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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사기꾼

운영자 2010.05.11 14:19:20
조회 432 추천 2 댓글 1

  나는 저녁늦게까지 혼자 사무실에 앉아서 망연히 창 밖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넓다란 통유리창을 통해서 건너편의 백화점이 웅장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백화점의 문에는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는 여인들의 모습이 밝고 넉넉해 보였다.나는 담배한개피를 피워 물었다.입에서 흘러나오는 탁한 연기가 유리창 밑의 환기구멍을 통해 마치 영혼같이 스며 나간다.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한지 한달이 되는데도 제대로 상담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며칠있으면 임대료와 월급 그리고 생활비가 지출되야 하는데 수입은 없다.값비싼 사무실에 앉아서 낮이면 톨스토이가 쓴 케케묵은 「부활」이나 들척거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무장의 시선에 불안감이 일순간 지나쳐 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그때 ‘때르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렸다.나는 무심코 송수화기를 들었다.

  “엄변호사님이시죠 존함을  많이 들었습니다.여기는 영등포인데 사건을 의뢰하려고 합니다.”


  송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은 약간 쉰듯한 오십대의 점잖은 목소리였다.그는 약간 사정이 다급한듯 전화로 우선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저는 영등포에서 회장영감의 빌딩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아들들은 전부 미국에 가 있고 칠십먹은 사장은 지금 풍으로 병원에서 오늘내일하는데 글쎄 사장의 수십억짜리 빌딩을 어떤 놈들이 자기 앞으로 서류를 위조해서 말아먹으려 하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엄변호사님의 이름을 듣고 사건을 맡기려고 합니다.선임료는 이십퍼센트가 넘어도 얼마든지 좋습니다.맡아 주시기만 한다면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그의 말대로 한다면 수십억을 홋가하는 빌딩가격의 십퍼센트만 받아도 억대가 넘어가는 수고비이다.특히 어려운 소송은 아니지 않는가 그거야 말로 변호사생활중 어쩌다 얻어 걸리는 횡재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사무실로 방문을 하셔서 정식으로 상담을 하셨으면 합니다.”

  “아닙니다.워낙 사장님의 송사가 급하고 또 구청에서 관련 증거서류를 떼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죄송스럽습니다만 구청 근처의 호텔에서 만나뵐수는 없는지요?”


  상대방은 상당히 소송이 급해 사무실로 조차 나올수 없이 그날 밤으로 변호사 선임을 마무리하겠다는 취지였다.갑자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나는 그가 말한 것처럼 화려한 경력도 없었다.그렇다고 능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 까닭이다.나를 그렇게 대접하면서 거액의 사건을 다급하게 맡기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를 어떻게 아셨는지 다시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어떤 인연으로 저에게 전화를 거셨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제가 엄변호사님을 직접 아는 것이 아니고 저희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엄변호사님이 검찰청에 계실때 크게 한 번 신세를 지셨답니다.그런데 얼마전에 엄변호사님의 개업광고를 보고 회장님이 그 사실을 저에게 전달하셨습니다.아무튼 회장님 자제분이 미국에서 귀국하시면 정식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사건을 위임할 겁니다.그런데 그 전에 구청에서 관련증거서류를 떼는 것이 하도 급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올린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신문에 난 개업광고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며칠전 나는 변호사사무실을 차리고 일단 개업광고를 내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갔었다.

  광고부장은 나에게 출신학교부터 경력을 담은 문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막연했다.아침에 신문을 볼 때마다 일면 귀퉁이의 변호사개업인사를 보면  깨알같은 글씨로 화려한 공직경력이 즐비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모든 무거운 짐진자들은 다 자기에게 오라고 강조를 하는데 나는 막상 쓰려고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광고부장을 쳐다보았다.


  “저는 아무경력도 자랑할 거리도 없습니다.다만 개업한 것을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해서 광고는 하나 하려고 나온건데 쓸 게 아무것도 없네요---”

  광고부장이 오히려 당혹해 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실리가 있습니까?겸손이시겠지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사실입니다.그러니 문안이고 뭐고 간에 다 백지로 두시고 그저 광고란에 ‘인사드립니다 변호사 엄상익’그렇게만 써 주십시오”


  생각해보면 학교를 졸업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고등학교와 법대를 졸업한 것은 당연한 것 같았다.또 변호사가 자격시험인 고시에 합격한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다.공직에서 일을 한 것을 따지면 십년이 넘지만 내세울 것도 자랑스럽지도 못하다는 생각이었다.그렇다고 ‘성실히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다.결국 내 주소나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광고까지는 남들을 따라 갔지만 그 이후는 무어라 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알겠습니다.언론사는 광고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도리니까요----”

  광고부장은 그렇게 광고에 대한 의견을 마무리 지었다.결국 개업광고에 나에대한 사항은 백지였던 것이다.


  나는 일단 나에게 사건을 맡기겠다고 전화를 한 오십대 목소리의 남자에게 “죄송합니다만 저는 사무실을 놔두고 사건수임을 위해서 선생께서 만나자는 장소로 나가기 곤란합니다.정말 저에게 사건을 수임하시겠다면 권한 있는 가족이 정식으로 사무실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뭔가 그렇게 횡재를 할 만한 사건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또 아무리 수입이 급해도 이윤에 급급한 막장사꾼 모양으로 상대방에게 비굴하게 굴기는 싫었다.


  그 일이 있고 일년이 흘렀다.매달주는 월급생활에서 벗어나 나는 서서히 자유업이라는 불확실성의 수입을 가지는 직업에 많이 적응해 가고 있었다.‘하늘을 나는 새도 그리고 들에 핀 풀꽃도 다 먹고 사는데 내가 왜 걱정을 해’하는 배짱이었다.잘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지 못사는 걸 참아내려는 각오만 가진다면 별로 힘들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었다.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변호사를 근 십년째 하는 대학동창과 맥주를 한잔 나누고 있는 자리에서 였다.그는 변호사를 대상으로 삼는 사기꾼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즉 처음 개업한 변호사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귀가 솔곳할 만한 사건을 말한다는 것이다.대개의 미끼는 수임료는 높고 일은 쉬운 걸로 골라서 제시한다는 것이다.사무실 유지가 다급한 사람들 중에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사기꾼은 어느정도 얘기가 무르익을 무렵 변호사에게 ‘지금 회장은 누워 있고 아들들은 오지 않았으니 우선 어느정도 비용을 주시면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는 것이다.하다못해 낚시를 해도 하루전쯤 떡밥을 뿌려놓는게 이치인데 그걸 못하랴 하는 생각에서 더러 돈을 주는 변호사도 있었다는 것이었다.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구치소나 교도소에 가서 사기죄로 들어온 사람들의 얘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다.속칭 제비짓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여자중에서 특이하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말려들지 않는 난공불락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다름아닌 다이아 일캐럿이 뭔지를 모르는 여자.외제 브랜드 수입의류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여자들이라는 것이다.이런 철저히 허영심이 없는 여자는 제비들이 무슨 수단을 동원해도 꼬실수가 없다는 것이었다.또 사기를 칠때 대상이 욕심이 없는 경우에는 정말 사기꾼이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것이었다.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마지막직전까지는 철저히 논리적이라는 것이다.예를 들면 사기꾼이 오천만원만 가지고 있으면 삼억을 가지고 있는 욕심많은 사람의 그 돈은 자기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먼저 상대방에게 일천만원만 투자하면 일주일 내로 두배로 벌어줄 수 있다고 제의를 한다.상대방은 처음에는 상당히 경계를 하고 이것저것 재다가 천만원을 내놓는다고 한다.그러면 사기꾼은 그 돈을 가지고 있다가 며칠후 자기의 돈 천만원을 붙여서 두배가 된 돈을 전해 준다고 한다.그 다음에는 역시 이천만원만 주면 한달 후에는 두배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시를 한다.한번 재미를 보았던 사람은 경계심이 상당히 줄어들면서 일단 이천만원을 내놓는다는 것이다.그로부터 일단 이천만원을 받고는 한달후 자기돈 이천만원을 보태서 역시 두배의 돈을 건네 준다는 것이다.이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커다란 이권이 있으니 삼억만 투자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몇달만 참으면 몇곱의 이익을 남길수 있다고 제시한다.이미 사기꾼에게서 몇천만원의 이득을 본 사람은 이제 상황을 판단할 능력도 경계심도 사라지고 오직 욕심만이 남는다는 것이다.그는 아무런 주저 없이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내놓는다는 것이다.이때 부터는 피해자의 돈 뿐만 아니라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속이 뒤집힌 그를 마음껏 농락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철저히 논리적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비논리적으로 튀는게 사기의 본질이라는 주장이었다.결국 사기에 있어 욕심이 없거나 절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욕심은 사람을 눈멀게 한다는 당연한 소리였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고인물 같이 나른한 금년여름 어느날 오후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변호사님 계십니까? 여기는 양평동에 있는 회사인데요 수백억짜리 저희빌딩이 잘못되서 명도소송을 맡길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하실수 있겠는지요-----”

  어딘가 들은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바로 개업초기 영등포에 있는 빌딩의 송사를 맡기겠다고 한 얼굴모르는 오십대 남자의 목소리였다.그는 내가 지금쯤 아마 그 사실과 자기의 목소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으로 기억을 했나 보다.


  “죄송합니다만 누구를 통해 저를 아셨습니까?저는 모르는 분인데요-----”

  “저희 회장님께서 검찰청에 계실때 큰 신세를 지신 적이 있다는데 이번에 그 신세도 갚을겸 엄변호사님께 사건을 의뢰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제가 북부지청에 있을 때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네 맞습니다.북부지청에 계실때 신세를 지셨다고 하십니다.”


  나는 검사직무대리로 동부지청에 몇개월 근무를 했을뿐 북부지청에는 근처에 가 본적도 없었다.너무나도 치밀한 준비가 부족한 어리석은 사기꾼이었다.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사람을 그렇게 기억해 주시니 정말 감사 합니다.사건을 떠나서 사무실을 한번 찾아 주시지요.제가 사건을 맡는 변호사 입장을 떠나서 진지하게 상담을 해 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조만간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그는 고마운듯 황송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그리고는 다시 찾아오지도 전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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