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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프리스크 패러블 - 27 - (독립)

유동문학(221.141) 2016.05.29 23: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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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



 샌즈는 정말로 너를 믿지 못 하는 걸까?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샌즈가 해주었던 행동들이 너무 지나치다. 단순히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행동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샌즈가 너를 믿지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단, 샌즈가 너를 완전히 신뢰하기엔, 샌즈가 생각하는 가능성이 너무나 많고 불안한 것이었다. 너를 여기로 유인한 것도, 너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너와 함께 할수록 지워낼 수 없는 샌즈의 불안감이 너를 여기로 이끌어낸 것이다. 샌즈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지만, 그 이면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불안감이 있던 것이었다. 굳이 그런 불안감을, 너에게까지 보일 정도로 털어놓는 이유, 이렇게 갑작스레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샌즈, 여기서 나가요."


 샌즈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너는 샌즈의 손을 잡고 끌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샌즈는 저항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기계와 이 지하실에서 마주하기 힘든 진실의 냄새가 났다. 너는 저리는 오금과 손가락 끝의 찌릿함을 견디며, 샌즈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샌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가 샌즈의 손을 잡고 끌어오는 와중에, 뒤를 돌아 샌즈의 표정을 보았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웃고 있었다. 깊게 고민하고 있는 표정임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샌즈의 눈을 잠깐이나마 들여다보았다. 너에 대한 친절과 믿음, 그 밑바닥에 있는 불안과 외로움이 있었다. 커다란 희망과 기쁨을 맞이하게 된 노예의 표정이었다. 샌즈의 말을 되짚어보면, 샌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 샌즈에게 너라는 커다란 기회를, 정말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정말 기쁘고 환호성을 지를 일일 수도 있지만, 샌즈에겐 기쁨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무언가를 포기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익숙했을 것이었다. 너는 플라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샌즈의 웃는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그것은 웃는 표정이었을까?

 너는 샌즈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지하실 문을 뛰쳐나온 뒤 문을 닫았다. 너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잠갔다. 이 순간만큼은 넌 응석받이 어린 아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꼬마야. 아까 너가 무슨 말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시치미 떼려고 하지 마요, 샌즈!"

 "헤헤. 괜찮은 농담이네."


 샌즈의 표정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 지하실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샌즈의 미심쩍은 태도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너는 이 순간에도 샌즈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차라가 알려줬어요. 샌즈가 절 의심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것까지도 알려줬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샌즈는 절 못 믿고 있어요."

 "아니야, 꼬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는 널 믿고 있어."

 "그러면 그런 이상한 표정 짓지 마요!"


 하지만, 샌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샌즈는 계속 널 보며 웃고 있었다. 너가 보고 있는 것은 샌즈의 항상 같은 표정 뿐이었지만, 너는 그것에서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샌즈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저는 그러지 않을 거에요. 전 이런 걸로 샌즈의 약속하지도 않을 거예요. 약속은 깨질 수 있으니까요. 그냥 샌즈에게 알려줄 게요. 전 안 그럴 거예요."

 "…, 꼬마야, 지하 세계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그럼 여기서 살아야죠. 어떻게 하겠어요? 정말 집에 가고 싶고, 여기 있는 게 괴로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샌즈같은 괴물들이 사는 곳이잖아요. 다들 착하다고요. 못 살던 없잖아요. 제가 왜 샌즈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짓을 하겠어요?"

 "…, 그렇구나."


 샌즈는 시선을 너에게 두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너가 잡고 있는 샌즈의 손에선 어떤 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너는 고개를 살짝 들어 샌즈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안심한 듯한 표정 뒤에, 약간의 불안이 남아있었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너는 샌즈에게서 느껴지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방법을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너는 샌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할 방법이 전혀 없었으며, 샌즈가 생각하는 최악의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방법이 없었다. 너가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믿어주길 애원하는 것 뿐이었다.

 너가 샌즈에게 애원하면서까지, 믿음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으니까.


 "샌즈, 저는 샌즈가 제 첫 친구에요."

 "…."

 "처음에 냅스타블룩이라는 유령이랑도 친해졌지만, 샌즈처럼 오래 있진 않았어요. 저는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같이 있어보고, 지내본 적이 처음이에요. 저한텐 샌즈가 처음이라고요. 그런데 샌즈가 저를 그렇게 생각하면…, 전…."


 너는 샌즈의 손을 꼭 마주잡은 채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넌 그걸 참지 않았다. 눈가에서 눈물이 쏟아져내리고, 숨이 거칠어지며 딸꾹질이 나오는 것을 참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참지 못 했다. 목이 부어오르고 속에서 여러 감정이 섞여 나와 울음 소리가 되어 터져나왔다. 눈동자가 충혈되고 코도 흘러나왔지만, 너는 절대로 그걸 닦아내지 않았다. 너는 그저 샌즈의 두 손을 맞붙잡아 쥐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샌즈를 쳐다보며 말했다.


 "새, 샌즈는 표정으로 읽어내는 거 잘하잖아요. 지금 봐요."


 너는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한 번 고르면서 말했다.


 "제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샌즈가 한숨을 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꼬마야. 아니야."

 "그러면 믿어달라구요!"


 너는 울음에 북받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모아 외쳤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듣고 있는 샌즈도 겨우 들릴 만큼의 목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너의 목이 갑작스런 슬픔 속에 잠기어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 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종종걸음을 하던 아이라곤 믿기 힘들었다. 내가 굳이 샌즈의 생각을 읽어낸 탓인 것 같지만, 그걸 절대로 무시할 순 없었다. 불신에서 시작된 인간 관계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고름은 터뜨려야 했다.
 집에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었다. 샌즈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은 의심은 너를 향한 것이 아니었으니 애초에 너가 풀어줄 방법이 없다. 샌즈가 의심하는 것은 너가 아니었다. 샌즈가 경계하는 너가 가진 그 능력이었다. 너가 어떤 수로 샌즈를 설득할 수 있을까?

 "샌즈,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제가 어떻게 하면 샌즈가 믿을 수 있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꼬마야. 너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애매한 답변이었다. 샌즈는 그럴듯한 답변을 피하고 있었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너를 믿는다'라고만 말해주면 될 것이었다. 방금 토리엘의 파이를 데워주면서 말했던 것처럼 '나도 너를 믿는다'라고만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너가 이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거짓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아니, 거짓말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샌즈는 너를 분명히 믿고 싶었다. 다만, 그러지 못 할 뿐이었다. 너희 둘 다, 서로 원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거기서 당장 나와, 프리스크.


 "이봐, 망할 뼈다귀."
 "…, 차라?"

 난 프리스크의 눈가에 서린 눈물과, 흐르는 콧물을 다 닦아냈다. 나는 프리스크의 끓어오르는 슬픔을 잠재웠다. 부어오른 목은 쉽사리 진정하기 어려웠으나, 말을 더듬거나 눈물이 새어나오는 일이 없도록, 감정을 다잡았다.

 "너, 지금까지 프리스크를 계속 도와놓고 뭐 하는 짓이야? 왜 갑자기 진심을 내비치고선 프리스크를 울게 만들어? 왜 굳이 잘 하던 연기를 그만두는 거야? 그렇게 심정이 복잡하셨어?"
 "…."
 "그래, 일이 너무 잘 돌아가니까 불안했겠지.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나나 프리스크한테 준비할 시간 정돈 달라고. 토리엘의 파이까지 들먹이면서 응원해주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네 놈의 투정이 프리스크를 울릴 정도라면, 난 받아들일 수 없어."
 "…."
 "말을 안 하시겠다?"

 빌어먹을 자식. 인지부조화 걸린 시체 같으니라고. 쓰레기 자식. 배신할 거면 배신하고, 믿을 거면 믿을 것이지. 저딴 애매한 태도로 나서면 곤란하잖아.
 확실히 애매했다. 샌즈는 널 배신할 생각이 아니다. 다만, 행동의 기저에 있던 불안과 의심이 너무 단단할 뿐이었다. 샌즈도 분명 프리스크를 응원하고 있다. 파이를 대접해준 것, 플라위로부터 구해준 것, 그릴비네에서 음식을 사준 것, 일련의 행동들은 순수한 연기라고 보기엔 과한 점이 너무 많다. 샌즈는 프리스크가 잘 해내길 빌고 있다. 다만, 프리스크가 변심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 불안을 전혀 떨치지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샌즈의 행동을 보태주고 있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론 프리스크에게 좋은 일일진 몰라도, 진심을 알아버린 이상 온전히 믿을 순 없겠어. 오히려 역겨워.

 "난 핫랜드로 갈 거야. 알겠어? 코어로 갈 거야. 아스고어한테 갈 거야. 거기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겠어. 빌어먹을 자식아. 그딴 정신 머리로 도울 생각이면 하지 마. 역겨운 자식!"

 나는 프리스크의 다리를 움직여 샌즈에게서 멀어졌다. 워터폴을 향해 걸어갔다. 샌즈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워터폴로 향하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래, 하루 종일 이 집에 머물면서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 프리스크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 수 없더라도, 일단 아스고어에게 가야 한다. 그래야 프리스크가 해야 하는 행동의 순서가 정해진다. 집에 돌아가는 걸 포기하든, 다른 방법을 찾아내든 간에 일단 아스고어에게 가야했다. 그것이 결국 프리스크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프리스크를 지킬 사람은 나 하나면 충분해. 저딴 망상증 걸린 해골이랑 놀아줄 시간 없어.
 워터폴로 향하는 길의 끝자락에서, 샌즈가 프리스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는 외쳤다.

 "프리스크는 진짜 그럴 생각 없다고, 골 빈 자식아!"

 해골 형제의 집에 두고 온 가방과 거미 도넛은 상관 없다. 어차피 가방에 들어 있는 건 없었고, 거미 도넛을 먹을 생각도 없었다. 일단 갈 길을 가야 했다. 나는 옆에 굴러다니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튼튼했다. 괴물이 쓰는 마법 정도야 몇 번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나는 워터폴로 향해 걸어갔다. 내 앞에 펼쳐지는 짙은 안개를 뚫고 폭포수가 쏟아지는 워터폴로 향했다. 폭포수가 쏟아지고 바위가 쏟아지는 곳을 거리낌없이 지나갔다. 내 눈 앞에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와 동굴 천장 위에 반짝이는 별들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거슬릴 뿐이었다.
 제기랄.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 하나가 뺨을 타고 내려왔다. 닦기도 귀찮다. 나는 빨리 핫랜드로 가야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뭇가지를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허리를 숙이자 다리는 맥 없이 힘이 풀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프리스크의 몸이, 슬픔에 잠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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