몰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능력이든 운이든 가온칩스 입장에서는 기업공개로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공모 자금을 연구개발과 해외시장 진출 자금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SoC(시스템온칩) 솔루션 플랫폼 강화와 킬러 지식재산권(IP) 자체 개발을 통해 사업 다각화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장해도 흥행은 별개
하루에도 주가가 10% 넘게 오르내리는 요즘 같은 주식시장에서는 기업공개 흥행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전망하기 어렵습니다. 2022년 3월 상장을 한 차례 미루고 재수 끝에 5월 16일 코스닥에 입성한 대명에너지의 공모가는 1만5000원이었습니다. 공모가보다 3% 높은 1만5450원에 시초가가 형성되었는데요, 이날 대명에너지는 시초가보다 9.71% 떨어진 1만395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공모가보다 7% 낮은 수준이었죠.
다음 날인 5월 17일 반등에 성공했지만, 5월18일에는 1만37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최근 3일 사이 대명에너지의 포털 종목토론방에서는 “아직도 공모주에 돈 넣는 호구가 있나 했더니 그게 나였다”, “앞으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지 말아야 겠다”는 등의 말이 오갔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애플이나 테슬라도 주가 폭락을 피하지 못하는 요즘인데, 일일 주가 변동폭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왔습니다.
가온칩스의 상장 초기 주가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이 회사의 성적표가 2022년 하반기 상장 계획을 가진 기업들의 기업공개 흥행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선식품 전문 온라인 쇼핑 플랫폼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2022년 3분기 주식시장에 입성할 예정입니다. 앞서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쿠팡 주가가 공모가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입니다. 컬리는 5000억원대 누적 적자를 안고 주식시장에 데뷔합니다. 과연 컬리는 미국에서 고전 중인 쿠팡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팹리스와 파운드리
팹리스(fabless)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설계와 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제조 설비를 의미하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과 ‘~가 없다’는 뜻을 가진 접미사 리스(less)를 합성한 말이다. 파운드리(foundry)는 반도체 설계만 하고 생산을 외부에 맡기는 업체로부터 디자인을 위탁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대표적인 파운드리로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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