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관심을 끄는 점은 최초로 가족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공산주의 사회 완성시 가족이 소멸한다는 이론을 고수하여 가족법이라는 명칭의 성문법전은 일부러 만들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권의 엄청난 지각변동속에서 북한이 독자적으로 가족법전을 만든 점은 향후 북한법 내지 북한 사회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길잡이가 아닐까 한다.

  새로 제정된 북한 가족법은 [가족법의 기본] [결혼] [가정] [후견] [상속] [처벌]의 6개장 54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결혼제도를 규율하는 [결혼]의장은 북한 가족정책의 역사적‧이념적 부침이 가장 많은 부분이다. 이번의 북한가족법 제8조는 [공민은 자율결혼의 권리를 갖는다]며 결혼의 자유를 선언했다. 또 제9조는 [결혼은 남자 18세, 여자 17세로부터 할 수 있다]고 혼인연령을 규정한다. 따라서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아무런 법적 제한 없이 결혼이 가능하다. 우리 민법이 미성년자가 결혼하는 경우는 아직 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는 점과 대조적이다.

  북한의 결혼이 자유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그 예가 지역적 결혼제한이다. 북한에서도 농촌의 처녀들은 도시생활을 동경하여 무조건 도시총각에게 시집가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방 여성들은 평양에 거주하기 위해 평양 남성과 결혼하여 거주권만 얻은 후 곧바로 이혼해 버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서 북한 당국은 도시의 인구증가와 농촌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농촌 처녀와 결혼하는 도시 남자는 시골로 강제 이주시키는 등의 조치를 하게 되었다. 또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남자들에게는 비밀유지를 위해 그지역 여성들과의 결혼을 강제한다. 이런 정책들은 사실상 결혼의 자유를 거스르고 있다. 이와 같이 결혼이 법형식으로는 완화된 반면에 이혼은 억제되고 있다.

  북한 가족법 제20조는 [이혼은 재판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며 협의이혼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제21조에서 구체적 이혼사유로는 [배우자가 부부의 사랑과 믿음을 혹심하게 배반한 경우]에 한정하여 간통 등 부정행위만을 이혼 원인으로 산정한다.

  이혼시에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당사자는 월수입의 10～30%까지를 양육비로 자녀가 노동할 나이에가지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북한 가족법 제23조) 이런 양육비는 기업소가 직접 떼어 내어 자녀를 키우는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두 번 이혼하는 사람에게는 재판소가 벌금 5천원을 먼저 납부케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재판을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월 1백20원 수준임을 감안할때 사실상의 두 번의 이혼은 불가능한 셈이다.

  북한이 새로운 가족법에서 이혼을 제한한 배경은 그들의 법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특이하게도 북한은 정권 수립 초기부터 이혼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이념 중 정책적으로 강조되는 남녀평등 및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여성의 이혼의 자유가 전제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론적 근거는 엥겔스의 자유 이혼론과 레닌의 사상에 두고 있었다. 엥겔스는 [애정에 입각한 혼인만이 도덕적이라고 한다면 애정이 존속하는 혼인만이 도덕적이다. 애정이 적극적으로 소멸했거나 또는 새로운 정열적 애정에 의하여 밀려난 때에는 이혼은 양 당사자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종래의 이혼금지 관습은 종교적으로 과장된 전통이다]라고 했다. [개인‧가족 및 국가의 기원]에서 그가 한 말이다.

  또 레닌은 [이혼의 자유는 가족관계의 분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사회에 잇어서 가족관계의 강화를 뜻한다]고 했다. 자유 이혼의 원칙을 가족질서와 결부시켜 더욱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정권 초 헌법을 제정하기도 전에 [남녀평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그 제5조에서 [여성도 이혼자유를 가진다. 이혼하려는 부부로 하여금 이혼하지 못하게 한 자에게는 형벌적제재를 가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이혼을 보장하였다. 아울러 간소한 협의 이혼제도를 만들어 행정기관에의 신고만으로 이혼이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이혼 자유 정책은 북한 정권 초기에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해체하고 북한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기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