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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19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8 22: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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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4)


“너, 말해줄 생각은 있는 거야?”


“뭘?”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곳엔 왜 온 건지, 혁수는 어떻게 알고 구한 건지.”


혁민의 말에 해경은 걸음을 멈췄다. 둘이 멈춘 지점은 유리 형상이 어느덧 혁민의 초등학생 시절을 나타냈다. 혁민은 자기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잘 구현된 색채 유리 전시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 불쾌했던 건 그 안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친다는 점이었다.


그 내부는 진짜 사람의 것을 빼다 쓰기라도 한 것처럼 구현돼 있었다. 혁민은 그 사실들을 애써 무시하며 해경의 뒤만 쫓고 있었는데, 도저히 참지 못했다.


이전 같았다면 자신의 무지로 인해 무력하게 끌려다녔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지하다고 해서 해경을 일방적으로 신뢰하기엔 해경 역시 더는 무작정 신뢰할 수 없었다.


“말해주면 믿을 거야?”


“안 말해주고 일방적으로 구는 것보단 낫겠지. 판단은 내가 해.”


혁민은 버티어 섰다. 물론 해경이 나아갈 방향은 혁민이 가야 할 방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해경을 무작정 따라가는 일은 더는 없었다.


해경은 안대 낀 쪽으로 고개를 돌려 혁민을 바라봤다. 혁민은 분명 해경의 시야가 느껴지지 않아야 할 상황임에도 해경에게 시선을 받는다는 착각이 들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진 점은 있네.”


“그래서 답은?”


“일단 내 3년간 행보는 네가 알 필요도, 권리도 없어.”


해경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그리고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혁민은 순순히 수긍했다. 해경이 들인 뜸, 그리고 감정적인 처사. 혁민은 그녀가 초자연현상보단 인간에 가까운 것 같아 안심했다. 저렇게 변해버린 데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초자연현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선 초자연현상과 필연적으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일지 몰랐다.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 역시 마찬가지야.”


“나는 민간인이니까?”


“당연한 소리를.”


해경의 말에 혁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역시 신분이 문제였다. 3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혁민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처지였다. 더 알기 위해서 대학까지 진학했건만, 그동안의 노력이 부질없게 다가왔다.


APOF 입대 역시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미련과 기대를 놓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무력하게 해경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네 친구는 나도 구하고 싶어서 구했던 건 아니야.”


“뭐라고?”


“이 전시 끝에 답이 있을 거야. 아마도.”


해경은 그리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혁민은 해경이 ‘전시 끝’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했다. 그 말은 혁수의 전시에 자신과 어떠한 접점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혁민은 지금 자기 옆에 있는 작품을 쳐다봤다.


혁민의 초등학생 시절 모습을 한 유리 형상은 해맑은 그의 표정을 똑같이 재현했다. 소름이 끼치다 못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해경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듯 일방적으로 전진했다. 혁민은 재빠르게 작품을 눈으로 훑으면서 과거를 곱씹었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 본인의 과거를 들여다봤는지 몰라도, 이들이 구현한 과거는 매우 훌륭했다.


어느 의미론 이 과거에 빠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올라가기까지, 혁민의 인생에선 큰 위화감 없이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던 마지막 시절이었다.


“……나도 있네.”


해경이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혁민도 간신히 뒤따라와 해경이 본 것을 봤다. 혁민의 고등학생 시절, 곧 해경을 부축하던 모습이었다. 3년 전 풋풋하던 해경과 혁민의 유리 형상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었다.


“너라는 걸 알아보겠어?”


혁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혁민에겐 3년 전 일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꿔버린 사건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해경에게 3년 전 일은 이젠 수도 없이 지나온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녀는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마저 겪었다. 그 흔적은 그녀의 안대가 증명했다. 해경은 조금은 순진했고, 조금은 밝았던 자신의 유리 형상을 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대꾸도 안 하냐.”


혁민은 슬슬 지금의 시점을 넘어서리란 걸 알았다. 10분을 더 걷자, 정확히 해경이 앞서고 혁민이 그 뒤를 따르는 유리 형상이 나왔다. 해경은 걸음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걸음을 박찼다.


혁민은 마음 같아선 지금부터라도 작품 하나하나 감상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미래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실로 어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혁민은 작품에서 느낀 불쾌함과 위화감을 떠올리고 경계했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불필요하게 증폭된 느낌이었다. 미래는 분명 궁금했다. 그 욕구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현 상황의 위중함을 잊을 만큼 우선되는가?


그 질문에 혁민은 아니라고 답해야만 했다. 거기에 그렇다고 답하는 건, 그것이 설령 본인의 진심인들 부정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전시’가 바라는 형태일 게 분명했다.


혁민은 자기 뺨을 치며 정신을 단단히 붙들었다. 고작 30분도 안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로가 상당했다. 끊임없는 충동과 불안, 욕구와 싸우고 경계하고, 의심하고, 스스로 다독이고, 생각하고, 벗어나고. 무형의 적과 싸우는 일은 심력 소모가 상당했다.


“벌써 지친 거야?”


어느새 둘 사이의 차이가 벌어지자, 해경이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혁민은 숨이 가쁘게 쫓으며 말했다.


“너는 네 미래가 궁금하지도 않아?”


“궁금하지 않아.”


“거짓말하지 마.”


혁민이 경멸하듯 말했다. 그러자 해경도 멈춰 섰다. 혁민은 해경이 멈춰 서자, 본인도 따라 멈춰버렸다. 해경은 잠시 침묵한 끝에, 혁민을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사람의 눈이 있는 왼쪽이었다.


“아니, 진짜야. 난 이미 봤거든.”


혁민은 어쩐지 여기서 들은 것 중에 가장 감정적인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미세하지만 해경은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여태 느껴지지 않았던 해경의 두려움이 얼핏 느껴졌다고, 혁민은 그렇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 전시를?”


“아니. 하지만 미래를 볼 방법이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야.”


해경의 말투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혁민은 본인이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것도 초자연현상처리반……. 거기 일인가? 아니면 V.ANK?”


“좋을 대로 생각해.”


“형편 좋게 말하기는.”


어느덧 전시의 끝이 보였다. 혁민은 심히 당황스러웠다. 아직 유리 형상은 본인의 젊은 청년 시절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길 끝에 EXIT라고 쓰인 출구와 문이 보였다. 해경과 혁민은 출구에 도달하기 전, 두 개의 작품을 봤다.


하나는 혁민과 어느 남자가 대치 중이었다. 혁민은 총을 들고 있었고, 어느 남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혁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지 알아보겠어?”


해경이 혁민을 향해 물었다. 혁민은 그제야 처음으로 본인과 해경이 지금 같은 작품을 같이 감상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혁민은 잠시 시선을 돌려 작품의 제목을 찾았다.


‘최혁민(RR)&양태기(TG)-마지막 배신’


“양태기?”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운 건, 이름 옆에 표기된 알파벳이었다. 혁민은 어째서 자신이 RR이고, 양태기는 TG인지 알지 못했다. 양태기는 ‘태기’의 두음을 따서 TG라고 해도, 혁민은 같은 의미론 HM이어야 했다.


“야, 차해경. 넌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거야?”


“이름을 보지 말고, 얼굴을 봐. 정말 모르겠어?”


해경의 말에 혁민은 얼굴을 봤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양태기란 남자는 확실히 아저씨였다. 얼굴을 볼수록 혁수를 닮았지만, 정혁수와 양태기는 이름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혁민은 끝내 고개를 내저었다. 얼굴 닮은 사람이야 종종 있는 일이고, 혁수의 얼굴은 흔하디흔한 얼굴은 아니어도 닮은 꼴은 종종 나왔다.


해경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더니, 마지막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경이 가만히 있었기에, 혁민은 해경을 넘어가서 작품을 똑바로 감상했다.


‘최혁민-최후&한태준’


자신은 쓰러진 채 피떡이 된 얼굴이었고, 그 위를 올라탄 좀 더 젊어 보이는 남자는 감정을 절제한 얼굴이었다. 혁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작품의 제목이 ‘최후’인가? 거기에 한태준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왜 자신의 미래를 그린 마지막 작품인가?


“이 사람이 날 죽인 건가?”


혁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해경은 가만히 있었다.


“이것도 초자연현상이지? 날 기만하고 속이려는……. 그런 거 말이야.”


혁민이 조심스럽게 해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경은 침묵했다.


“야, 차해경. 대답 좀 해.”


“…….”


“차해경! 이게 내 미래의 끝이냐고 묻잖아!”


“…….”


“차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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