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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상속

운영자 2010.05.25 1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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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멘스라는 알프스산록의 자그마한 마을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스위스 농촌의 그림같이 예쁜 통나무집들이 알프스 계곡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집집마다 이층 베란다에는 제라늄화분들이 빨간 빛을 자랑하면서 늘어서 있다. 집집마다 사람이 아니라 예쁜 신데렐라 인형이 들어있을 것만 같다.나는 마을 끝에 있는 조그마한 간이역쪽을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역 뒤로 웅장한 빌라도봉이 신비한 안개속에 묻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예수를 죽인 빌라도는 가장 큰 죄를 지은 탓으로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영혼이 방황을 했다고 한다. 방황하던 빌라도의 영혼이 이 마을 뒷쪽으로 유현스럽게 솟아있는 봉우리에 머물렀다가 갔다고 해서 빌라도봉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이다.빌라도봉 밑으로 연초록 산기슭의 여기저기 통나무집이 조용히 앉아들 있고 그 밑으로는 루체른의 옥색 호수가 마을 건물들을 알록달록 비추고 있었다.어릴적부터 달력에서 보던 천국을 연상시키는 알프스밑 스위스 마을의 아름다운 정경이었다.나는 마치 달력 속의 스위스 마을 속으로 들어온 착각이 들었다.정결한 간이역에는 빨간색으로 치장한 조그만 톱니열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45도가 넘게 경사져있는 산비탈을 톱니로 된 바퀴로 올라가는 기차인 것이다.기차의 앞자리에는 같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온 부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아드님하고 이렇게 둘이서만 여행을 하시게 됐습니까?”

  나는 인사겸 말을 건넸다.


  “전에 와보고 너무 좋아서 아들을 보여주려고 다시 왔어요.재산을 물려주면 뭘합니까?아들한테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마음속에 실컷 사진을 찍어두게 하는게 진짜 좋은 상속이지요---아버지 정까지 묻혀서 말이지요---”

  그 아버지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빌라도 봉우리를 오르면서 그가 들려준 얘기는 이랬다. 직장에 다니던 그는 사십대 중반에 위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수술로 위의 상당부분을 잘라내고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둔 후 부터는 자식에게 남은 인생을 다 걸다싶이 했다. 온전치 않은 건강인데도 매일같이 직접 운전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고 있다고 했다.아이들을 호강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통체증으로 길가에 버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적 하나하나에까지 치밀한 관심을 쓰는 대신 방학 때가 되면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을 눈에 가득 담게 하기 위해서 아들과 둘이서 여행길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돈이 아무리 있으면 뭘합니까.자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없으면 다 소용이 없는거지요.자연이 아름답다고 누구나 좋아 합니까.그것을 겸허하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려 있어야 하는 거지요.내가 자식한테 주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겁니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식과 하는 이런 여행이 누가 뭐라고 하든 사치로 보지는 않습니다.물론 이런 여행도 국내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들과 함께 가뭄의연금을 내고 왔어요 내가 평생 직장을 다니면서 번 돈을 먼저 고생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일부 내놓고 마음 속으로 양해를 얻어 이렇게 유럽여행을 나온 거지요 이녀석이 나중에라도 자기만 알지 못하게 말입니다.”

  그 아버지의 말에서 나는 새로운 가치를 배울수 있었다.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재산보다는 넉넉한 마음의 여유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상속해 주기 위해 그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맞습니다 아버지하고 한 여행은 평생 귀중한 재산으로 남을 거예요----”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을 해 주었다.그렇다.나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해라 하면서 만능일 것을 요구했지만 아이들의 정서가 곱게 형성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직장일을 핑계로 돈 몇푼 던져주는 것으로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것으로 치부했다.요구만 했지 아버지로서의 행동이 없었던 것이다.


  알프스 계곡의 산등성이는 연초록빛 풀들로 마치 융단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풀 밭 사이사이로 조그맣고 노란 들꽃이 수줍게 고개 숙이고 그 위로는  소들이 목에달린 방울소리를 울리며 송아지와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은 빨간 톱니열차 차창 밖으로 피어 있는 귀여운 들꽃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산록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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