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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12

운영자 2010.08.12 11:42:40
조회 390 추천 0 댓글 0

  나는 출판사를 알아보는 걸 포기했다. 결론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정신세계를 서술한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고 사 줄 독자는 없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시장경제는 원로라고 해서 더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시대 저쪽의 인물로 묻혀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직접 알아보기도 하라고 했다.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그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류, 삼류의 작은 출판사에 부탁을 했는데도 대답이 없어요.” 
  그는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환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는 건 포기했어요. 이제 나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블로그를 이용해서 내 작품을 발표하는 거예요. 이제 세상은 꼭 종이책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더라구. 내 작품을 독자들이 읽어주면 되는 거지 그걸로 돈을 번다는 개념을 없애기로 했어요. 그래서 내가 구청 노인복지센터에 가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연습을 하고  블로그 만드는 걸 공부했지. 내가 최고령 수강생이더구만. 하여튼 이제 자유롭게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게 됐어.” 
  그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기쁨이 가득했다.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얼마 후 그가 내게 전화했다.
 

 “이번 달 월간문학을 봐요. 내가 단편소설을 하나 써냈는데 잘 살펴보시고 얘기하자구.”

  그의 어조에는 생기가 들어있었다. 그는 자나 깨나 먹을 때나 소설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쇼핑백에 귀중하게 담은 화분 하나를 가지고 왔다. 난초였다.


 “이거 내가 오랫동안 아내하고 같이 기르던 난초요. 선물하고 싶어서..”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얼핏얼핏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곤 했다. 그는 현실보다는 이미 저 세상 쪽에 더 관심을 둔 사람이었다. 이 세상은 영원으로 가기위한 신병훈련소쯤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 이후 그가 연락하는 간격이 점점 멀어졌다.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세달 전 그는 내게 마지막 작품의 서문을 다시 고쳤다고 알려주었다. 그 후로부터 연락이 뜸했다. 한 달 전 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왜 그렇게 연락이 없으세요. 난 죽은 줄 알았잖아요?”

  나는 농담같이 말했다.


 “내가 좀 아파요.”

  그가 대답했다.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였다.


 “알았어요. 내가 한번 집으로 찾아 갈게요.”

  그게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빈소는 진공처럼 적막했다. 늦은 밤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그의 사진이 나를 보고 씩 웃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힘들던 미소였다. 다음날 아침 그는 연기가 되어 그리워하던 영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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