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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증인

운영자 2010.05.06 14:23:03
조회 245 추천 0 댓글 0

   대전고등법원 3층의 임시법정은 폭염 속에서 벌겋게 달아있는듯 했다. 마치 공사장의 현장사무소같이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나온 건축용 철판들로 만든 가건물이었다. 그 철판들이 뜨거운 태양을 받아 온 법정에 열기가 후끈거리고 있었다.나는 이마에 물같이 흐르는 땀을 맨손으로 쓸어내며 천천히 법정안으로 들어갔다. 몇 몇 변호사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살인적인 무더윈데요’하며 늙수구레한 변호사 한사람이 손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법정구석에 놓여 있는 낡은 철제 캐비닛같은 에어콘 마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질식해 가는 것 같았다. 얼마 후 검은 법복을 입은 재판장과 배석판사가 들어와 앉았다.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윽고 내차례가 되었다. 증인신문이었다. 재판장이 증인의 이름을 호명하자 내가 신청한 증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증인석에 나와 앉았다. 처음법정에 나온데다가 증언까지 해야하는 당혹감이 순간적으로 얼굴에 스쳐간다.


   “증인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위증죄로 처벌을 받습니다.알겠습니까?”

   얼굴이 갸름하고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워 보이는 재판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가 대답한다. 재판장은 증인신문전에 의례적으로 위증죄의 경고를 하는 것인데 그의 모습을 보니 과대하게 그것을 의식하는듯 보였다. 곧이어 나는 준비해온 대로 주 신문을 마쳤다. 보통 민사소송에서는 변호사가 한번쯤 미리 자기측 증인을 만난다. 증인나설 사람으로 부터 그가 현장에서 본 사실을 듣는다. 그리고는 그가 말한 내용을 요약해서 질문사항으로 기재한다. 그러니까 법정에서 그는 변호사가 묻는 내용에 거의 ‘예’라는 대답밖에는 할 것이 없게 된다. 하루에 수많은 증언을 들어야 하는 재판부에서 빨리 많은 사건을 처리토록하게 하기 위해 생겨진 관례다. 그대신 상대방측 변호사의 반대신문과 재판장의 신문을 통해 그 말의 신빙성이 검증된다. 증인으로 나온 그는 재판전에 만났을 때 내가 소송을 담당한 회사의 관리사원이기 때문에 문제된 세금소송의 중요한 점을 모두 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정리하여 신문사항을 준비했던 것이다. 반대신문이 시작되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그는 무조건 묻는사항에 대해 벙어리 같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개를 증인석 바닥으로 떨구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짐작하기에 회사사장으로 부터 반대신문에 말려들어 잘못증언하면 혼내겠다고 단단하게 주의를 받은듯했다.


   “증인 증언하러 나왔으면 예라든가 아니오라든가 기억이 안난다등 간단히라도 대답을 해야지요 꿀먹은 벙어리같이 있으면 됩니까? 증언하러 나온거 아닙니까?”

   답답해진 재판장이 이상하다는듯 증인에게 물었다.
 

   “----------”

   재판장의 그말에도 그는 갑자기 실어증이라도 걸린듯 떨리는 손끝만 바라보며 아무대답도 않았다. 법정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순간 재판장의 얼굴이 약간 찌그러지는듯 보였다. 법정안의 제왕인 재판장의 물음에 조차도 응하지 않는 일은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답답해진 내가 드디어 증인에게 한마디 했다.


   “증인 다른 사람이 묻는 말에도 대답하세요.사실대로만 말하면 됩니다”

   그러자 ‘예’하고 대답하면서 그는 비로서 재판장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건 노골적으로 변호사가 자기측 증인을 조종하는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재판장의 날카로운 질문이 시작되었다.


   “증인은 회사에서 관리직 사원이라고 대답했는데 구체적으로 직책이 뭡니까?”

   “그냥 제일 아래에 있는 말단입니다”


   “그래도 주임이라든가 계장이라든가 직책이 있을거 아닙니까?그 직책을 말하라니까요.”

   “그냥 심부럼이나 하는 제일 말단이라니까요.직책은 무슨------”


   재판장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증인은 회사에서 무슨일을 하나요?”

   “회사에서 저는 청소도 하고 고장난 것 있으면 수선도 해주고 그냥 그런일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직원이 아니고 회사에서 임시로 고용하는 잡역부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원은 사원입니다.”


   “회사의 무슨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까?”

   “과? 그런거 없어요---”


   “아니 그래도 관리과라든가 그런 소속은 있을거 아니요?”

   “아! 그럼 관리과네요”


   “대충 알았습니다.증인 수고했습니다.돌아가세요”

   재판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게 비쳐진 그 미소의 의미는 내가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모든 것을 꾸몄다는 혐의였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증인이 내게 말해준 것을 법정에서 그대로 재확인했을 뿐인데 이제와서 그는 청소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현장을 모면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나는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재판장님 질문을 하나 더하게 해 주십시요”

   나의 질문요청에 재판장은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하세요’하고 내뱉듯이 말했다.


   “증인 말이죠 내게 와서 말할때는 관리직 사원이라 모든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대로 신문사항을 만들었던 것 아닙니까.그런데 재판장님 앞에서는 회사에서 청소만해서 관리일은 모른다고 하면서 빠지는데요 그렇다면  변호사가 증인가치도 없는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웠단 말입니까? 왜 내게 말한 사실과 법정에서 말하는 것이 그렇게 다른가요?”

   내말을 듣는 순간 그는 놀라면서 증언석에서 벌떡 일어섰다.당혹해 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그는 다시 재판장을 바라 보았다.


   “예 예 저는 관리직 사원입니다. 청소만 하는게 아니라 관청일도 한다구요---”

   그말을 끝으로 그날 재판이 끝났다. 석연치 않은 감정이 일었다. 회사에서는 일선에서 관청심부름을 다닌 그에게 증언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사장의 명령은 그에게 있어 거역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재판장의 위증죄 경고에 소심해 보이는 그는 내심으로 겁을 잔뜩 집어 먹었다. 사장의 명령과 잘못말하면 감옥으로 간다는 외줄타기 속에서 그는 땀만 뻘뻘흘리며 묵묵부답이 되었던 것이다. 서류를 챙겨 가방속에 넣고 서서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화살같이 내려 쪼이는 법정앞 시멘트계단참에 그가 서 있었다. 주눅들은 짐승모양으로 그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변호사님 제가 청소만 한다고 한 것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법정에 나오는 건 처음이라서 정신이 없었어요. 나중이라도 변호사님이 물으시는 거에 따라 사실대로 관리직이라고 말했으니까 괜찮겠지요?”

   그의 마음 속이 들여다 보이는 듯 했다. 한편으로 오히려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이미 다 끝났는데요. 늘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돌아가셔서 열심히 일하세요--”

   나는 몇살 어려보이는 그의 등에 살짝 손을 대면서 안심을 시켰다. 그는 비로서 마음을 놓으며 법원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태양의 화살이 축늘어져 걸어가는 그의 잔등에 내려박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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