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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대리인

운영자 2010.05.06 14:27:18
조회 248 추천 0 댓글 0

  어느 날 민사법정에서였다. 젊은 재판장이 “00주식회사 대리인 아무개 나오세요.”하고 호명을 했다. 그 회사의 직원으로 보이는, 삼십대 초반인듯한 청년이 원고석에 나와 섰다. 체크무늬의 재킷에 검은색 바지를  산뜻하게 차려 입었다. 지적으로 보이는 은테안경을 썼다. 재판장이 그에게 무엇을 물으려다가 그가 아무 서류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재판이 열리게 되면 질문에 대비해 관련서류들은 다 가지고 나와 물음에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였기 때문이다.


  “원고 대리인,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요?”

  재판장이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오늘 재판을 결심한다고 하길래 몸만 나왔습니다.”

  젊은 청년은, 재판이 끝나 재판장의 결심선언만 있으면 되는데 서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듯 대답했다. 재판장을 그 말에 한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세요, 원고 대리인! 원고의 회사는 지금 오 억이나 되는 큰돈을 청구는 소송을 제기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담당직원이 소송을 수행한다고 허가해 달라고 하길래 마지못해 허가해 주었는데 그렇게 소홀히 행동을 합니까? 원고 소송대리인은 지금 내가 이 사건에 대한 진상 몇가지를 물으면 아무 서류도 없는 상태에서 다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식으로 소송을 하면 소송대리허가를 취소하겠습니다.”

  재판장은 그 젊은 청년의 무성의에 혀를 차는 듯했다. 아마 자기 일이라면 작은 돈이라도 밤잠을 못 자고 걱정하며 준비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재판장은 그 청년에게 몇 가지 사건 내막에 대한 질문을 했다. 적어 가지고 가서 다음 번에 그 사유를 서류로 적어 제출해 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청년은 당황하는 듯했다. 아마도 재판장의 말을 적을 메모지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상의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더니 손바닥에 재판장의 말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메모지가 된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면서 과연 청년이 고용되어 있는 회사가 제대로 번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를 대신해서 나온 사람이라면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할 터인데, 그는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저런 사람을 대리인으로 내볼낼 수밖에 없는 그 회사의 처지가 참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법정을 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회사를 대표해서 나온 청년이 회사로 돌아가 사장에게 뭐라고 보고할까 하는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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