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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10

운영자 2010.08.10 10:15:11
조회 442 추천 0 댓글 0

  부지런히 사무실을 오가던 그의 부인을 어느 때부터 보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가 발길을 끊은 것이다. 그의 보석 신청 때 이후 한 번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조용하고 맑은 눈빛이 아름답던 분이었다. 남편이 석방이 됐으면 그동안 친했던 변호사와 한번쯤은 만날 기회가 있을 만한데도 연락이 없었다. 집에 전화를 걸때도 이상하게 꼭 정을병씨가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을병 선생을 잘 아는 작가를 만났다. 그의 고향 후배였다.


 “정을병 선생이 석방 후 부인이 갑자기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대요. 자존심이 강한 정을병 선생은 가족 이외에는 아무한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장사를 치렀대요.”

  그의 따뜻한 둥지였던 부인마저 잃었다. 나중에 나는 부인의 사망원인이 사건과 관련된 스트레스라는 걸 그의 유서 같은 마지막 글 속에서 발견했다. 그는 충격적인 한마디를 더 했다.


 “정을병 선생은 구속될 무렵 외아들이 죽었어요. 세계적인 컴퓨터 해킹방지 기술자로 장래가 촉망되던 사람이었는데---”

  명성과 재산 그리고 아들과 부인을 일순간에 그는 잃었다. 이미 70대 중반의 노인인 그는 성경속의 욥과는 달리 재기할 힘도 희망도 없었다. 그는 개결한 자존심 하나로 마지막을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점점 영적인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세상보다는 영원한 다른 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음식점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난 요즈음 시간만 나면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데 신비한 체험을 했어요. 신은 인간의 몸에서 빛과 소리로 존재하죠. 나는 얼마 전에 이마 가운데 있는 제삼의 눈을 통해 그런 강한 빛을 느꼈어요.”


 “존재의 본질에 많이 접근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아직은 그렇지 못하죠. 이제 신비체험을 조금 맛봤다고 할까.”


 “세상에 일어나는 불행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빗대어 물었다.


 “얽혀있는 카르마 때문이죠. 기독교적으로는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분량이 따로 있는 거구요.” 
 “그러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온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세요?”


 “성경속의 욥에게 내린 시련은 그 신앙심을 시험해 보려고 한 건데 내게 다가온 것들은 아직 그 뜻을 알 수 없어요.”

  그의 얼굴에 회한의 표정이 스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되물었다.


 “돌이켜 보면 난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어요. 혼자 지독히도 우쭐대고 잘난 척 했죠. 지주였던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안에는 교만이라는 유전인자가 있는 것 같아요. 문단의 원로로 행세하면서 남을 막 깔아뭉갰죠 그 원인들이 하나하나 쌓인 결과가 감옥에 있을 때 어느 누구하나 나를 위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결과로 나타났어요. 횡령죄는 무죄였지만 진짜 진 죄는 교만이었지. 그 업보를 받은 거요.”

 

 “평생 71권의 소설을 쓰시고 문학계의 최고 원로로 계셨는데 지금까지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제야말로 그에게서 진리가 나올 것 같았다. 꼭 들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소설을 가장 많이 쓴 작가라고 신문에 나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여태까지 내가 쓴 작품들이 다 쓰레기고 가짜라는 걸 알았어요. 그 작품들 안에 깨달음이란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진짜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세상을 향해 평생 사기를 쳐 온 거요.”

  그가 말을 끊고 잠시 침묵했다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난 지금 일흔 네 살이지만 백 살까지 꼭 살고 말거요. 지금부터 진짜 소설을 쓸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저 소설을 만들어 내는 기술자일 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틀에 박힌 방법을 모두 무시해 버릴 거요. 형식에 매여서는 진실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이죠. 앞으로는 내 역겹고 비통한 기억을 음미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모두 깨끗이 지워서 공(空)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내 생애의 마지막 글을 써보기로 했어요. 내가 겪은 모든 비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생을 걸고 작품을 써 볼 마음이요.”

  그는 새로운 창작의욕에 불타 있었다. 그가 살아야 하는 마지막 존재이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말로 최고의 작품이 나오겠네요?”

  내가 말했다.


 “톨스토이는 일류고 사르트르는 이류 그렇게 치면 나는 사류나 오류 그 이하일 수 있어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삼류면 어떻고 사류면 어때요. 죽을 때까지 쓰고 또 쓰는 거지. 일본 작가들을 보면 정말 작품 하나에 목숨을 걸어요. 그러니까 진짜 작품이 나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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