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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판사와 심통난 늙은 피고

운영자 2010.05.06 14:28:22
조회 432 추천 1 댓글 1

  “ 원고 박갑동씨 피고 김칠성씨 나오세요”

  젊은 판사는 민사사건의 원고와 피고를 호명했다.  피고석에는 디룩디룩한 오십대의 남자 하나가 나와 섰다.  커다란 눈을 가진 그는 눈알이 곧 쏟아져 나올듯 앞으로 나와 있었다.  이웃집에서 그가 집앞의 통로로 쓰던 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인도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피고로 소환되어 나온 것이다.못마땅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법원의 감정결과 문제된 땅은 원고 박갑동씨의 것으로 판정이 났습니다. 어때요 김칠성씨 판결이 나가면 당장에 통로가 없어지니 원고와 원만히 합의를 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판사는 갑자기 땅을 내어 줌으로써 곤혹을 당하게 될 피고를 생각해 적절한 타협의 기회를 주려는 배려였다.  대부분의 판사는 패소 판결이 날 당사자를 위해 약자가 살아날 기회를 한 번씩 만드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판사를 보는 피고의 눈길이 곱지를 않다.  신뢰하고 권위에 승복하는 몸가짐이 전혀 아니다.  그는 판사의 모습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판사는 아직 소년티를 가시지 않은 곱상한 인상이었다.  법복만 벗으면 대학 캠퍼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앳된 청년의 모습이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 세상경험은 없이 책상물림인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 땅은 내땅이요. 정화조를 묻고 오랫동안을 살아 왔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피고로 나온 그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는 아예 판사가 말을 하는 취지가 자신을 위해 선의로 기회를 만들어 보려는 것 조차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판사의 얼굴이 약간 발그래 해졌다.


  “법원의 감정결과 그 땅이 원고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피고 혼자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면 됩니까? 피고 말이죠 판결이 나가 당장 집밖으로 나갈 통로가 없어져도 되겠어요. 그러니 피고를 위해 원고와 적정선에서 화해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아닙니까?”

  자기말의 선의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한채 혼자 경우만 말하는 피고에 대해 판사는 약간 화가 나 있는듯 했다.  그로서는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면 그만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방청석에서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피고석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양복 웃도리도 입지 않은채 와이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법정안이 더워서인지 소매를 걷어 부치고 있었다.  재판장이 피고 뒤에 나타난 그를 쳐다 보았다.


  “저는 피고의 아들인데요. 아버지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 번 더 재판을 끌어 주시면 원고와 타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재판장님 기록을 다시 한번 잘 검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일을 한 번 더 드리도록 할테니까 가급적이면 원고와 잘 타협해 보도록 하세요. 다음기일은 삼주일 후입니다”


  재판장은 그 말을 마치고 다음번 사건번호와 당사자를 호명했다.  소환장을 받고 잔뜩 말을 준비한 듯한 피고는 그자리에 말뚝같이 박혀서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판장은 다음서류들에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뒤에서 보던 아들이 버티고 있던 아버지의 팔을 잡고 강제로 법정문 쪽으로 끌고 나갔다.  그 디룩디룩하게 살찐 피고는 젊고 온순해 보이는 재판장을 째려 보면서 “원 세상에 무슨 놈의 재판이 이따위가 있나”하고 온재판정이 떠나갈듯 소리치며 끌려 나갔다.


  민사재판은 운동경기보다도 몇십배 복잡한 규칙이 있다.  일어난 사건 중 법이 요구하는 요건사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주장해야 한다.  어떤 사실은 내가 증명해야 하지만 다른 것은 상대방이 해야 할 경우가 거미줄 보다 더 정교하게 정해져 있다.  천태만상인 사건들을 논리적으로 빨리 처리해야 하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재판정에 불려 나오면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민사재판정에서는 말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재판기일에 할 말을 미리 글로 써내게 하여 그것으로 재판정에서의 발언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질때 지더라도 말도 못하게 한다는 불만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법률용어를 말하는 판사와 그것을 듣는 재판을 받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간격을 좁혀주는 것이 변호사의 몫이다.  그런데 변호사들은 변호사들대로 사건이 없어 힘들다는 불평을 하곤 한다.  일반사람들은 변호사 사무실에 가면 돈이 많이 들어 차라리 혼자 소송을 하는게 낫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성실히 당사자의 얘기를 듣고 억울한 사정을 글로 써주는 변호사의 업무도 늘어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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