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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제 큰 사건 5

운영자 2010.07.28 16:07:20
조회 300 추천 0 댓글 0

  3주 후 다시 공판이 열리기 10분 전이었다. 나는 법정 밖에서 증인으로 나온 주민과 만났다. 사십대의 주부인 그녀는 빌라 동네에서 오광미와 매일 아침 차를 나누는 다정한 사이였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광미를 피해 아예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버렸다. 그녀가 나를 보자 두려운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광미가 와서 지켜보고 있어요. 혹시 우리 아이들에게 해라도 끼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 겁이 나시면 그냥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녀에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사적인 발언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젊은 여자 단독판사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었다.

  현실생활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아픈 경험이 있어야 판사라도 사람들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다. 그래도 옛날에는 힘들고 험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경우가 드문 것 같았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경쟁만 해서 일찍 단독판사를 딴 책상물림들이 과연 어머니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제가 증언을 해야 판사님이 정의로운 결정을 내려주실 거 아니에요?”

  주저하던 주민이 내게 말했다. 그게 일반인의 판사에 대한 희망이었다. 들어주고 공감하는 표정 한번만 지어줘도 사람들은 위로를 받는데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는 판사들이 많았다. 그런 기대가 저주로 바뀌기도 했다. 심지어 활을 들고 가서 판사를 쏜 사건도 있었다. 주민이 결심한 듯 말했다.


  “두려워도 굴복하기 싫습니다. 말하겠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증언 석에 올라갔다. 방청석 앞자리에 앉아있던 오광미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고 있었다.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감옥에 넣겠다는 악의가 번득였다. 증인으로 나온 여자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한 여자가 이사를 온 후 평화롭던 주민들의 삶이 팍팍해졌습니다. 그분은 주민들하고 접촉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도 없었고 혼자였습니다. 혼자 새벽 2시경이면 빌라의 뜰을 거닐곤 하는 게 더러 보였을 뿐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 여자는 개인이 수리해야 할 부분을 공동경비로 해달라고 주민대표에게 요구를 해 왔습니다. 좁은 주차공간을 독점하면서 다른 주민들이 차를 세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면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주민들 차량이 날카로운 물체에 긁혔습니다. 타이어에 못이 박히는 일이 한 달에도 한 두 번씩 발생했습니다. 차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기도 하고 미끄러지라고 누군가 계단에 식용유를 부어놓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주유구에 본드를 붙여 놓기도 하고 동네개똥들을 모아다 특정주민의 집 앞에 쌓아놓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화단에 심어진 꽃들의 목이 모두 부러져 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시퍼렇게 갈린 낫이 공동 출입문에 걸려 있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물에서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누군가 공동주택의 물탱크에 고의적으로 락스를 풀어 넣은 게 발견됐습니다.” 


  “잠깐만요.”

  검사가 그녀의 말을 중단시키면서 경고했다. 


  “증거 있습니까? 확실하지 않은 건 말하지 마세요.”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러면 여태까지 한번이라도 고소를 한 적 있어요?”

  검사가 물었다.


  “아직 고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통이 있었는데도 고소한번 없다? 이상하지 않나요?” 

  검사가 빈정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주민들은 심정적으로 누가 한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심정적으로 다 안다? 그 근거가 뭐죠?”

  검사가 얼음같이 찬 얼굴로 되쏘았다.


  “오광미가 이사 오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건 논리적인 근거가 안 되죠. 그 외에 아무 근거도 없다 이 거죠?”


  “저희 빌라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건 저기 오광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추측이 아닌가요? 그런 걸 말하면 안 되죠.”


  검사가 계속 말을 막았다. 

  “검사님은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저희 주민들 전부가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검사님은 근거를 대라고 하면서 말을 막는데 보통사람들은 어떤 근거를 만들어 바쳐야 하는 건가요? 우린 그냥 고민하고 생활하는 일반인일 뿐입니다.”


  검사가 다시 그녀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증인, 좋아요. 지금 나와서 함부로 말을 막 하셨는데 타이어에 박아놓았다는 못이 모두 같았어요?”

  “같은 종류였습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진술하면 안 되죠. 어쩐 제조회사가 언제 생산한 못 이라는 걸 파악했어야죠.”

  그녀를 주눅 들게 하기 위한 검사의 말장난 같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은 논리와 법적근거를 가지고 사는 게 아니다. 젊은 검사가 판단해야 하는 대상은 부대끼며 살아가는 보통인의 생활이었다. 그걸 세속에 찌든 평균인의 관점에서 봐 줘야 하는 것이다. 각오하고 나왔는지 그녀는 계속했다. 
 

  “어느 날부터 저 오광미라는 여자는 주민들을 째려보면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이 들어오고 나갈 때도 마주 오는 주민차량이 있을 때 절대로 비켜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문제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행동의 마지막이 바로 정식재판을 청구한 김정미씨에 대한 테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머지 주민 중 누가 어떻게 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입니다.”

  검사의 신문이 끝나고 단독판사가 묻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주민들의 차량에 흠집이 났다 이거죠?”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달에 두 번으로 계산하면 1년에 25번 정도이고 4년만 해도 100번이네요. 6년이면 150회고 정말 그렇게 했어요?”

  “제가 그렇게 까지 정확한 횟수야 알겠습니까?”


  “그럼 확실하지 않은 걸 얘기했군요.”

  증거가 없으면 판사에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판사가 덧붙였다.


  “증거도 없이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감을 품을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난 6년간 저희 주민들이 오광미씨가 그랬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던 사실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 주민들은 오광미씨를 감싸 안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판사님은 저희 주민들이 오광미씨를 왕따로 만들었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주민들 그렇게 철없는 나이들은 아닙니다.”


  “그러면 CCTV를 설치해서 증거를 확보해야 하지 않았나요?”

  판사가 다시 물었다. 그게 판사의 정신세계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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