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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빼 주세요

운영자 2010.05.06 14:25:44
조회 239 추천 0 댓글 0

  가사법정은 항상 가족간의 미움과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다. 어느날 우연히 방청석 맨 앞에 있는 노인 한 사람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칠십이 훨씬 넘었음직한 그의 시선은 허공을 멍하게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머리 위에 파뿌리같이 윤기 잃은 몇 가닥의 흰머리털이 얽혀 있었다. 자리 보존하다가 가족들에 이끌려 억지로 나왔는지 양복 입은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오십대의 뚱뚱한 여인이 그의 옆에서 수시로 어깨와 등을 주무르고 있었다. 저런 상태로 왜 법정에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개 씨 나오세요.”

  재판장이 사건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재판석에 나오기를 기다렸다.


  “네. 이 노인인데 온몸이 마비증세라 앞에 나갈 수가 없어요.”

  노인의 옆에 있던 얼마 전에 마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풍을 맞아 전신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재판정까지 손자가 업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재판정에 나올 절실한 사유가 무엇인지 은근히 궁금했다.


  “재판석에 나오지도 못할 정도면서 재판은 왜 겁니까? 재판석에 빨리 앉히도록 하시오.”

  성미가 꽤나 까다로워 보이는 재판장의 불같이 화를 내며 종용했다. 이미 사건의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뒤에 있던 여인이 노인을 부축해 청년의 등에 노인을 엎혔다. 노인은 손목조차 움직이 못하고 고목 같은 몸뚱이를 청년에게 맡겼다. 노인을 등에 없은 청년은 재판석으로 나와 노인을 간신히 원고석 의자에 앉혔다. 피고석에는 삼십대의 청년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머리에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긴 모습이었다. 단추구멍 같은 작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차갑다. 야무지게는 보이지만 어딘가 정이 없어 보이는 인상이다. 시체 같던 그 노인이 원고석에 앉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소리치기 시작했다.


  “재판장님! 이놈을 양자에서 빼주세요.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였더니 글세 아파도 똥 한 번 치워 주지 않고 병원 한 번 안 와보는 나쁜 놈입니다. 이런 놈은 필요 없습니다.”

  그 노인은 주차장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딸들만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조카를 양자로 들였다. 늙어서 봉양을 받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자로 들은 조카는 아버지에게 시큰등했다. 양부 역시 호적상으로만 양자로 했을 뿐 큰 애정을 쏟지 않았다. 무덤덤한 양자와 양부 사이였던 것이다. 어느 날 그런 아버지가 쓰러졌다. 병원에서 그가 사경을 헤매자 딸들과 사위들이 모여들었다. 재산분배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병원 한 번 안 와보는 양자에게 상속해 주기는 억울 하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침내 나무토막 같은 노인을 움직여 파양소송에까지 이른 것이다. 피고석에 앉아 있던, 눈이 작고 턱이 뾰족한 양자가 양부를 행해 서서히 일어섰다.
 

  “제가 지방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보지 못한 것이지 안 간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가면 모두들 수근거리면서 싫어하는 눈치인데 어떻게 가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중에 재산을 나누어 주는 줄 알고 양자로 들어간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내가 내 아버지를 두고 큰아버지한테 양자로 가겠어요.”

  그는 재판장과 양부를 향해 야멸차게 자기를 변호해 나갔다. 나이답지 않게 너무 야무진 태도가 조금 밉살스럽게 느껴졌다.


  “야 이놈아! 네가 언제 자식노릇 제대로 한 번 한 적 있어? 너는 내 재산에만 눈독을 들인 도둑놈이야 도둑놈......”

  그 노인은 몹시 흥분했는지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재판정인것조차 잊고는 고래고래 소리질러 양자를 욕했다.


  “제가 왜 도둑놈입니다까?”

  젊은 청년은 지지않고 노인에게 응수했다.


  “남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도둑놈이지, 이 나쁜 놈아.”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그 노인도 한마디도 지지않고 맞받아 쳤다. 재판장은 묵묵히 그런 두 사람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원고와 피고가 서로 주고받는 말 속에는 숨겨진 진실일 감지하려는 듯한 눈치였다. 그 청년은 재판장에게 양부를 신문할 기회를 달라고 정식으로 신청을 했다. 그 말에 재판장을 다음에 하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청년은 굽히지 않고 재차 신문할 것을 요청했다. 재판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오늘은 그만합시다.”하고 소리치자 그 청년은 겨우 고집을 꺽었다. 큰아버지와 하는 재판에서 그리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그 정도로 대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보통이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부자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큰아버지와 조카의 관계도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찬 원수지간이었다.


  얼마 후 손자인 청년의 등에 엎혀 법정문을 빠져나가는 그 노인의 뒷모습을 보니, 마치 수액이 빠진 나무등걸 같아 곧 저절로 톡 부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인간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사약한 욕심, 그리고 원망과 미움의 감정은 이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그런 마음을 지닌 본인마저 까맣게 태워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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